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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백선엽 빈소 찾은 해리스 "늘 지닌다" 품에서 꺼낸 사진 한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언제나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백 장군 생일에 무릎 꿇고 축하하던 해리스 대사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백 장군은 영웅이자 보물" #정경두 장관, "큰 별이 졌다"

1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빈소. 이날 오후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조문을 마친 후 백 장군의 부인 노인숙 여사를 만나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거기엔 2018년 11월 21일 백 장군의 백수(白壽) 축하 생일 때 그가 백 장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를 다해 축하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백수(白壽. 99세) 행사가 2018년 11월 21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렸다. 백 장군이 기다리고 있던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와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 변선구 기자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백수(白壽. 99세) 행사가 2018년 11월 21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렸다. 백 장군이 기다리고 있던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와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 변선구 기자

해리스 대사는 노 여사에게 “항상 갖고 다니는 사진”이라며 “백 장군을 이렇게 떠나보내 상심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에도 “백 장군은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말을 남겼다”며 “백 장군이 그리울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이날 백 장군 빈소에는 한국은 물론 미측 인사 등 각계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백 장군이 생전에 받은 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은성무공훈장 사이 영정 사진이 놓였고, 이를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 정세균 국무총리, 정경두 국방부장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박사,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조화가 놓였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가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헌화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가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헌화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장례식장 복도에는 육군 의장대가 예를 갖췄고, 백 장군이 1950년 8월 다부동 상황을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보고하는 장면, 평양 진격 당시 미국 공군 연락장교와 작전을 논의하는 장면, 부상 장병을 격려하는 장면 등 생전 사진 10여장과 영상이 전시됐다.

빈소를 찾은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백 장군이야말로 대한민국 발전과 막강한 군 건설할 수 있도록 초석 놓은 영웅이었다”며 “군인 정신에 투철하고 애국심 충만한 백 장군의 정신을 우리 후배들이 면면히 잘 이어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가장 최근 백 장군을 만난 자리를 회상하며 “원로 고문으로서 계속 후배들에게 귀감이 돼주시기를 부탁드렸는데 이렇게 큰 별이 져 정말 안타깝다”고도 했다.

정 장관은 앞서 성명을 통해 “백 장군은 대한민국 최초의 육군 대장으로서 6·25전쟁을 고비 고비마다 진두지휘하시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셨고 오늘날의 굳건한 한미동맹과 강한 군을 건설하는 데 초석을 다져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11일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남긴 방명록. 박용한 기자

11일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남긴 방명록. 박용한 기자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육군은 백선엽 장군님의 큰 뜻을 이어받아 더 강한 군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며 “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해 장군님을 모시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도 고인에 대해 “6·25 영웅이고, 오늘의 육군을 만드신 분”이라며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다”고 기억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날 성명에서 백 장군을 “진심으로 그리워질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는 “백 장군은 오늘날 한미동맹을 구체화하는 데 공헌을 했다”며 “백 장군의 가족과 친구에게 진심어린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 원희룡 제주도지사, 김병주 민주당 의원, 심재철 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지상욱 통합당 여의도연구원장,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 등이 조문해 유족을 위로했다.

백 장군의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결정됐다.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을 놓고 불거진 ‘장지 논란’에 유족 측이 대전현충원 안장을 최종 희망하면서다. 국립묘지를 관리하는 국가보훈처는 “서울현충원은 현재 장군 묘역이 꽉 찬 상태로 새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며 “백 장군과 유족 측도 이를 잘 알고 대전현충원 안장 뜻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11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유족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박용한 기자

11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유족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박용한 기자

보훈처는 심의 절차라는 형식이 남아있지만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에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백 장군은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이자 한국전쟁 초기 전세를 역전하는 계기가 된 ‘낙동강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무훈 등으로 2차례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빈소에선 예비역을 중심으로 백 장군의 공로를 고려하면 대전현충원보다 서울 동작구의 서울현충원 안장으로 예우를 다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 예비역 장성은 정 장관에게 “백 장군은 자타공인 6ㆍ25전쟁의 영웅이니 서울현충원에 모시는 게 마땅하다”며 “백 장군이 오래 사시다보니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는 일이 발생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정 장관은 “(보훈처에) 이런 의견을 다시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여권 일각에서는 '친일 행적'의 과오가 있다며 현충원 안장도 과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장례는 5일간 육군장으로 거행된 뒤 영결식은 오는 15일 오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안장식은 11시30분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서 각각 열린다. 영결식에는 정 장관과 해리스 대사가 다시 한 번 참석할 계획이다.

이철재·박용한·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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