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강남 개발이익 공유화’ 주장에 대해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9일 “정치적 의도”라고 반발했다. 서울시는 박 시장이 이 사안을 언급한 지 나흘 만에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이를 밀어붙이는 태세다.
정순균, "작년 공공기여 하기로 이미 협약 맺어"
정 구청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삼성동 현대차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사업의 공공기여금을 서울시 균형발전에 써야 한다는 (박 시장의) 기본정신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해당 사안은 작년에 이미 공공기여를 이행하기로 정해둔 사안인데, 지금 시점에 느닷없이 이 문제를 들고나온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강남구는 지난해 공동재산세로 걷은 2300억원도 나머지 24개 자치구에 분배하는 등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며 “(박 시장의 발언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발단은 박 시장이 지난 5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다. 박 시장은 이 글에서 “현행 법에 따르면 GBC 건설로 생긴 공공기여금 1조7491억원을 강남에만 쓰도록 강제돼있다”며 “강남권 개발 이익이 강남에만 독점되면 부동산 가격을 부추기고 서울시 균형발전을 원하는 시민의 바람과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서울시의 요청에도 장기간 법령 개정에 소극적인 국토교통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시장 글 올리자마자…서울시, 나흘만에 “73% 동의”
이후 서울시는 곧바로 '개발이익 광역화'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9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서울시민 10명 중 7명이 개발이익 광역화 법 개정 필요성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64.3%는 공공기여금이 서울시 전체에서 활용되는 것에 동의했다. 현행 법 개정에도 72.9%가 동의했다. 강남 3구(서초·송파·강남) 주민 중에서는 54.8%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한강 정비 등에 1조7000억 쓰기로
하지만 강남구는 박 시장의 문제제기가 구문에 가깝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12월 13일 현대차그룹은 공공기여금 이행 계획을 이미 확정했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재원은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탄천·한강 정비 및 친수공간 조성 ▶잠실주경기장 리모델링 ▶국제교류복합지구 지역 교통 개선 등 총 9개 사안에 쓰인다. 이행계획 확정 후 서울시와 이행 협약도 체결했다. 현대차가 직접 해당 사업을 진행하고 서울시가 공사감리 부문을 위탁 시행하는 방식이다.
강남구는 공공기여의 전반적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정 구청장은 “(박 시장과) 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것”이라며 “만약 국토부가 공공기여금을 나눠써야 한다는 취지로 법을 개정한다 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인데 지금 갑자기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일각에선 “토지공개념과 부동산 보유세 등 사안에 목소리를 내 온 박 시장이 정치적 진로 설계를 위해 강남 개발이익 광역화 문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편 정 구청장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론과 관련해서는 “아직 박 시장과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의 그린벨트 부지는 총 6.09㎢로 강남구 전체 면적의 15% 정도다. 전체 면적 대비로는 은평(51.1%), 서초(50.9%), 강북(49.4%) 등이 높지만 산지가 많아 강남구 세곡동 일대가 주요 그린벨트 해제 예상 지역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 구청장은 1995년 이후 최초로 강남에서 당선된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공공기여금은
사업자가 토지를 개발할 때 용적률 등 규제를 완화해준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는 돈. 개발에 따른 이익을 일정 부분 공공에 돌려주는 제도다. GBC 건축과 관련한 1조7491억원의 공공기여금은 사상 최대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