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제2의 에이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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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수만 명의 사람의 뇌에 한꺼번에 구멍이 뚫려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98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한 동성연애자에게서 당시까지 보지 못한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열이 나고 마른기침이 나는 폐렴이었는데 폐에서 흔히 보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닌 住肺胞子蟲주폐포자충pneumocystis carinii이 발견됐다. 주폐포자충은 정상인은 걸리지 않고 만성질환을 오래 앓아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나 나타나는 보기 드문 기생충이다.

의사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에 비슷한 괴질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美질병예방통제센터CDC의 역학조사반이 동원되어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몽타니에 박사팀이 처음으로 에이즈바이러스를 분리해냈다. 면역을 담당하는 T림프구에 침투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새로운 바이러스였다.

인류 최대의 疫疾로 일컬어지는 에이즈가 등장한 것이다.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2천1백만 명이 사망했고 현재 3천6백만 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상태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2001년 인류는 에이즈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하나의 복병을 만나 시름을 앓고 있다.

바로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광우병이다. 광우병 파동은 1986년 영국에서 이상한 소들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처음엔 체중이 감소하며 안절부절못하다가 급기야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부르르 떨다가 주저앉아 죽었다.

조사해보니 소의 뇌조직이 녹아내려 마치 스폰지처럼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기괴한 현상이 관찰됐다. 미친 소에게서 나타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광우병mad cow disease이 처음 등장한 순간이다.

광우병의 의학적 용어는 BSE(Bovine Spongiform Encepalopathy)로 이를 우리말로 옮긴다면 〈牛 海綿樣 腦病症우 해면양 뇌병증〉이다. 처음엔 소와 같은 가축에게나 생기는 전염병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영국에서 이상한 환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바로 크로이츠펠트 야콥병Creuzfeldt Jakob Disease, CJD이다.

1920년대 처음 규명된 이 질환은 주로 60세 이상 노인에게 우울감과 기억력 감소 등 치매증상으로 나타났다가 서너 개월에 걸쳐 손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사망하는 신경계통의 병이다.

이 병은 1백만 명 가운데 1명 꼴로 나타나는 희귀질환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9년부터 1990년까지 2,614명이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으로 숨졌으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67세였다.

문제는 90년대 중반 영국에서 나타난 환자들은 색다른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영국에서만 80여 명의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중 10명이 노인들에게나 나타나는 기존 크로이츠펠트 야콥병과 달리 20대와 30대의 젊은 환자였으며, 이중 4명이 소를 기르는 가축농가의 농부였다.

게다가 이들 모두 광우병이 발생한 지역에서 기른 소의 고기를 10년 이상 먹은 경력이 있었다.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영국 보건부는 전문가를 동원해 역학조사를 벌였고 이것이 소에게 나타난 광우병이 사람에게 전염된 새로운 형태의 신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ariant CJD이란 결론을 내렸다.

영국 정부는 이 사실을 1996년 처음 언론에 공개하고 대대적인 도살작업에 나서게 된다. 광우병 파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엔 영국에 국한된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광우병에 걸린 소들이 프랑스와 독일, 아일랜드 등 유럽 본토에서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이 유럽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되고 있는 유럽에선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식단에서 일부러 쇠고기를 배제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신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1백여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들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고 걸렸다는 어떠한 직접적인 증거도 없다.

소의 광우병이 사람에게 신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을 일으킨다는 심증은 있으나 확증은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세계가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대비를 소홀히 하다 어느 날 갑자기 수만 명의 사람의 뇌에 한꺼번에 구멍이 뚫리는 참사가 발생할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미 인류는 에이즈를 통해 신종 전염병의 위력을 실감한 바 있다. 다행히 에이즈는 90년대 중반 칵테일요법의 등장으로 불치병에서 난치병의 하나로 격하됐다.

그러나 광우병은 생물학적으로 에이즈와는 전혀 다른 병원체란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에이즈가 바이러스가 옮기는 질환이라면 광우병(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광우병은 소가 앓는 병이므로 사람에겐 신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라고 해야 하나 같은 병원체가 옮기는 병이므로 편의상 광우병으로 한다)은 프리온prion이란 단백질 입자가 원인이다.

프리온은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생물체가 아닌 단백질 입자임에도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인간에게 전염되기 때문이다.

광우병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선 우선 프리온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1957년 美국립보건원의 칼튼 가이듀섹Carleton Gajdusek 박사는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에게 유행하는 풍토병을 조사하던 중 프리온의 존재를 처음으로 규명해냈다.

이곳 원주민에겐 친지가 생명을 잃게 되면 장례 후 친지의 뇌를 파내어 먹는 식인풍속이 있었다. 가이듀섹 박사는 이들의 풍토병이 食人풍속에서 비롯됐음을 밝혀내고 죽은 사람의 뇌 속에 들어있는 단백질 입자가 원인임을 찾아냈다. 그는 이 공로로 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프리온을 실제 분리해내고 이들의 생물학적 性狀을 구체적으로 밝혀낸 이는 미국 UCSF大 醫大의 스탠리 프루시너Stanley Prusiner 교수였다.

그는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 입자를 프리온이라 명명하고 이들이 인간의 체내에서 원래 모양을 뒤바꿈으로써 뇌신경 등 정상세포의 손상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프리온은 생물과 무생물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유전자가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하등 생물체인 바이러스도 자신과 닮은 개체를 만들기 위해 유전물질인 DNA나 RNA를 갖고 있으나 프리온은 이들 DNA나 RNA가 전혀 없다. 프리온은 생물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異種 단백질임에 분명한 프리온이 인체 내에 들어왔는데 왜 면역계가 이를 감지해 파괴시키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프루시너 교수는 이를 단백질 입자의 3차원 구조가 변화되는 것으로 프리온 특유의 毒性을 해석했다.

즉 침투 당시 프리온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낸 단백질처럼 면역계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위장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일정한 온도에서 특정한 모양을 갖추는 형상기억합금처럼 뇌신경에 독성을 미치는 구조로 변한다는 것이다.

프리온이 일으키는 초기 뇌신경 손상은 복잡한 경로를 통해 화학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이것이 뇌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프루시너 교수 역시 이를 규명한 업적으로 9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된다.

프리온이 생물이 아닌 단백질 입자란 점은 인류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抗바이러스제제 등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숱하게 많은 약제들이 모두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치료는 물론 예방도 어렵다. 프리온은 열에 매우 강하다. 열에 약해 쉽게 變性이 일어나는 일반적인 단백질과 달리 3백도 이상의 高熱에서도 수십 분 이상 버틸 정도다.

자외선이나 방사선, 화학약품에도 매우 강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천 배의 강도와 용량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 쇠고기를 완전히 태운다면 모를까 끓는 물에 익히거나 살짝 굽는 정도로는 감염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느닷없는 광우병 프리온의 출현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소와 같은 초식동물에게 양고기 등 육식사료를 먹인 것을 원인으로 본다.

광우병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보자. 1730년 영국의 양떼에서 원인 모를 怪疾이 발생했다는 문헌이 남아 있다. 갑자기 양들이 안절부절못하며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털과 피부를 담장에 비비는 발작적인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양에게 나타나는 가축병인 스크래피scrapie다. 스크래피는 지금도 드물지만 산발적으로 양에게 나타난다. 문제는 영국의 소 사육업자들이 70년대부터 소에게 양고기를 사료로 먹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크래피로 죽은 양고기도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양에게 스크래피를 일으키는 프리온이 소의 뇌에서 광우병을 일으키고 이것이 사람에게 옮겨가면 신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소에게 육식사료를 먹이지 않고 광우병 소가 발견된 적도 없으므로 광우병에 관한 한 일단 안전지대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광우병을 옮기는 프리온은 비단 쇠고기를 먹어야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의 뼈나 내장에서 추출되는 기름을 이용해 만든 공업용 아교나 젤라틴 속에도 프리온 입자가 얼마든지 함유되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들을 그냥 만지는 것 만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재료로 만든 의료용구라면 곤란하다. 충치치료 후 치아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치과용 충전재료 중 유럽산 소에서 비롯된 원료를 이용해 제조된 것이 있다면 광우병에 걸릴 수도 있다.

소의 태반에서 추출한 피부노화 방지용 화장품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피부를 통해 프리온 입자가 얼마든지 뇌로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혈지침까지 바꾼 나라도 있다.

광우병 프리온이 감염자의 혈액을 통해 수혈로 옮겨질 수 있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소에게 광우병이 유행하기 시작한 96년 이전 영국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한 사람은 헌혈을 금지하고 있다.

광우병이 우리 나라 등 동양권이 아닌 영국 등 유럽에서 시작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지적도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소의 모든 부위를 가리지 않고 먹는 동양권 특유의 식습관 때문이다.

광우병 프리온은 소의 뇌와 척수 등 신경계에 가장 많이 분포해 있다. 소의 뇌를 먹는 일은 없지만 설렁탕 등의 형태로 자주 섭취하는 등뼈 속의 척수는 아주 위험하다.

소의 혈액인 선지를 재료로 만든 해장국도 프리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광우병에 걸린 소라 할지라도 젖에서 나온 우유만은 프리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안심해도 좋다.

그렇다면 소의 근육부위인 쇠고기는 어떠할까. 한국 땅에서 기르는 소에선 아직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안심해도 좋다.

수입산 쇠고기도 안전하다. 草食사료를 먹이고 광우병 유행지역이 아닌 미국에서 주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산 쇠고기도 꺼릴 이유는 없다고 본다.

광우병은 전체 유럽국가의 사육 소 가운데 0.1%도 되지 낳는 숫자로 나타나며 과거와 달리 요즘은 발견 즉시 이들 소를 도살하고 있기 때문에 시판 중인 유럽산 쇠고기의 대부분은 광우병과 무관하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소의 근육에선 프리온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유럽산 쇠고기가 1백% 안전하다고 보장할 순 없다. 소를 도살하는 과정에서 프리온이 묻은 칼로 쇠고기를 자를 때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라면 유럽산 쇠고기라도 기꺼이 먹겠다.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 유럽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여 유럽 일대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설렁탕이나 선지국, 소의 간이나 곱창 등 한국식 요리만은 삼가주길 바란다. 스테이크라면 가급적 덜 익혀먹는 ‘rare’ 스타일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21세기 첨단의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광우병 파동은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보복이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풀을 뜯어먹도록 진화된 소에게 억지로 양고기를 먹인 것이 화근인 셈이다.

프리온이든 바이러스든 대부분의 병원체는 원래 숙주에선 대부분 탈을 일으키지 않고 共生관계를 유지한다. 독성이 강해 숙주가 빨리 죽어버리면 자신도 멸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이즈 바이러스 역시 아프리카 원숭이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사람에게 옮겨오면서 치명적인 면역결핍증세를 일으킨다. 양에선 단순히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프리온이 소와 사람에겐 뇌에 구멍을 뚫는다.

지구는 인간의 행복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설령 인류 전체가 멸망한다 할지라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진달래가 피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40억 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통해 진화를 거듭한 지구의 생태계를 고작 50만 년 전에 등장한 크로마뇽인의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만저만 오해가 아닐 수 없다.

자연에 대한 겸허한 자세야말로 오늘날 인류가 광우병 파동을 대하며 되새겨야할 교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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