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럽 발칵 뒤집은 2조6000억 사기극 CEO, 실제론 검소했다?

중앙일보

입력

마르쿠스 브라운 와이어카드 전 CEO. EPA=연합뉴스

마르쿠스 브라운 와이어카드 전 CEO. EPA=연합뉴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었던 핀테크 대표기업에서 독일 증시 상장 기업 중 최초의 파산 선언까지. 독일을 발칵 뒤집은 전자결제업체 와이어카드(Wirecard) 이야기다.

지난달 25일 파산을 신청한 와이어카드의 금융 스캔들 뒤에는 51세 오스트리아인인 최고경영자(CEO) 마르쿠스 브라운이 있다. 그는 고객 및 투자자 유치를 위해 19억 유로(2조5600억원)를 회계장부에 거짓 기재하고 수년간 버티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19억 유로는 자산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유럽을 뒤흔든 금융 스캔들은 브라운의 대담한 금융 사기와 당국의 무능이 빚은 합작품이다. 지난해 1월 파이낸셜타임스(FT)가 회계 부정을 단독 보도하기 전까지 브라운의 사기극의 실체는 수면 아래 감춰져 있었다.

와이어카드의 회계 감사를 맡았던 회계 감사법인 언스트앤영도, 독일의 금융감독기관도 관련 사실을 몰랐다. 해당 사안을 보도한 FT 기자가 오히려 “주식시장 조작 혐의가 있다”며 독일 금융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와이어카드의 회계장부 조작으로 한때 100유로가 넘었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와이어카드의 회계장부 조작으로 한때 100유로가 넘었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논란이 불거지기 전까지 와이어카드의 질주는 거침없었다. 핀테크 기업임에도 지난해 독일의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과도 지난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와이어카드는 1999년 설립 당시만 해도 유망한 유니콘 기업이었다. 설립 초기엔 온라인 결제 중개에 집중했다. 주요 고객은 포르노 및 도박 사이트 이용자였다고 FT 등은 보도했다. 핀테크의 전성기가 채 도래하지 않았을 때였다.

유망한 기업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브라운이 CEO로 취임한 2002년부터다. 브라운은 야심가였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투자자와 고객사를 적극적으로 모았다. 세계적 기업인 페덱스ㆍ이케아 등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포르노ㆍ도박 결제 중개에서 이미지 변신에도 성공했다.

수치로 드러난 그의 능력은 놀랍다. 와이어카드가 발표한 재무제표상에서 매출은 브라운 CEO가 온 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50배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와이어카드 전 CEO 브라운 트위터 계정. 현재 닫혀 있는 상태다. [트위터 캡처]

와이어카드 전 CEO 브라운 트위터 계정. 현재 닫혀 있는 상태다. [트위터 캡처]

상황이 달라진 건 2017년이다. 와이어카드는 고객사가 10만7000개가 넘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매출의 절반이 고객사 100개에서 나왔다. 나머지는 허수였을 가능성이 컸다. 실적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브레이크는 걸리지 않았다. 브라운 CEO는 계속 사업을 확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람을 휘어잡는 언변이 특징이었다고 한다. 와이어카드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익명을 전제로 WSJ에 “투자자 설득은 항상 브라운의 몫이었다”며 “그에겐 특별한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와이어카드 홈페이지. '모든 길은 성공으로 통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와이어카드 홈페이지 캡처]

와이어카드 홈페이지. '모든 길은 성공으로 통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와이어카드 홈페이지 캡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회계장부가 문제였다. 업계에선 브라운 CEO의 분식 회계 의혹을 제기했지만 수년간 묵살됐다. 언스트앤영은 최근에서야 장부를 들여다봤다.

와이어카드 측은 그동안 싱가포르의 은행에 10억 달러 이상의 현금이 있다고 주장했다가, 필리핀의 은행 2곳에 19억 달러를 나눠서 예치했다고 말을 바꿨다. 모두 거짓이었다. 필리핀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 “와이어카드의 19억 유로가 필리핀에 들어온 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언스트앤영의 회계 감사 및 당국의 감독 과정에서 와이어카드 측이 제공한 위조된 캡처 자료에만 의존한 결과였다. FT는 “언스트앤영은 와이어카드 계좌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당국과 회계법인의 직무유기에 날벼락을 맞은 것은 일반 소액투자자다. 장부 조작 사실이 알려지고 주가가 고꾸라지기 시작하며 전도유망한 핀테크 기업인줄 알고 투자했던 개미들의 악몽이 시작됐다.

지난 4월23일 최고점(140.90유로)을 찍었던 와이어카드의 주가는 7일 현재 2.25유로로 급전직하했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증권 거래 사상 역대급 폭락이다. 주가는 98.4% 빠지며 사실상 휴짓조각이 된 셈이다. 브라운 CEO는 사표를 냈고, 자진 출두한 뒤 체포됐으나 바로 560만 달러를 내고 다음날 보석으로 풀려났다.

와이어카드 주가

와이어카드 주가

그의 트위터는 현재 닫힌 상태다. WSJ에 따르면 그는 체포 직전 “우리 회사엔 훌륭한 직원과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 뛰어난 기술과 풍성한 자본력이 있어 위대한 미래를 보장한다”는 트윗을 올렸다고 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