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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수사엔 왜 말이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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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치른 재·보선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성적이 별로였다. 친이와 친박으로 당이 쪼개져 싸움만 하니 그 모양 그 꼴이란 비판이 많았다. 선거 결과가 나오던 날 박근혜 당시 대표에게 ‘왜 협력하지 못하느냐’고 물었더니 “탱크 동원해서라도 세종시 건설을 막겠다는 분과 손 잡고 유세하면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MB를 맹비난했다. 이명박 청와대에선 ‘박근혜 대통령만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는 문건이 마구 돌아다녔다.

권력 빌붙지 않는 검찰 만들려 #공수처, 사법개혁 주장하면서 #권력층 수사 왜 지지부진한가

하지만 정권이 두들겨 팰수록 박근혜 대세론은 확산됐다. 동정심이 먼저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 준 1등 공신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왕적 총재’ 소리를 듣던 이회창 전 대선 후보도 그런 주문을 많이 받았다. 2002년 대선 패배 후 차떼기 사건으로 검찰에 불려갈 때 ‘무조건 감옥에 가야만 한다’고 참모들이 조언했다. ‘노무현 정권의 서슬 퍼런 칼날에 맞는 게 다음 대통령 당선증’이라고들 했다. 이 총재는 구속되지 않았다. 대통령도 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안 때릴 줄 알았다. 긁어 부스럼 만드느니 서서히 말려 갈 거라고 봤다. 어차피 손발이 잘려 나가 식물총장 소리를 듣는 마당에 구태여 잘라 낼 필요가 뭐가 있겠나. 지리멸렬한 야권에 때릴수록 살아나는 주자를 보탤 필요가 없지 않나.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이중삼중으로 꼬이다 어쩌면 어영부영 진짜 야권 후보로 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무엇보다 두들겨 패는 방식이 얼토당토 않아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싸움박질은 ‘내 지시를 잘라먹었기 때문’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윤석열 총장의 자문단 소집 중단을 지시한 추미애 장관은 반년 전 ‘조국 수사’ 땐 “자문단 등 외부 위원회를 적극 활용하라”고 공문을 날렸다. ‘손혜원 사건’에도 자문단의 불기소 결정이 있었다. 자문단 소집은 핵심이 아니다. 또 있다. 1년 전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은 윤 총장에게 법무장관의 부당한 지시는 거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청와대 뜻이 법무장관을 통해 검찰총장에게 전달돼 많은 사건이 왜곡됐다는 개탄이 줄을 이었다. 검찰총장 임기 2년 규정도 지금 정권이 야당 시절 ‘검찰 중립’을 외치며 주도해 도입됐다. 그럼 뭔가. 죄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그러면 이 정권이 입만 열면 외치는 검찰 개혁과 공수처 주장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검찰 개혁의 핵심이 ‘권력에 빌붙지 않는 검찰’이라고 말하지 않는 여권 인사를 단 한 사람도 못 봤다. 추 장관은 “검찰 개혁에 결코 정치적 목적이나 어떤 사사로움을 취해선 안 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님’에게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비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임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말이 그렇다는 거다.

추 장관은 어제 ‘공정한 수사’를 또 거론했다. 그의 말이 액면대로 먹히려면 의심을 한 방에 날려 버릴 방법은 있다. 사실상 실종 상태인 윤미향 사건을 당장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지휘권을 강하게 발동하는 것이다. 권력 실세의 개입이 의심되는 여러 펀드 사기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수사에 훨씬 잘 드는 칼을 쥐여주고, 본인 아들 의혹엔 특임검사 임명을 지시하면 된다. 법무장관 아들 사건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반년이 됐다. 윤미향 사건은 두 달이 지났다.

이 정권 인사들은 자기 편 사건이 불거지면 ‘일단 수사 결과를 지켜 보자’는 말을 밥 먹듯 했다. 기소되면 심지어 ‘재판 결과를 기다리자’고 했다. 범죄 단정에 이토록 신중한 자세를 남의 편 사건에도 적용해야 공감을 산다. 내 편 아니라고 검찰총장을 법무장관이 괴롭히는 건 직권남용이다. 그럴 거면 권력을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말은 그냥 해 본 말일 뿐이었다고 고백하고 윤 총장을 자르는 게 당당한 일이다. 그게 서로 깔끔한 길이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