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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아이들은 체벌 없는 나라에 살 권리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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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은주 이화여대 객원교수·뉴욕 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은주 이화여대 객원교수·뉴욕 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치사사건이 최근 잇따라 발생했다.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학대 수법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충격과 분노를 표출했다. 이런 가운데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민법 제915조 개정 움직임이 있다. 부모가 민법상 징계권을 체벌과 동일시하는 바람에 아동 학대로 이어지니 아동 학대 방지 차원에서 부모의 자녀 징계권을 없애 체벌을 못 하게 하자는 논리다. 실제로 최근 일어난 아동 학대와 치사 사건의 경우 해당 부모는 훈육이란 이유를 들며 아이들을 징계했다고 항변한다.

훈육이라지만 체벌은 아동 학대 #‘맞을 짓 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필자는 미국에서 아동복지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다. 체벌을 보고 자란 사람으로서 민법 개정에 찬성하며, 징계권을 삭제하고 체벌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믿는다. 체벌은 아이들의 행동 교정에 장기적인 효과가 전혀 없다. 맞는 순간 아이들이 공포로 인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뿐이다. 몇십 년 동안 누적된 연구는 체벌이 초래하는 여러 나쁜 영향을 증명했다. 지속적인 체벌은 아이들에게 우울증, 낮은 자존감, 반사회성의 위험을 높인다.

흔히 말하는 가벼운 체벌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학술지(‘Child Abuse and Neglect’)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에 사는 152명의 미취학 아동 중 체벌을 받은 아이는 1년 뒤 집행 기능이 떨어졌다. 미국 아동 247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는 엄마가 세 살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는 체벌이 1년 뒤 아이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갖게 한다고 입증했다. 이처럼 체벌의 나쁜 영향 때문에 59개 국가에서 아동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필자는 자라면서 체벌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주위에서 훈육이란 이유로 체벌하는 장면을 보고 자랐다. 체벌 현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공포감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아이가 심한 체벌을 받는 장면을 보면서 그 애가 그런 체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외려 어린 나이에도 어른들이 자신의 화를 못 이겨서 아이들을 심하게 때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주 체벌을 받고 자란 대학생들은 부모의 체벌권을 옹호한다는 일본의 연구 결과를 보면서 체벌을 옹호하는 심리를 생각해 봤다. 지금 한국의 많은 어른이 체벌을 받으며 자라지 않았는가. 부모의 체벌권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매를 맞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느꼈던 무서움과 서러움을 떠올려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아동 체벌이 사라질 날이 오리라 믿는다. 19세기에는 남편이 아내를 훈육의 목적으로 때릴 수 있는 권리가 영국 등 여러 나라 법에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남편이 아내를 때릴 권리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아내가 폭력을 당하면 “맞을 짓을 했겠지”라고 말하던 야만적 시대가 있었다.

아동 체벌은 “맞을 짓을 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거짓말도 하면서 자란다. 그건 아동발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이에 맞는 적절하고 긍정적인 벌과 교훈을 통해 아이들은 바르고 건전하게 성장한다.

부모의 폭력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법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끌어내는 일, 아동 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일, 위험 가정을 파악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맞을 짓을 했다”라거나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남들이 볼 수 없는 가정이란 울타리에 갇혀서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들은 계속 생길 것이다.

아동 학대 사망 소식을 보며 우리 모두 아이의 입장으로 돌아가 질문해야 한다. 왜 부모는 아이를 때리면서 훈육이라 변명하는지.

이은주 뉴욕 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화여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