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이어 신현준도 '매니저 미투'…5명중 1명 계약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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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현준. 일간스포츠

배우 신현준. 일간스포츠

원로 배우 이순재씨에 이어 중견 배우 신현준씨의 매니저 ‘미투’가 불거지면서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양측 모두 오랜 기간 대중적 인기를 받아온 연예인이다 보니 파장이 적지 않다.
신씨의 전 매니저 A씨는 90년대부터 매니저 업무를 하는 동안 13년간 신씨에게 폭언 등의 갑질을 당했으며, 신씨에게 한동안 60~100만원가량의 월급밖에 받는 등 수익 배분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씨 측은 ‘터무니없는 일방적 주장’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앞서 이씨의 경우는 매니저 B씨가 이씨 부인이 지시하는 쓰레기 분리수거나 신발 수선 등 집안일까지 했다고 폭로했고, 이씨는 5일 입장문을 내고 “부덕의 소치였음을 겸허히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90년대만 해도 매니저가 은행에 가서 공과금 내는 문제부터 자녀들 등하교까지 모두 처리했다”며 “과거와 비교하면 이씨의 사례가 드문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우 이순재. 권혁재 기자

배우 이순재. 권혁재 기자

한국의 매니지먼트 산업은 역사가 짧은 편에 속한다. 한국에서 매니지먼트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가수의 개인 매니저가 생겨나면서부터다. 그러다가 영화배우(1970년대), TV 탤런트(1980년대)로 확대됐으며 기업형 매니지먼트사가 나온 것은 1994년 새한미디어에서 ‘기업형 매니지먼트’를 표방하면서 연예 매니지먼트사 스타서치를 설립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를 필두로 대형 매니지먼트들이 탄생하면서 매니지먼트가 하나의 산업의 영역으로서 자리잡기 시작했고, 매니저와 연예인의 관계도 가족에서 사업적 관계로 바뀌었다.
김의겸 대중문화마케터는 “2000년대 이전까지는 연예인과 매니저 간의 호칭도 ‘형’, ‘동생’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공·사적 업무의 구분이 없었다”며 “최근 사건들은 대개 오래전부터 활동했던 연예인들 주변에서 나오고 있는데, 매니지먼트 업무 문화가 바뀌는 과정에서 나오는 과도기적 상황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매니지먼트산업 발달기. 한국콘텐트진흥원 '연예기획사 등록제 도입과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 활성화 방안 -한국과 일본 사례 비교·분석-'에서 인용

한국의 매니지먼트산업 발달기. 한국콘텐트진흥원 '연예기획사 등록제 도입과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 활성화 방안 -한국과 일본 사례 비교·분석-'에서 인용

2000년대 들어 개선되긴 했지만 제대로 된 계약서 없이 매니지먼트 업무가 진행되는 환경은 여전하다. 한국콘텐트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2019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매니저먼트 업무에서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79.9%였다. 이는 4년 전 53.0%(2014년)에 비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5명 중 1명은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 셈이다. 또, 4.6%는 자체계약서, 3.3%는 구두계약으로 계약하고 있으며, 12.2%는 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편 일본의 경우 매니지먼트 산업이 비교적 일찍부터 발달했다. 한국콘텐트진흥원이 2012년 낸 『연예기획사 등록제 도입과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 활성화 방안-한국과 일본 사례 비교ㆍ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대중 연예 사업을 벌이던 요시모토흥업이 1948년 주식회사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면서 기업형 매니지먼트 사업이 시작됐다. 일본에서는 매니지먼트 사업이 직업안정법에 의해 ‘유료직업소개사업’으로 분류돼 후생노동성의 엄격한 심사와 허가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일본은 매니지먼트 산업이 전문적 직업 영역으로서 오랫동안 이어져 오다 보니 매니저와 연예인이 서로의 직업을 존중하고 공·사 영역도 거리가 지켜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를 다룬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 [사진 MBC '전지적 참견 시점']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를 다룬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 [사진 MBC '전지적 참견 시점']

김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SM, JYP, YG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많은 문제점이 개선되고 있지만, 이는 몇몇 메이저 회사들에 국한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0~20명으로 운영되는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법정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하는 등 각종 대우 문제가 여전히 90년대 수준인 곳도 많다”며 “부당한 대우에 폭발하는 제3, 제4의 매니저 '미투'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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