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보다 좀 더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반도’의 캐릭터들은 (좀비가 창궐한 반도에서) 탈출하고 싶어하지만 탈출 이후 바깥세상도 녹록지 않죠. 어디에 있느냐보다 누구와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좀비 재난 영화 ‘부산행’(2016) 4년 후를 그린 후속작 ‘반도’(15일 개봉)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의 말이다. 9일 서울 CGV용산 영화관, 영화가 첫 베일을 벗은 언론배급 시사회 후 강동원‧이정현‧권해효‧김민재‧구교환‧김도윤‧이레‧이예원 등 배우들과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다.
좀비 장르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사상 최초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으로 칸영화제 심야상영부문에 공식 초청됐던 연 감독이다. 이날 취재진의 질문도 그에게 집중됐다. 연 감독은 “‘부산행’을 만들던 4년 전엔 전혀 예상 못 했던 K좀비란 말이 생긴 것 자체가 신기하다”고 했다.
'부산행' 후속작 '반도' 15일 개봉 #강동원 "속편 선택 쉽지 않았지만…"
이번 영화의 배경은 ‘부산행’에서 의문의 바이러스가 창궐한 후 전 세계로부터 고립돼 폐허가 된 한국. 4년 전 가까스로 홍콩으로 탈출했던 전직 군인 정석(강동원)은 피치 못할 제안으로 인해 매형(김도윤)과 함께 좀비 떼가 득실대는 서울로 향한다. ‘부산행’보다 규모를 키운 190억 원대 총제작비(손익분기점 250만 관객)로 115분을 볼거리로 꽉 채웠다.
연 감독에 따르면 “‘부산행’은 고립된 KTX라는 공간적 배경과 결합해 좀비 캐릭터가 생겼다면 이번 영화는 포스트아포칼립스(멸망 이후의 세계관) 한국, 서울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다음은 간담회 1문 1답이다.
- 코로나19 속에 개봉하게 됐다.
연상호 감독: “7월 정도 개봉을 생각하고 준비해왔고 예정대로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로 침체된 극장가에 북적북적한 활력이 생겼으면 한다.”
- ‘부산행’의 KTX처럼 ‘반도’에선 (폭력집단이 된 군부대) 631부대의 아지트인 쇼핑몰이 인상적인데.
연상호 감독: “낯선 배경이지만 그 안에 한국인이라면 익숙하게 이해하는 코드들이 잘 들어가 있길 바랐다. 쇼핑몰은 여러 후보를 찾다가 택했다. (좀비물 아버지) 조지 로메로 좀비영화부터 어떤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그것이 무너져내렸다는 게 포스트아포칼립스 세상의 상징으로 표현돼왔는데 그런 클래식한 설정을 계승했다.”
- 강동원은 흥행영화의 후속작 주연이란 부담 없었나.
강동원: “속편을 한다는 게 배우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감독님이 그린 비전이 좋았다. ‘부산행’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오히려 든든했다.”
- 무자비한 631 부대는 살아있는 사람을 좀비들과 싸움 붙이는 ‘숨바꼭질’ 게임도 벌인다. 연기톤은 어떻게 잡았나.
김민재: “집단의 이익을 위한 폭력성을 보여주는 게 주안점 아니었나 생각된다. 감독님과 소통하며 만들어갔다.”
- 일상에서 시작하는 ‘부산행’과 달리 ‘반도’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는데.
연상호 감독: “‘부산행’도 마찬가지고 ‘반도’도 어떻게 보면 시시한 인간의 이야기다. 주인공 정석은 어마어마한 임무나 대의를 갖지 않은 보통 사람인데 처한 배경이 다르다. 그런 배경에서 보통 사람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현실성을 획득하리라 생각했다.”
- 배우로선 정석을 어떻게 해석했나.
강동원: “합리성을 따지는, 약간은 차가울 수 있는 인물. 정석은 잘 훈련된 군인이지만 히어로같은 캐릭터는 아니다. (폐허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남은) 민정 가족이 진짜 히어로라 생각했고 폐허로 돌아가 만난 그들로 인해 정석도 희망을 되찾아간다고 봤다.”
- ‘반도’는 좀비 등장신부터 20분여 대형 자동차 추격전 등 ‘부산행’보다 컴퓨터그래픽(CG)이 많이 쓰였다.
연상호 감독: “‘부산행’ 좀비의 계승이자 다른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숨바꼭질’ 게임이나 불타서 서로 엉겨 붙어 버둥대는 좀비들 같은 새로운 디자인이 들어갔다. 역시 전영 안무가와 같이한 ‘부산행’ 때 좋았는데 못 썼던 콘셉트도 몇 개 살렸다. 자동차 추격전은 대부분 CG 힘을 빌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느낌으로 작업했다.”
- 이정현의 극 중 딸을 연기한 막내 이예원은 대선배들과 공연해본 소감은.
이예원: “(이)정현 엄마가 가수로서 부른 노래는 저도 몇 곡 알았는데 강동원 삼촌도 옛날에 되게 핫했다고 하더라.(좌중 웃음) 다 잘챙겨주셔서 여기까지 왔다. 선배님들 연기에 우와, 했다. 이레 언니까지 진짜 빈틈 하나 없었다.”
- 각자 캐릭터의 어떤 부분에 중점 두고 봐주길 바라나.
권해효: “기본적으로 희망에 대한 영화다. 세대간 모든 게 단절된 시대에 극 중 (제가 맡은)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유사 가족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습이 부여하는 의미가 컸다.”
이레: “준이는 어릴 때부터 폐허가 된 세상에서 자라난 아이여서 상처가 있고 많은 것에 무뎌져있다. 자동차 추격전 통쾌하게 즐기시고 그 아이의 마음까지 봐주시면 좋겠다.
이정현: “민정은 모성애 때문에 살아남은 캐릭터다. 아이 때문에 강인하게, 짐승처럼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 그대로 봐주시라.”
강동원: “정석은 정말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그렇게 살다 희망을 찾게 되는 캐릭터로, 그런 측면에서 감정선을 따라가 주시라.”
구교환: “서 대위의 관전 포인트는 어떤 욕망을 가진 사람의 불안한 직전.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다.”
- ‘부산행’에서 (이기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김의성의 ‘명존쎄’(명치를 매우 세게 때린다는 의미의 인터넷 용어) 흥행 공약도 화제였다. ‘반도’ 악역 김민재‧구교환은 김의성을 뛰어넘는 공약이 없을까.
김민재: “김의성 선배는 독보적이라 뛰어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구교환: “공약 어어….”(고민)
강동원: “내일까지 고민해서 개인 계정에 올리는 걸로.(웃음)”
연상호 감독: “‘부산행’ 때 초등학생들이 좋아한 게 기억난다. 친구 아들들, 저희 장인어른, 부모님도 후속편을 기대하셔서 신기했다. ‘반도’를 준비하며 보편적인 메시지, 전 연령층이 다 볼 수 있는 영화가 되도록 신경 썼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극장에서 추억거리가 됐으면 좋겠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