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분양 권하던 정부, 슬쩍 ‘사전청약’ 부활…1~2년 후 본청약까지 간극 줄이는 게 열쇠

중앙선데이

입력 2020.07.11 00:25

업데이트 2020.07.11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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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4호 07면

공급 달리는 서울 부동산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가 ‘사전청약제’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사전청약제는 ‘청약’(본청약)을 ‘예약’(사전청약)하는 형태로, 일반적인 ‘선(先)분양’ 시점보다 1~3년 더 빨리 시장에 주택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 주택 수요자가 미리 내 집을 ‘찜’하는 것이어서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조급함’을 덜어줄 수 있는 카드다.

토지 보상 끝난 후 하겠다더니
9000→3만 가구 이상 공급 늘려
일각 전셋값 상승 우려 목소리도

정부는 지난 달 내놓은 6·17 부동산 대책에서 3기 신도시 물량 일부를 사전청약제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물량은 대략 9000가구 정도였다. 하지만 6·17 대책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오르자 7·10 대책에서 사전청약 물량은 3만  가구 이상으로 확 늘려 잡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3기 신도시 물량 외에 다른 공공택지에서도 사전청약 물량을 지속적으로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청약 물량은 올해 말부터 토지 보상을 시작하는 남양주 왕숙지구, 하남 교산지구, 과천 과천지구, 인천 계양지구 등 3기 신도시 4곳에서 우선 나올 전망이다. 사업 속도가 7·10 대책에서 밝힌 다른 공공택지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전청약 물량으로 주택 실수요자들을 묶어두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전청약제는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에 도입(당시엔 사전예약제)한 적이 있는데,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회에 제출한 ‘분양주택 사전예약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년~2010년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자 1만3398명 중 실제 입주까지 한 사람은 5512명(41%)에 불과하다. 사전예약 이후 본청약까지 평균 4년, 최장 8년이 걸렸던 때문이다. 시장의 한 부동산전문가는 “토지보상도 하기 전에 주택을 선분양해 놓고 무한정 기다리게 만들고, 끝가지 버틴 사람에게만 로또를 안겨줬다는 측면에서 잘못된 제도”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지적이 일자 정부는 토지보상을 끝내 1~2년 후 본청약을 할 수 있는 택지에서만 사전청약을 진행해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사전청약과 본청약의 간극이 줄면 시세차익이 발생해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사전청약제 도입은 정부가 무주택자들에게 막연히 기다리라는 요청 대신 조기 당첨에 따른 ‘내 집 보유 효과’를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제대로만 먹힌다면 주택시장이 안정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러러면 3기 신도시 건설 사업 속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7·10 대책을 통해 사전청약 물량을 늘리면서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 때처럼 무분별하게 사전청약을 진행하면 본청약이 또 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개발회사 대표는 “사전청약 공급을 3만 가구 이상으로 확 늘려 잡았는데, 현재 3기 신도시와 그 외 소규모 공공택지 진행 상황을 고려하면 토지보상 이전 물량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설 업계에선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그동안 아파트 선분양으로 분양권(해당 아파트에 입주할 권리)시장이 형성됐고, 분양권시장에 투기꾼이 몰리면서 전체 주택시장 물을 흐린다며 민간 업체엔 아파트를 다 짓고(공정률 60% 이상) 분양하는 후(後)분양을 종용해왔다.

집권 초기엔 2020년부터 공공분양 물량의 70% 이상을 후분양으로 공급하겠다고 공언했다. 건설 업계가 선분양으로 주택시장을 교란한다고 비난했던 정부가 공공분양 물량의 일부를 선분양보다 더 빠른 사전청약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셋값 상승 부채질과 같은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전청약 물량도 본청약과 마찬가지로 지역거주의무기간을 두기 때문에 3기 신도시 지역으로 무주택 실수요자의 전입을 앞당겨 전셋값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왕숙·교산지구가 위치한 남양주·하남시는 이미 신도시 청약을 노린 예비 청약자의 전입으로 전셋값이 급등세인데, 사전청약 물량을 늘리면 전셋값 상승만 부채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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