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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 3분의 2 삼권분립 모른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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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4호 21면

반지성주의 시대

반지성주의 시대

반지성주의 시대
수전 제이코비 지음
박광호 옮김
오월의봄

지난 50년간 미국인들 무식해져 #트럼프 당선이 ‘우둔화’ 근거

근거가 있건 없건 ‘우리는 유식하지만, 너희는 무식하다’는 확신도 정파(政派) 성립에 기여한다. 그렇다. 정치는 권력·돈 이전에 지성·반지성(反知性)을 다투는 싸움터다.

문명비평서이자 지성사 분야 역작인 『반지성주의 시대』는, 유식-무식 이분법으로 미국 역사의 전개를 해부한다. 미국사는 ‘합리주의·지성주의·계몽주의’ 캠프와 ‘반합리주의·반지성주의·근본주의 기독교’ 캠프의 대결장이었다는 것. 이 책은 현대 고전인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쓴 『미국의 반지성주의』(1963)의 21세기 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수전 제이코비에 따르면, 지난 50여년간 미국 문화의 ‘우둔화(dumbing down)’가 위태롭게 전개됐다. 그 결과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반지성주의 시대』는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을 비롯한 좌파·진보 유권자들에게 부시·트럼프라는 헌정사의 ‘참사’을 설명한다. 또 위로한다.

존 트럼불(1756~1843)이 그린 ‘독립 선언’. ‘건국의 아버지’ 40명을 화폭에 담았다. 그들은 지성을 정치 속에 구현했다. [사진 미 국회의사당]

존 트럼불(1756~1843)이 그린 ‘독립 선언’. ‘건국의 아버지’ 40명을 화폭에 담았다. 그들은 지성을 정치 속에 구현했다. [사진 미 국회의사당]

저자는 무엇을 근거로 미국 시민들이 무식해졌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예컨대 정부의 3권분립을 구성하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를 빠짐없이 열거할 수 있는 미국 국민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고등학교 생물 교사 3명 중 한 명은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다고 잘못 알고 있다.

저자 제이코비는 좌파·우파 양쪽을 비판한다. 예컨대 1930~40년대 상당수 미국 좌파는 스탈린의 악행이 알려진 다음에도 소련 공산주의를 옹호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상대적으로 좌편향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의구심의 근거는 저자가 무신론자라는 점이다. 그는 2010년 무신론자국제연합(AAI)이 준 ‘리처드도킨스상’을 받았다.

저자의 판단으로는, ‘진화론 vs 창조론’ 대결은 서구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끝난 싸움이다. 미국만 아니다. 2006년 퓨포럼 연구조사에 따르면, “성경과 국민의 뜻 중에서 어느 것이 미국의 법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60%가 “성경이다”라고 답했다. (세속법이 아니라 이슬람 샤리아가 중요하다는 주장과 닮은꼴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상당수 미국 시민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부정한다.

세속화는 대부분 구미 선진국에서 불가역(不可逆) 대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종교화 ‘역주행’ 조짐도 있다. 예컨대 1892년에 생긴 ‘충성의 맹세’는 1954년 “하느님/하나님 아래(Under God)”를 추가했다. 1960년대 이후 근본주의 기독교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근본주의 기독교는 창조주의(創造主義, Creationism)·지적 설계(知的設計, intelligent design)로 진화론에 맞서고 있다.

반전이 있다. 진화론에 맞선다고 ‘무식’한 것은 아니다. 하버드대 박사 출신으로 뉴욕대(NYU) 철학과 석좌교수인 네드 블록은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진화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인식됐다. 최근 인지과학 연구 성과에 따르면 그들도 진화론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진화론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게 보면 진화론에 대한 찬반 입장은 유식-무식과 무관하다. 신념을 바탕으로 한 선택의 문제다.

저자 제이코비는 좀 ‘구닥다리’다. 그는 신문·잡지·단행본으로 대표되는 활자문화를 영상문화가 대체한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서구를 만든 고전(Western Canon)’이 무시당하는 현실도 안타깝다. 문화적 의미에서 저자는 강경 보수주의자다.

상대주의 시대에 누가 과연 용감하게 유식·무식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답을 유보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저자의 토머스 제퍼슨 인용문에 울림이 크다. 제퍼슨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말한다. “문명국가 국민이 무지하면서도 자유롭기를 바란다는 것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을 바라는 셈이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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