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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콩나물의 머리와 뿌리 어디를 다듬어야 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24) 

대전에 사는 언니1이 집에 온 날 저녁 밥상에 콩나물국이 올라왔다. 국물을 한 술 드신 아버지는 ‘시원하다!’ 하시며 물으셨다.

“그런데 누가 머리를 다 떼었나?”
나는 속으로 ‘아이쿠!’ 했는데, 언니는 바로 순발력을 발휘해 응수했다.
“요즘 점잖은 집은 다 이렇게 해요.”
“잘했다!”

의외였다. 음식 남기는 것을 죄악시하고 뭐든 아끼고 아껴야 좋아하는 아버지가 콩나물 머리 뗀 것을 반기시다니. 언니도 긍정적인 아버지 반응에 놀랐는지 나한테 눈을 찡긋했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던 언니가 물었다.

‘콩나물 다듬기’라는 말 자체가 낯설다. 콩나물 머리는커녕 꼬리를 떼 본 적도, 콩나물국을 끓여본 기억도 없는 듯하다. [사진 pixabay]

‘콩나물 다듬기’라는 말 자체가 낯설다. 콩나물 머리는커녕 꼬리를 떼 본 적도, 콩나물국을 끓여본 기억도 없는 듯하다. [사진 pixabay]

“너는 콩나물 다듬을 때 머리 안 떼니?”

대답하려 기억을 더듬는데, ‘콩나물 다듬기’라는 말 자체가 낯설다. 콩나물 머리는커녕 꼬리를 떼 본 적도, 콩나물국을 끓여본 기억도 없는 듯하다. 언니들이 끓여놓고 간 것을 상에 낸 적은 있지만 내가 콩나물을 사다 다듬어 국을 끓이진 않았다. 나는 육개장에도 숙주나물을 넣는다. 콩을 싫어하는 탓이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콩을 먹지 않았다. 건강식품인 두유도, 한여름 별미 콩국수도 안 먹는다. 내가 좋아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손이 가지 않은 걸까? 살림 맡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콩나물국을 직접 끓여본 일이 없다는 걸 깨닫고 새삼 놀랐다. 이런 내 속은 감춘 채 ‘시골 없는 집에서 자란 분’ 답지 않게 입맛이 고급이라는 언니 말에 장단만 맞췄다.

엄마 돌아가시고 얼떨결에 아버지와 둘이 살게 되면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요리였다. 초반엔 사무실이 워낙 바쁜 시기여서 거의 다 사 먹었다. 조리되어 배달 온 국이며 반찬을 데워 아침에 함께 한술 뜬 뒤 출근하면, 집에 남은 아버지는 점심과 저녁 두 끼를 혼자,  거의 같은 구성으로 반복해 드시곤 했다. 그래도 단 한 번도 문제 삼으신 적이 없었다.

몇 년 뒤 내가 매일 야근하진 않아도 될 형편이 된 뒤론 아침식사는 과일과 생식으로 간단히 하고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비록 반조리 식품에 가까울지라도 나도 요리 비슷한 것을 조금씩 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아버지 식성을 꿰뚫게 되었다고 자평하는 시기가 되었다. 언니들이 집에 올 때 “음식 뭐 해 올까?” 물으면 마치 살림을 엄청 잘하는 주부처럼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돼” 하면서 유세를 떨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가 달라졌다. 뇌졸중 발생 이후론 입맛이 통 없으시다. 밥을 드릴 때마다 “많다. 반만 다오”하시고, 한 번도 손 안 데는 반찬이 늘어났다. 별로 즐기지 않으셨던 닭고기와 돼지고기는 아예 입에 대지 않을 것이다 선언하셨고, 비린내 난다며 생선 접시를 밀어버리기도 하신다. 아예 처음부터 밥을 물에 말아버리거나 죽을 달라고 하실 때도 많다.

난감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오늘 저녁은 또 뭘 해 드려야 잘 드실까 고민이 앞선다. TV 보시다 드시고 싶은 것 나오거나 생각나면 적어놓으시라 해도 그런 것 없다며 힌트를 전혀 안 주신다. 한번은 드시고 싶은 것에 대해 집요하게 여쭈었더니 “열무를 활용한 음식을 저녁 7시 30분에 먹고 싶다”는 다소 난해한 바람을 이야기해 당황한 적도 있다. 낙상 위험도 있고 해서 과천 사는 언니2가 낮에 와서 점심을 챙기고, 대전 사는 언니1도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아버지 입맛 살리기에 동원되는 형국이다.

 아버지는 뭐든 한번 올라왔던 음식이 밥상에 다시 올라오는 것을 질색하셨다. [사진 pixabay]

아버지는 뭐든 한번 올라왔던 음식이 밥상에 다시 올라오는 것을 질색하셨다. [사진 pixabay]

여름이 지나면 좀 나아지시려나 고민이 깊어지는 때, 콩나물 사건을 통해 나의 식단을 돌아본다. 그동안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기 편한 것만 아버지에게 해 드린 건 아니었을까?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무심결에 편의 위주로, 내 입맛 위주로 만든 음식에 아버지가 장단을 맞춰 주신 건 아니었는지. “맛있다” 하고 드시면,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나 본데?’ 착각하고 혼자 만족했던 건 아닌지.

그제야 아버지의 옛 식습관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가짓수는 많지 않더라도 늘 새로운 반찬을 좋아하셨다. 뭐든 한번 올라왔던 음식이 밥상에 다시 올라오는 것을 질색하셨다. 그것 때문에 엄마랑 신경전 하셨던 것도 떠올랐다.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조금씩 남은 반찬은 여지없이 우리 밥그릇에 싹싹 긁어 부어 버려, 아버지보다 빨리 밥상을 떠나려고 숟가락을 부지런히 놀렸던 기억도 났다. 그렇게 까칠했던 아버지에게 반복적으로 밑반찬을 냉장고에서 직접 꺼내 드시게 했다니. “냉장고를 열 때마다 냉기가 소름 끼쳐 문도 열기 싫다”는 말씀을 나는 외로워서 그러시나 보다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였었다.

냉장고 신선실에 언니가 두고 간 콩나물 반 봉지가 남아 있었다. ‘그래! 나도 한번 해보는 거야!’ 큰맘 먹고 손질을 시작했다. 머리를 떼려다 보니 꼬리도 떼야 하나 의문이 생겨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콩나물은 풍부한 비타민C와 더불어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채소다. 콩이 어두운 곳에서 발아를 거쳐 자라나는 것이 콩나물인데, 이 과정에서 향이 풍부해지며 영양소가 많아지게 된다. 콩보다 단백질의 함량은 줄어들지만 섬유질이 증가하고 기타 아미노산 화합물이 풍부해지기 때문. 또한 이 과정에서 콩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비타민C가 생성되게 되는데, 이는 콩나물 두 줌 정도면 하루 필요한 비타민C 필요량이 모두 충족될만한 수치다. 콩나물 100g 기준으로 약 800mg의 아스파라긴산이 들어있는데, 이 성분은 우리 몸에서 알코올 해독 작용을 하는 역할을 하는 성분이다. 아스파라긴산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부분은 콩나물의 잔뿌리 부분. 때문에 이러한 효과를 보길 원한다면 콩나물을 요리할 때 잔뿌리 부분을 다듬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콩나물에 포함되어 있는 양질의 섬유소는 장내 숙변을 제거해 변비를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FE타임스 2019.1.25.자 ‘콩나물의 효능’ 中

가르침대로라면 콩은 절대 떼면 안 될 부분이다. 그러나 아버지 취향을 존중하여 과감하게 떼기로 결심한다. 변비가 종종 있으시니 꼬리는 떼지 않고 남겼다. 멸치 우린 물에 신 김치 씻은 것을 종종 썰어 함께 넣고 김치 콩나물국을 끓였다. 밑반찬도 몇 가지 새로 준비해 저녁상에 올렸다. 한술 떠 본 아버지 말씀하신다.

“이게 무슨 국이냐? 아무 맛도 안 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중 주인공 찬실과 집주인 아주머니가 함께 콩나물을 다음으며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사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중 주인공 찬실과 집주인 아주머니가 함께 콩나물을 다음으며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사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

국은 그대로 남았고, 다음 날 나는 그 국물에 혼자 해장 라면을 끓여 먹었다. 동화 속에서라면 내 정성에 감복한 아버지가 국을 깨끗이 비우고 건강도 호전되셔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저 현실이었다. 최근 상영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이런 장면이 있다. 주인공 찬실과 함께 열심히 콩나물을 다듬으며 집주인 아주머니(윤여정 분)가 말한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해.”

정성 다해 다듬은 콩나물은 그 빛을 보지 못했지만, 자발적으로 애써 했으므로 의미 있게 하루를 보냈노라 위로하련다. 하수구에 버려진 아미노산 화합물과 비타민C를 가득 품은 콩들에 애도를 표하며. 그나저나 기약 없이 떠나버린 아버지 입맛은 언제 돌아오시려나?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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