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숨겨진 장녀 "아버지는 늘 미안하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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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옥

박재옥

고(故) 박정희(1917~79) 전 대통령의 맏딸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복언니인 박재옥(사진)씨가 8일 별세했다. 84세.

박근혜 이복언니 박재옥씨 별세 #첫째 부인 김호남과 사이서 태어나 #전속부관 한병기 전 의원과 결혼 #박 전 대통령, 조문 휴가신청 안 해 #박지만 회장, 가족들과 빈소 지켜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첫째 부인 김호남(1920~90) 여사 슬하 독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15살 터울이다. ‘숨겨진 장녀’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형제자매 중엔 순탄한 생애를 보낸 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구사범학교 시절인 1936년 3살 연하 김호남과 결혼한다. 이듬해 딸 박재옥을 낳았지만, 1950년 이혼했다.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의 생애를 조명한 드라마 ‘제3공화국’(1993)에 증인으로 출연해, 부모의 혼인을 두고 “중매로 하신 거죠. 부모님 강요에 신혼, 결혼 생활은 없었다고 봐야죠”라고 말한 바 있다.

부모의 이혼 뒤, 고인은 구미에서 친척 집을 전전하며 초·중학교를 다니다, 서울 사는 사촌 언니 박영옥(김종필 전 총리부인) 집으로 와 동덕여고를 다녔다. 이를 알게 된 육영수 여사가 집으로 데려와 아버지, 이복동생들과 함께 살았다. 고인은 생전 월간조선에 남긴 ‘나의 아버지 박정희 어머니 김호남’ 제하 수기에서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육영수 여사)와 친하게 지내도록 여러모로 애쓰셨다. 나는 그분에게 ‘어머니’라는 호칭이 쉽사리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썼다.

박재옥 씨가 결혼 후 어느 명절날 서울 신당동 집에서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안고 있는 아이는 근령씨), 박재옥씨, 육영수 여사의 친정어머니, 육 여사의 조카, 한병기씨, 육 여사(앞의 아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육여사의 여동생. [중앙포토]

박재옥 씨가 결혼 후 어느 명절날 서울 신당동 집에서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안고 있는 아이는 근령씨), 박재옥씨, 육영수 여사의 친정어머니, 육 여사의 조카, 한병기씨, 육 여사(앞의 아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육여사의 여동생. [중앙포토]

동덕여대(가정학과)를 다닌 고인은 1958년 박정희 당시 육군 사단장의 전속부관으로 매일 집으로 출퇴근하던 고 한병기 전 의원과 결혼했다. 바로 분가하면서 청와대 생활은 한 적 없고, 부친 서거 후에도 서너번의 추모식 등을 제외하면 일가 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2004년 이복동생 박지만씨의 결혼식에는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재옥씨 부부는 박정희 대통령 재임 18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한병기씨는 육군 대위로 예편한 뒤 1962년부터 미국 뉴욕 영사로 부임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에 당선됐고, 주칠레 대사 겸 에콰도르 대사를 거쳐 1975년 주 유엔대표부 대사, 1977년 주캐나다 대사를 지냈다. 2017년 작고 전까지 설악산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설악관광 회장을 지냈다.

고인은 수기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선 “아버지는 늘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계신 탓에 크게 꾸중하거나 싫은 말씀을 한 적이 없다. 가끔 집에서 마주치면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했다. 나는 그때마다 아버지를 쌀쌀맞은 표정으로 대했는데, 그게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 같아 두고두고 후회막심했다”고 돌이켰다.

2004년 박지만씨 결혼식에 모인 가족들. 왼쪽부터 한병기·박재옥·근혜·지만씨, 서향희·박근령씨. [중앙포토]

2004년 박지만씨 결혼식에 모인 가족들. 왼쪽부터 한병기·박재옥·근혜·지만씨, 서향희·박근령씨. [중앙포토]

김호남에 대해선 “어머니는 일흔둘에 부산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말년 불교에 귀의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다 용서하셨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는 아버지가 국사를 잘 돌보시라고 날마다 기도를 드리고 사후에는 아버지 명복을 비셨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박지만 EG 회장은 조문한 뒤 가족과 함께 빈소를 지켰다. 오후 5시쯤엔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와 이정현 전 의원이 각각 빈소를 찾았고,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도 조문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 돼 파기 환송심 재판을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장례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정 당국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이복언니 박씨의 별세 소식을 접했으나, 귀휴(복역 중인 수감자가 일정 기간 휴가를 얻어 외출하는 제도) 여부와 관련해 특별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고인의 유족은 장남 한태준 전 중앙대 교수, 장녀 한유진 대유몽베르CC 고문, 차남 한태현 설악케이블카 회장, 사위 박영우 대유위니아그룹 회장 등이 있다. 발인은 10일 오전 8시.

이우림·고석현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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