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위스키도 신토불이…'국뽕'아닌 고급화 전략

중앙일보

입력 2020.07.07 11: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75)

“고추장에 된장 김치에 깍두기 잊지 마라 잊지 마, 너와 나는 한국인~ 신토불이~” 한창 트로트에 빠져있는 어머니 덕에 추억의 ‘신토불이(身土不二)’ 노래를 들었다.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 요즘 최고의 대세라는 네 사람이 새로 부른 신토불이는 절로 흥이 났다.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뜻의 신토불이. 1990년대 무역 자유화의 흐름 속에 국산 농작물이 타격을 입자 이런 노래가 탄생했고, 대히트를 쳤다. 당시엔 신토불이 마케팅이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위스키도 신토불이를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위스키 증류소 근처 농장에서 재배한 보리로만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다. 이걸 ‘지역 보리(로컬 발리, Local Barley)’라고 부른다. 증류소 인근 농가와 계약해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지만 이런 신토불이 위스키는 비싸다. 대량 재배되는 보리와 달리 계약 재배되는 보리는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다. 보리 작황이 안 좋을 수도 있다. 위스키 증류소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브룩라디 (BRUICHLADDICH) 아일라 발리 2011.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에서 재배한 보리로 만든 위스키. [사진 김대영]

브룩라디 (BRUICHLADDICH) 아일라 발리 2011.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에서 재배한 보리로 만든 위스키. [사진 김대영]

처음 위스키를 만들 때는 모든 증류소가 로컬 발리를 썼다. 원래 소규모 보리 재배 농장이 위스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공장에서 건조된 맥아가 증류소에 대량으로 공급된다. 보리에 싹을 틔운 뒤 건조하는 ‘플로어 몰팅(floor malting)’은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든다. 플로어 몰팅을 직접 하는 위스키 증류소는 스코틀랜드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맥아 생산공장의 출현으로 증류소는 보다 안정적으로 맥아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맥아. [사진 김대영]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맥아. [사진 김대영]

로컬 발리로 플로어 몰팅부터 모든 위스키 제조 공정을 해내는 고집스러운 증류소도 있다. 대표적인 증류소가 스프링뱅크(SPRINGBANK)다. 스프링뱅크 로컬 발리 시리즈는 증류소 인근 보리 재배 농가와 계약 생산한 보리만을 사용해 만든다. 1990년대 처음 출시됐고, 최근에 다시 로컬 발리 시리즈를 1년에 한 번씩 출시하고 있다. 생산량은 채 1만 병이 되지 않아 희소성이 높다.

스프링뱅크 로컬 발리 2009-2018, 9년. 증류소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재배한 보리로만 만들었다. [사진 김대영]

스프링뱅크 로컬 발리 2009-2018, 9년. 증류소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재배한 보리로만 만들었다. [사진 김대영]

일본 위스키 증류소도 신토불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까지 일본 위스키 증류소는 스코틀랜드산 맥아를 받아 위스키를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재배한 보리를 사용해 더 값비싼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 치치부시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치치부 증류소. ‘이치로즈몰트’ 브랜드를 가진 이 회사는 3년 전부터 치치부 시의 한 농가와 계약해 보리를 재배하고 있다. 보리 재배지는 점차 넓어져 올해는 4만5000㎡까지 재배지를 넓혔다. 처음 출시될 ‘이치로즈 몰트 로컬 발리’는 기존 이치로즈 몰트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릴 게 분명하다.

이치로즈 몰트 로컬 발리 위스키를 위해 치치부시에서 재배중인 보리. [사진 치치부 증류소 SNS]

이치로즈 몰트 로컬 발리 위스키를 위해 치치부시에서 재배중인 보리. [사진 치치부 증류소 SNS]

“쌀이야~ 보리야~ 콩이야~ 팥이야~~ 우리 몸엔 우리 건데 남의 것을 왜 찾느냐~” 90년대 신토불이 마케팅은 ‘애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신토불이는 우리 것만을 고집하는 세계화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위스키처럼 제품을 더 고급화하는 전략 중 하나다. 신토불이 전략으로 많은 국산 제품이 고급화됐으면 좋겠다. 물론, 언젠가 한국에서 재배한 보리로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날도 기다려보겠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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