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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집은 꿈과 그리움, 그걸 깨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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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사회부디렉터

염태정 사회부디렉터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작가 김서령(1956~2018) 선생과 지난 2011년 10개월가량 전국을 다니며 집 구경을 한 적이 있다. 가볼 만하다고 추천받은 집을 한 달에 한 번 돌아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신문에 연재했다. 김서령 선생은 그 전에 『김서령의 家』를 비롯해 집 이야기를 여럿 썼는데 옛 명문가의 한옥이 중심이었다. 옛집도 좋지만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꿈을 담아 사는 집 얘기를 써보자는데 마음이 맞아 하게 됐다.

내 집 마련 꿈은 더 멀어지고 #세금 늘며 노년의 삶도 불안 #집권층 이중성에 분노 커져

광주 무등산 자락에 있던 예술인 부부 집은 지금도 기억난다. 나무가 참 많았는데 집 이름이 지호락(知好樂)이었다.  ‘지지자(知之者)는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요, 호지자(好之者)는 불여락지자(不如樂之者)’에서 따왔다. 아는 것,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한 수 위라는 공자님 말씀 따라 인생을 즐기며 살겠다는 그 예술가 부부의 꿈이 담겨 있다.

내 집 마련은 ‘보통사람’이 가지는 가장 큰 꿈 가운데 하나다. 집을 살 수 있는데도 세금 덜 내기 위해, 새집에 살기 위해 전세가 더 낫다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집 하나 갖고 싶어한다. 그런 집에서 식구들이 꿈을 키우며 산다. 떠나게 되면 그리움의 공간이 된다. 요즘엔 집값 오르는 게 먼저고, 생활 공간으로서 집은 나중인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우선은 정주 여건이 중요하다. 집이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땅이 좁고, 규격화된 상품으로 현금적 성격을 지닌 아파트의 비중이 높아 다른 나라에 비해 재산증식 수단으로 더 많이 활용되는 것뿐이다.

서소문 포럼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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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은 새 소리에 떨어지고 차 소리에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새 소리 들리는 전원에서 살고 싶어한다지만, 집값은 새 소리 들리는 곳보다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 오른다는 얘기다. 예전에 부동산을 담당했을 때 당시 업계 고수가 자주 하던 말인데 지금도 대체로 유효한 듯하다. 집값을 올리는 요소는 크게 교통·학교·공원인데 이 세 가지를 골고루 갖춘 곳이 인기가 좋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파트가 있는 서울 반포도 이런 곳 중 하나다. 지하철 3·7·9호선에 도심·고속도로 접근성이 좋다. 이름있는 고등학교도 있다. 공원도 가깝다. 국내서 처음으로 평당 (3.3㎡) 1억원이 넘었다 하여 화제가 됐던 아크로리버파크가 노 실장의 반포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는 ‘청주 집은 오래 비워둔 집이며, 반포 집은 아들을 포함한 가족이 거주하고 있다. 투자 차원에서 고의로 강남 아파트를 안 팔았다는 주장은 악의적’이라고 말하지만, 반포 아파트가 돈이 되는 집인 건 부인하기 어렵다.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고 ‘팔겠다’고 한 지금은 다르겠으나,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반포 집은 노 실장과 가족에게 포기하기 어려운 아파트였을 거다. 처음엔 반포 아파트를 팔겠다고 했다가 금방 충북 청주 아파트를 팔겠다고 한 노 실장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때의 노영민은 생활인으로서의 노영민이다.

문제는 이중성이다. 내 집 마련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전셋값은 빠르게 오르는데 투기 억제를 말하는 고위 공직자 가운데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 꽤 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7일 민주당이 투기 세력이 됐다고 비난했다. 경실련은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180명 가운데 40여명이 다주택자라고 했다. 다주택자 명단도 공개했다. 이후 ‘40년 실거주다’ ‘부모님께 물려받았다’ 같은 해명이 이어졌다. 억울한 부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해명은 잘 먹히지 않는다. 20번 넘게 나온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신뢰를 잃었고, 고위층의 이중성에 화가 많이 나 있기 때문이다. 6·17 부동산 대책 후 오히려 “평생 월세나 전세를 살라는 거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최고의 민생과제는 부동산 대책”이라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정부는 공급 확대를 포함하는 새로운 대책을 또 내놓을 모양이다. 세금도 더 올릴 기세다. 부동산 문제는 어느 정권에나 어려운 과제였다. 요즘 시중엔 이런 얘기까지 나돈다. ‘김현미 장관은 욕받이다. 실제 정부는 집값 안정시킬 능력도 의지도 없다. 누가 와도 비슷할 테니 욕은 김현미 장관 한 명에게 집중되게 하고 나중에 괜찮은 자리 하나 주는 거다. 실제 정부가 하려는 건 부동산으로 세금을 더 걷는 거다.’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을 깎아내리고 싶진 않으나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정부가 애써 내놓은 정책 때문에 내 집 마련의 꿈이 깨지고 세금 때문에 노년의 삶이 흔들려선 안 된다.

염태정 사회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