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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용호 논설위원이 간다

“대권, 나와 무관한 일” 손사래 치지만 행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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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야권 대권주자설, 김동연 이틀간 동행기

김동연 전 부총리가 8일 오후 부산창업카페에서 청년들과 기성 세대들이 소통하는 ‘영·리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날은 어려움을 겪는 청년 여행사 CEO의 얘기를 듣고 소통했다. [연합뉴스]

김동연 전 부총리가 8일 오후 부산창업카페에서 청년들과 기성 세대들이 소통하는 ‘영·리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날은 어려움을 겪는 청년 여행사 CEO의 얘기를 듣고 소통했다. [연합뉴스]

김동연(전 경제부총리)에겐 ‘스토리’가 있다. 어머니와 세 동생의 생계를 책임졌던 소년 가장. 상고를 나와 은행을 다녔고 그 시절 야간대에서 행정·입법 고시 합격. 공무원이 돼선 기재부 차관을 거쳐 부총리까지. 국무조정실장 시절엔 돌연 사표를 내고 소외된 청소년을 위한 강연 봉사에도 나섰다. 알 만한 이들은 아는 얘기다. 거기다 큰아들(28)이 2013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국무조정실장이던 그는 아들을 보낸 날도 맡은 일을 끝내기 위해 조용히 출근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그에게 지난 총선 여야의 러브콜이 빗발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엔 김종인발 야권 대선후보군으로서다. 김종인이 “밖에서 꿈틀꿈틀거리는 사람도 있는 거로 안다”고 하자 통합당 안팎에서 ‘김동연’ 이름이 나왔다.

법인 ‘유쾌한 반란’ 세워 광폭 행보 #청년·농어민과 전국서 혁신 간담회 #거제 간담회선 주민이 대권 질문 #“지도자, 실력·비전·공감력 갖춰야”

그는 지난 1월 사단법인 ‘유쾌한반란’을 세워 전국을 돌고 있다. 농어촌 혁신과 ‘영·리해’ 활동이 최근 공을 들이는 분야다. 농어촌 혁신과 관련해선 직접 농어촌을 찾아 혁신 강연과 간담회를 하고 다닌다. 영·리해는 젊은이의 꿈과 실패를 기성세대가 배우는 소통·공감 프로그램이다. 그가 거기에선 뭐라 하고 어떻게 하는지 직접 강연장을 찾아가 봤다.

#7일 오후 5시, 경남 거제의 남쪽 다대마을

300명이 모여 사는 작은 다대마을 회관 앞이 북적였다. ‘김동연과의 간담회’를 위해 모인 이가 족히 60~70명은 돼 보였다. 이곳은 어촌체험마을을 운영하며 거제에선 혁신에 앞장서는 마을로 손꼽힌다. 한 주민이 “덕수상고 출신 그 자수성가한 사람, 그분 오는 거 맞제?”라고 하자 다른 주민들이 “니 아네…맞다. 맞다”며 맞장구를 친다. 또 다른 한 주민은 “그 요새 대권 후보 얘기도 나오더라”며 관심을 보였다. 마을에 김동연이 도착한 후 곧바로 ‘혁신 강연’이 시작됐다. 핵심은 시종 혁신이었다. 노련한 김동연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어린 시절 ‘고생기’로 관심과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강연 중 “내가 고시 합격해서 공무원이 됐는데 어디선가 ‘별의별 학교 나온 애들이 시험을 붙어오네’란 말을 들을 정도로 무시당한 적이 있었다”고 할 때는 주먹을 불끈 쥐는 어부도 있었다.

그런 후 이런 문장도 소개했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그칠 것이다. 이러하니 어찌 충신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 있는가.”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에 나오는 대목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지금 얘기 같지 않나. 나라에 어려움이 많다. 모든 국민이 충신지사가 돼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국가를 끌고 갈 비전과 실력,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의는 1시간10분간 진행됐다. 강의 후 어부들과 일문일답 시간엔 어김없이 대선 얘기가 나왔다.

고령화 등 어촌 문제가 많다. 언론에 대권 얘기가 나오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 문제를 아는 분이 리더가 돼야 어촌 혁신이 될 거 아니냐.
“(난감한 듯) 고령화와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부총리 그만두고 직접 어떤 것도 개입하지 않았고 언론 접촉도 안 했다. 성찰과 반성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지냈다. 정치나 총장직 등 여러 제의를 거절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방을 많이 다녔다. 솔직히 고향(충북 음성) 빼고 다 갔다. 음성은 괜히 오해받을 것 같아서…. ‘유쾌한반란’ 얘기를 했는데 지금도 작은 실천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 대권은 금시초문이고 혁신 일만 해도 바쁘다. 저와 무관한 일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배려하고 소통하고 작은 실천을 하는, 그런 것을 진정성을 갖고 열심히 하려 한다.”

#8일 오전 5시, 해달이 나타난 정치망 바다 작업장

김동연 전 부총리가 8일 오전 5시 다대마을 앞 바다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정치망 멸치잡이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다. 신용호 기자

김동연 전 부총리가 8일 오전 5시 다대마을 앞 바다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정치망 멸치잡이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다. 신용호 기자

질의가 끝나고 김동연과 주민들은 막걸리 간담회를 이어갔다. 거기서도 “대통령을 하면 잘할 사람”이란 말이 나왔지만, 김동연은 손사래를 쳤다. 간담회에선 술과 함께 주민들의 공무원에 대한 불만, 어촌계 운영 얘기가 이어졌고 어촌의 저녁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음날 새벽 5시엔 바다로 나갔다. 어촌체험 차원에서 정치망 작업을 김동연이 직접 했다. 정치망 작업은 그물을 일정한 장소에 두고 거기 들어온 고기를 잡는 걸 말한다. 김동연이 어부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경험해 보고 싶다는 뜻을 마을에서 받아들였다.

마을에서 5분 거리 정도의 바다에 설치된 정치망에서 작업복 차림의 김동연이 어부들과 함께 정치망을 좁혀갔다. 시간이 지나자 바다에 넓게 펼쳐졌던 그물이 한곳으로 모였고 거기에 갇힌 멸치와 갈치, 호래기(꼴뚜기)들이 퍼덕거렸다. 김동연은 뜰채로 고기들을 옮겨 배에 실었다. 이날 작업은 30~40분 정도 계속됐고 작업에 보탬이 된 것 같았다. 같이 작업하던 어부가 농담으로 “정치 같은 거 하지 말고, 이게 체질이시네”라고 할 정도였다. 이날 바다엔 먹이를 구하러 나온 해달 한 마리가 헤엄쳐 다녀 눈길을 끌었다.

김동연은 배에서 내린 후 “바다는 여러 여건이 변화무쌍한데 그런 환경에 대처해야 하니 태생적으로 창의적인 게 어업 같다”고 했다. 김동연은 다음 날 부산으로 옮겨가 오후 4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부산창업카페에서 ‘영·리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 여행사 CEO의 얘기를 듣는 자리였다. 행사 중 기자들이 다가가 대선 출마 의향을 묻자 이날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답을 하지 않았다. “오늘 행사에 관련해서만 언급하고 싶다”면서였다. 다음은 이틀 동안 행사 중 그와 나눈 대화, 강연 내용 등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최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데.
“말의 상찬이 벌어지고 있는데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유쾌한반란’을 만들었고 오해받기 싫어서 정치 일정(총선)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혁신이 왜 중요한가.
“세계 해전사 중 불가사의한 전쟁 하나가 1588년 칼레해전이다. 수병 9000, 보병 2만의 ‘무적함대’ 스페인을 6000의 수병, 영국이 무찌른다. 비결이 혁신이다. 혁신을 통해 청동대포를 주물대포로 바꿔 승리했고 이 전쟁은 그 후 영국 성장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혁신의 콘셉트로 ‘가보지 않는 길’을 강조하는데.
“혁신이 바로 남이 안 가본 길을 가는 것이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100m 결승에서 모든 선수가 뻣뻣이 서서 출발하는데 토머스 버크만 웅크리고 출발하는 크라우칭 스타트로 금메달을 땄다. 그 후론 모든 선수가 크라우칭 스타트를 한다.”
코로나로 인해 확대 재정이 이뤄지고 있다. 재정건전성엔 문제가 없나.
“직전 부총리로 현 정부 평가에 대한 논평은 도리가 아닌 것 같다.”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데 그런 뜻을 분명히 할 수 없나.
“그런 질문을 별로 받고 싶지 않고 답하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혁신에 대한) 진정성을 이해해 달라.”

김동연의 길을 주목한다

이틀을 만났지만, 그는 불거진 대권론이 부담스러워서인지 일문일답식 인터뷰는 사양했다. 정식 인터뷰를 하면 정치적 입장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게 껄끄러운 듯했다. 행사 중간중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정치 참여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은 어려웠다. 대신 그는 주민들의 ‘정치 참여’ 질문에 답하면서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혁신 운동을 향한 진정성을 믿어 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총리까지 한 성공한 경제 관료다. 입지전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고위 관료가 물러난 후 흔히들 가는 길인 정치, 기업, 학교(총장) 제안을 그는 다 마다했다. 그가 가는 길은 지도에 없는 길이다. 그는 진정 무엇을 꿈꾸는가. 그는 사석에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얘기한 적 있다고 한다. 정치란 게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거지만 안 하려 한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치 입문 전에는 정치를 절대 안 하겠다고 한 사람이다. 그가 가려는 혁신의 길, 시대정신과도 멀지 않다. 과연 그의 깊은 속내는 뭘까.

김동연·윤석열·백종원의 공통점은 충청

김종인(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백종원씨 같은 분 어때요?” 한마디에 불거진 대권설이 윤석열(검찰총장)을 거쳐 김동연(전 경제부총리)으로까지 번졌다. 최근 윤석열이 한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3위에 오르는가 하면 통합당 내에선 ‘김동연 영입설’이 조심스레 거론된다. 그런데 대권설에 휩싸인 세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충청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백종원의 고향이 충남 예산이고 윤석열은 부친이 충남 공주 출신이다. 미래통합당 정진석 의원은 지난 1월 공주에서 의정보고회를 하며 ‘공주 출신 윤석열 손발 자른 검찰 대학살, 국민은 분노한다’는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김동연의 고향은 충북 음성이다.

이 때문에 김종인이 충청 카드를 선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통합당 고위 관계자는 “충청 후보가 김 위원장의 머릿속에 있는 것 아니냐”며 “백종원을 언급한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충청권 한 의원은 “민주당에서 현재 지지율 1위인 이낙연 의원이 대선 후보가 될 경우 영남권이 텃밭인 야권에선 충청 주자를 내면 필승카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용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