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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국익이 우선”…정부, ILO 협약 비준에 경영계 ‘패싱’

중앙일보

입력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관계자들이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3개 법안 입법 예고에 대한 전교조 법외노조 해고자 입장 발표 및 해고자 투쟁 알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직권 취소, 해고자 원직복직, 150만 교원·공무원의 온전한 노동3권·정치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뉴스1.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관계자들이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3개 법안 입법 예고에 대한 전교조 법외노조 해고자 입장 발표 및 해고자 투쟁 알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직권 취소, 해고자 원직복직, 150만 교원·공무원의 온전한 노동3권·정치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뉴스1.

정부가 7일 국무회의를 열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안 3건을 의결하고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지난달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 비준안 처리를 당부한 지 보름여 만이다.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ILO 핵심 협약 비준안은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을 허용한 노동조합법 개정안과 연계돼 있다.

ILO 핵심 협약 비준안 의결에 경영계는 즉각 반발했다. 현장 노사 관계에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는 사안을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이유에서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ILO 핵심 협약은 무엇? 

ILO 핵심 협약이란 국제연합(UN) 산하 기구인 ILO가 가입국에 채택을 요구하는 국제 노동 규범이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8개 핵심 협약 중 4개는 국내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준하지 않았다.

이번에 의결한 87호 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과 98호 협약(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의 원칙 적용)은 노조의 자유로운 활동과 이에 따른 불이익을 금지하는 게 핵심이다. 협약 대로면 정부는 해고자·실업자란 이유로 노조 가입을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협약 내용을 국내법에 반영하기 위해 최근 노조법 개정안은 물론, 해직 교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교원노조법 개정안과 5급 이상 공무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끔 하는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을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나머지 29호 협약(강제 또는 의무 노동)은 군사적 성격의 작업을 제외하고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경영계 불만은? 

경영계도 ILO 협약이 국제 규범인 만큼 이를 비준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 삼는 부분은 절차적 정당성이다. ILO 협약 비준과 함께 관련 국내법이 일제히 개정되면 개별 기업 현장에서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협약 비준 이전에 보완 입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기업 측 의견이다. 가령 해고자·실업자에 대한 노조 가입 허용은 산업별 노동조합(산별노조) 중심으로 운영되는 유럽에선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철강·자동차 등 특정 산업 전체 취업자는 물론 실업자까지 포함한 근로조건을 노조가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별 노조 중심으로 운영되는 한국에선 오히려 혼란이 커질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개별 기업 노조에 퇴직자·해고자가 모두 참여해 의사 결정에 참여하면 기존 조합원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며 “다른 곳으로 이사한 사람이나 예비 입주자까지 아파트입주자 대표회의(입대의)에서 입주자로서의 발언권을 갖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장정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정부가 경영계와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며 “(파업 시) 대체 근로를 허용하는 등 경영계가 요구하는 사항도 함께 입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왜 서두르나 

정부도 이 같은 경영계 우려를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서둘러 비준을 추진한 이유로 ‘국격과 국익’을 든다. 유럽연합(EU)이 한국에 대해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역 분쟁을 제기한 데다, 추가적인 압박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ILO 협약 정리가 안 되면 EU와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6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부 브리핑실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안 국무회의 의결'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6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부 브리핑실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안 국무회의 의결'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경제위기 상황에선 신중해야” 

전문가들은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위기 국면에서 ILO 협약 비준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코로나 위기 국면에선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를 늘리는 게 최우선”이라며 “여당이 국회 다수를 장악했다고 해서 무리하게 추진하면 더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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