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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M&A 무산 플랜B…‘통매각’ 대신 ‘쪼개팔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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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4호 15면

3월부터 이스타항공의 셧다운이 이어지면서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3월부터 이스타항공의 셧다운이 이어지면서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는 플랜B(차선책)를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지난해 성사된 2건의 국내 항공사 인수·합병(M&A)을 바라보는 시장의 반응이다. M&A가 무산할 가능성에 대비해 플랜B를 가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두 M&A 모두 ‘딜 클로징(거래 완료)’ 시점을 넘겼다. HDC현산·제주항공은 진작에 인수를 포기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이 확 쪼그라든 때문이다. 두 항공사의 M&A가 무산으로 끝나면 여파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스타항공은 파산 우려까지 나온다.

날개 꺾인 항공사 인수·합병 #HDC현산, 회사채 흥행 실패 #코로나 여파까지…인수 주저 #이스타 대주주 지분 헌납에도 #몸사린 제주항공은 무기연기

#6일 증권가가 술렁였다.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투자자 모집)에 나섰지만 흥행에 참패한 때문이다. 기관투자자 중엔 HDC현산에 돈을 대겠다는 곳이 거의 없었다는 의미다. 증권가에선 HDC현산의 신용등급이 A+(부정적)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는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HDC현산의 재무상태가 악화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13일 예정된 회사채 발행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DC현산은 회사채로 3000억원을 조달해 1400억 원은 빚을 갚는데, 16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쓸 계획이다.

그런데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앞선 지난 달 9일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에 “코로나19로 상황이 많이 달라진 만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요청하면서 M&A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제주항공도 이스타항공 인수를 무기한 연기했다. 제주항공은 당초 지난 달 말까지 이스타항공 인수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스타홀딩스 대상 1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발행을 지난 달 30일에서 당사자가 합의하는 날로 변경한다고 밝히면서 인수 일정은 무기한 연기됐다. 제주항공은 7일 입장문을 내고 “이스타항공은 선행조건 이행에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이 말하는 선행조건은 체불임금 260억원 등 모두 1700억원 상당의 미지급금 해소다.

HDC현산과 제주항공이 M&A를 주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코로나19로 항공업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사의 여객 수요는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시작한 3월부터 80~90% 급감했다. 국제선 노선 운항은 5개월째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언제 비행기를 띄울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이스타항공은 노선 중단으로 수개월째 직원 임금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의 올해 예상 영업손실 평균치는 3600억원이 넘는다. 제주항공은 특히 항공사로서 똑같이 어려움에 처한 만큼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이스타항공 인수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증권 업계에서도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면 자칫 제주항공마저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안진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여유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 이스타항공 인수 사안까지 겹쳐 유동성 리스크가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제주항공 2대 주주인 제주도도 지난달 26일 열린 제주항공의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스타항공 인수로 재무 구조 위험 등이 있을 수 있으니 인수에 신중해 달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는 제주항공 지분 7.75%(유상증자 전)를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다.

시장에선 M&A 계약이 깨지면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과 6개 자회사(에어서울·에어부산·아시아나IDT·아시아나개발·아시아나세이버·아시아나에어포트)를 묶어 매각하는 ‘통매각’ 대신 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을 각각 나눠 파는 ‘분리매각’에 나설 가능성을 점친다.

#분리매각은 인수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 더 다양한 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로 다른 기업의 상황도 좋지 않은 만큼 분리매각도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채권단이 인수한 후 구조조정을 통해 크기를 줄이고 시장에 되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 조건 변경을 통해 HDC현산이 자회사를 제외하고 인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당장은 정부의 지원을 바랄 수밖에 없다. 매각이 안 되면 대한항공처럼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금)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M&A가 진행 중인 만큼 아시아나항공에 대해선 기안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상황은 유동적이다. 당장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치닫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스타항공은 사정이 좀 다르다. 부채가 지난해 기준 2074억원에 이르고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만큼 파산 전망도 나온다.

모든 항공 운항을 중단하는 ‘셧다운’ 상태가 길어지면서 항공운항증명(AOC) 효력이 정지돼 재운항에도 최소 약 3주가 걸릴 전망이다. 이스타항공이 파산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임직원에게 돌아갈 수 있다. 항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두 M&A를 성사시키기 위해 개입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결국 돈의 문제이므로 정부의 추가 지원 없이는 성사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현아 3자 연합’ 지분 45.24% 확보…법원에 임시주총 소집 신청할 듯

항공 업계 1위 대한항공은 유동성 위기라는 폭풍에서 벗어나자마자 경영권 분쟁이라는 난기류에 휘말려 있다.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은 1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강성부펀드)와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구성된 ‘3자 연합’이 3월 열린 주주총회결의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고 공시했다. 3월 27일 열린 주총에서는 제3자 연합이 제안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는 모두 부결되고, 조원태 한진칼 회장을 포함한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5명 등 조 회장 측이 안건이 통과했다.

3자 연합이 3월 주총 결의를 무력화할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날짜는 5월 26일. 이번 소송은 3자 연합이 3월 주총에 앞서 표 대결 승리를 위해 제기한 의결권 제한 가처분 소송의 본안 소송이다. 당시 3자 연합은 대한항공 자가보험 및 대한항공 사우회가 보유한 3.7% 지분은 의결권을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대신 반도건설이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가 아닌 ‘단순투자’로 공시하고 매입한 지분(3.2%)의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며 조 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소송은 당시 상황을 제대로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재계에선 사실상의 경영권 분쟁 ‘2라운드’에 돌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소송에 관계없이 3자 연합이 조만간 법원에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신청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월 주총 이후 3자 연합이 반도건설을 중심으로 한진칼 주식을 꾸준히 매집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3자 연합의 지분율은 45.24%에 이른다. 이 가운데 3.2%는 3월 주총 직전 법원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3자 연합이 본안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의결권이 살아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달리 조 회장 측 지분율은 드러난 것만 보면 41.14%로 열세다. 조 회장 및 특수관계인 22.44%, 델타항공 14.90%, 대한항공 자가보험 및 사우회 보유분 3.80%를 더한 수치다. 이 때문에 조 회장 측이 최근 공격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알짜 사업까지 내다 팔고 있는데, 이미 경영 정상화를 위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알짜 사업을 내다 판 돈으로 한진칼 지분을 추가 매집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경영권 분쟁 2라운드의 관건은 임시주총 소집 요구를 법원이 받아들일지 여부다. 3자 연합은 최대주주가 변경된 만큼 경영진 교체를 위해 이사 추가 선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사 해임을 위해서는 주총에서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이사 교체 등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추가 선임은 과반 찬성으로 결의가 가능하다. 법원이 임시주총을 허용하면 실제 주총은 이르면 9월, 늦어도 11월께 열릴 것으로 법조계는 전망하고 있다. 법조계는 “최대주주와 2대 주주의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인 만큼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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