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한·일관계, 그 불가사의한 공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특파원 부임은 2017년 12월이었다. 한국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진 징용 재판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한·일관계는 가시밭길이었다. 그동안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 있다. 한·일관계는 외교적 상식이나 관례, 기본적인 직업윤리까지 허물만큼 불가사의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물론 관계 악화 책임의 상당 부분은 역사 문제에 경제 보복 카드를 들이댄 일본 아베 정권에 있다. 수출 규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특히 비상식적이다. 지난해 7월 1일 수출 규제 조치 브리핑에서 일본 경제산업성은 “징용문제에 대해 한국이 (지난해 6월 말 오사카) G20정상회의까지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내놓지 않아 관계부처들이 검토한 결과 양국의 신뢰관계가 현저하게 손상됐다고 봤다”고 했다. 수출 규제가 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엔 “징용문제와 수출관리는 별개의 문제”(6월 30일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라고 발뺌 중이다. 독해가 불가능한 ‘아무말 대잔치’다.

글로벌아이 7/10

글로벌아이 7/10

반면 일본은 “한국이 비합리적”이라고 한다. 존 볼턴의 회고록에 대해 지난달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도 “외교 관계의 협의 과정은 밝히지 않는다는 기본을 망각한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도쿄의 일본 소식통은 “위안부 합의를 2년 만에 들춰내 비공개 합의까지 공개한 한국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했다. 볼턴에게 ‘외교의 기본 망각’ 운운할 수 있는 논리적 일관성이 청와대에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 3월 일본의 입국제한 조치 때도 논란이 일었다. 한국은 “단 한 마디 사전 협의도 없었다”고 했다. 반면 일본은 “발표 전 외무성 한국 라인은 자신들이 파악한 정보를 주일 한국대사관에 전달했다”고 맞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대가 일본이 아니었다면 ‘단 한마디도 없었다’는 단정적 표현은 안 썼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한국 기자들도 선을 넘을 때가 있다. 일부 언론은 일본 네티즌의 반응만을 토대로 아베 내각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다. 만약 일본 기자가 한국 포털사이트의 댓글만을 근거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다면 우리는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이런 불가사의하고, 비상식적인 틀 속에서 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2년 7개월 만에 일본을 떠나면서 드는 생각이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