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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무구사·패닉바잉…연 3만8000채 부족, 막차 타는 30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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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4호 06면

공급 달리는 서울 부동산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해 종합부동산세와 취득세, 양도세를 중과하는 내용을 담은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10일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업소. [뉴스1]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해 종합부동산세와 취득세, 양도세를 중과하는 내용을 담은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10일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업소. [뉴스1]

서울에서 빌라에 전세로 사는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주말 경기도 행신 지역의 아파트를 보러갔다. 1600세대 단지에 실제 매물은 거의 없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지난달에만 15채 이상의 매물이 소진됐다”며 “젊은 실수요자들이 한두 개 남은 매물을 줄을 서서 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A씨는 전세 만기가 1년6개월 남은 옆 단지 매물을 계약했다. 기존 빌라에서 한 번 더 전세를 살 예정이다. 그는 “정부가 임대차 3법을 개정해 2+2 조항을 소급 적용하면 내후년에도 입주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집 해마다 12만1000채 필요 #최근 3년간 공급 8만5000채 그쳐 #정부 못 믿어 지어진 아파트 매수 #젊은층 선호 ‘역세권 신축’ 줄어 #재건축 막아 내년 2만 채로 반토막 #청약 소외계층 위한 공급도 필요

정부가 지난달까지 21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때마다 규제 예정지역의 부동산을 급하게 사는 ‘패닉 바잉’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9125건으로 5월(5516건)보다 3600건 정도 늘었다. 4월(3021건)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12·16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지난해 12월(9600건) 수준에 육박한다. 특히 30대가 적극적으로 아파트 매수에 가담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총 4328건이었는데, 이 중 30대가 29%인 1257건을 차지했다. 40대(27.8%)보다 더 많다. 30대는 올 1월부터 5개월 연속 40대보다 더 많이 서울 아파트를 사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5월에 3649채를 사들여 40대(4119채)와 50대(3369채) 못지않은 ‘큰손’으로 떠올랐다.

재건축 등 감안 땐 순증 연 3만4000채뿐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부양책과 투기 수요가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집값 급등의 원인을 수요 억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에서 찾는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시장이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급 없는 규제 때문”이라며 “더는 공급이 없다는 우려 탓에 사람들이 급히 집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공급 부족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 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부동산 보고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이 “발굴을 해서라도 추가로 공급 물량을 늘리라”고 지시했다. 10일 내놓은 22번째 대책에는 경제부총리 주재의 ‘주택공급확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도심 고밀 개발과 유휴부지 활용 등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재건축, 그린벨트 활용 등 30대들이 원하는 아파트를 공급할 방안은 이번에도 빠졌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주장에는 크게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주택의 절대 수가 부족하다. 통계청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 인구는 2015년 990만 명에서 2018년 967만 명으로 줄었다. 반면 총주택은 360만 채에서 368만 채로 늘었다. 일견 집이 모자라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1인가구의 증가로 가구수는 같은 기간 391만 가구에서 398만 가구로 7만 가구 늘었다. 주택보급률은 95.9%로 소폭 낮아졌다. 일반적으로 주택보급률이 110% 정도가 돼야 안정적으로 본다.

지난해 12월 한국주택학회가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18년 서울의 신축 주택은 연평균 7만5000채지만 재건축과 재개발에 따라 멸실되는 주택을 고려하면 순증분은 연 3만4000채에 불과하다. 연구팀은 “연 12만1000채의 신규주택이 필요하지만 2016~2018년 공급은 8만3000채에 그쳐 매년 3만8000채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정부가 매년 일정 가구를 꾸준히 공급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매년 공급이 일정량 줄어든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또 다른 문제는 전체 주택뿐 아니라 선호도가 높은 신축 아파트가 특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5년에서 2018년까지 아파트는 163만 채에서 167만 채로 4만 채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게다가 재개발과 재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해마다 낡아가고 있다. 서울에서 지은 지 40년이 넘는 아파트가 5만4000채(3.3%), 30년 이상인 아파트가 26만4000채(15.9%)다. 연평균 3만 채가 30년이 넘는 구축(낡은 아파트)이 되는 셈이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역세권 대단지 신축 초품아’는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서울 입주물량이 올해 4만1923가구에서 내년에는 2만1466가구로 줄어들 전망이다.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로 신규분양 물량도 당분간 나오기 어려워졌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공급부족 공방에 대해 “정부와 민간에서 공급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달라서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에서 생각하는 건 어디까지나 분양받을 수 있는 아파트를 말하는데, 정부는 임대주택이나 도시형생활주택, 다세대 다가구를 포함해 전체 주택 숫자로만 얘기한다는 것이다. 1만 가구의 아파트를 재건축하면 정부는 1500채가 늘었다고 보지만, 시장에서는 1만1500채의 신축 아파트가 생겼다고 받아들인다.

이처럼 실수요자가 체감하는 공급 물량이 부족한데도 정부와 여당은 최근 아파트 신드롬을 투기 또는 투자 관점에서 접근한다. 양도세를 중과하고 보유세를 늘리는 등 투기 수요를 차단하면 값이 저절로 내려간다고 생각한다. 반면 30대에게 아파트는 생존의 문제나 다름없다. 베이비부머 부모 아래서 20평, 30평 아파트에서 자란 세대다.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 본 적도 없다. 지하 주차장이 없고, 근처에 지하철도, 초등학교도 없는 집은 이들이 원하는 집이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아파트를 사기가 어려워진다. 가점제 청약 제도 아래서는 40대, 50대들과 경쟁해 당첨될 길이 없다. 손에 쥔 돈은 기성세대보다 얄팍한데 대출은 집값의 40%로 제한됐다. 규제가 나올수록 매물이 잠기니 무리해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자는 생각에 30대들까지 아파트 매수에 나서 수급 균형은 더 어그러진다.

“강남 10만 가구 공급해도 청약가점 불리”

지난해 서울 관악구에 집을 마련한 30대 맞벌이 직장인 B씨는 “요즘은 ‘청무피사’가 아니라 ‘청무구사’라고 한다”며 “더 늦기 전에 조금 좁고 낡은 아파트라도 마련하자는 아내의 의견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청무피사는 ‘청약은 무슨 피(프리미엄) 주고 분양권 사’, 청무구사는 ‘구축이나 사’의 약자다. 그는 “집을 산 친구들이 ‘실거주 한 채는 마련하는 게 좋다’고 조언할 때 ‘정부가 투기만 잡으면 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머쓱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집을 매매할 수 없는 청약 소외계층. 충분한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계층을 위한 공급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광수 미래에셋 연구위원은 “강남에 100층 건물을 지어 10만 가구를 공급해도 전부 청약 가점이 높은 50대, 60대만 가져가면 공급은 계속 부족할 것”이라며 “세대별 배려나 적절한 가격 유지를 통해 무주택자가 무리해서 유통 시장에 뛰어들기보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공급을 기다릴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영주택에도 생애최초 특별공급…공공택지 15% 할당

정부가 민영주택에 생애최초 특별공급 물량을 새로 할당하고, 국민주택 공급 비율도 20%에서 25%로 높인다. 또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추가 중소규모 택지를 발굴하고, 기존 택지에서는 용적률 상향 등을 통해 좀 더 촘촘히 짓는다. 국토교통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고 이 같은 내용의 주택 추가공급 계획을 밝혔다.

생애최초 특별공급 확대

생애최초 특별공급 확대

특별공급은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나 신혼부부, 다자녀 가구 등을 위해 물량을 따로 떼어내 공급하는 제도다. 투기과열지구 내 9억원 초과 아파트는 제외되고 85㎡ 이하 소형 평형에만 적용된다. 처음으로 민영주택에도 생애최초 특별공급을 신설했다. 민영주택 중 신도시와 같은 공공택지에는 15%, 민간택지에는 7%가량이 할당된다. 이에 따라 현재 신혼부부(20%)·다자녀(10%)·기관(10%)·노부모 부양(3%) 등 총 43%였던 민영주택의 특별공급 비율은 최대 58%까지 늘어나게 됐다.

국민주택 생애최초 특별공급 비율은 현행 20%에서 25%로 높인다. 국민주택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건설하거나 주택도시기금의 지원을 받아 건립되는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이다. 생애최초 물량을 포함한 국민주택의 특별공급 비율이 기존 80%에서 85%로 늘어나면서 가점제로 당첨될 수 있는 일반공급 물량 비율은 15%로 줄었다.

생애최초와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소득기준은 완화했다. 생애최초의 경우 국민주택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00%를 유지하되, 민영주택은 130% 이하까지 확대한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경우 생애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신혼부부에 대해선 분양가 6억원 이상 주택에 한정해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130%(맞벌이 140%)까지 완화한다.

국토부는 수도권 77만 가구 공급 계획에 더해 추가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신규 택지 물색에도 나선다고 밝혔다. 서울 등 수도권에 추가 중소규모 택지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서울의 강남권 택지를 확보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서울시와 협의해 왔으나 이번 대책에선 내용이 빠졌다. 정부는 또 180~200% 수준인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의 용적률 등을 상향해 수용 주택 수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도심 고밀도 개발을 위한 도시계획 규제 개선에도 착수한다. 상업지역이나 준공업지역 등지의 개발 규제를 완화해줘 더 많은 주택을 짓게 하는 방안 등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공공재건축’ 도입을 추진한다. 공공기관이 재건축 사업 시행에 참여해 공익성을 보강하면서 사업 속도는 높이는 방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조합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재건축 사업의 특성 상 공공재건축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김창우·최은혜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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