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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북한 애국가 몰랐다” 맞더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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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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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6·25전쟁 추념식에서 연주된 애국가가 논란이 됐다. 가사가 나오기 전까지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30초짜리 도입부는 트럼펫이 두 마디를 불고, 호른이 합세하며 시작했다. 이어 더 낮은 금관 악기들, 또 오르간까지 함께 해 규모를 키운 후 노래가 나왔다.

문제는 트럼펫이 연주한 두 마디. 이 부분이 북한 애국가의 짧은 전주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확인해보니 첫 9개 음의 음정과 박자·리듬이 같다. 연주 속도만 우리 애국가가 조금 빨랐다. 국가 보훈처는 “영국 국가를 비롯한 장엄한 곡에서 많이 쓰는 기법”이라며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첫 부분에도 나왔다”고 해명했다. 편곡자가 북한 애국가를 들어봤고 똑같이 쓸 의도가 있었는지를 모르면 진위도 알 수가 없었다. 논란은 그렇게 수그러드는 것 같았지만 질문은 남아있다.

지난달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ㆍ25전쟁 70주년 추념식.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달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ㆍ25전쟁 70주년 추념식.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만 아니면 괜찮나=편곡자는 한 인터뷰에서 “편곡 의뢰 때 제안받은 샘플이 영국 국가”라고 했다. 실제로 영국 국가 도입부 주제의 절반이 이번 애국가 전주와 같은 리듬이다. 박자와 음정은 다르다. 물론 비슷하긴 북한 쪽인 이번 전주가 북한 아닌 영국이 모델이었다고 양보해봐도, 문제는 남는다. 영국이면 괜찮나. 편곡도 예술이다. 특정한 국가를 샘플로 제시하는 대신 편곡자의 뜻과 의도를 발휘할 여지를 줬어야 한다. 대신 주최 측의 뜻과 의도만 보였다. 영국 국가 ‘갓 세이브 더 퀸(God Save the Queen)’의 전주도 여러 버전이다. 드럼 롤 직후 노래가 나오는 간소한 것도 있다. 이번 추념식 전주는 엘리자베스 2세 생일 등에서 연주된 버전과 비슷하다. 어떤 분위기를 원했는지 분명하다. 화려한 금관 악기에 이례적으로 오르간까지 더해진, 장엄한 음악이다. 국군 유해를 봉환하면서 정작 예우는 소홀히 한 ‘보여주기’ 행사라는 지적이 겹쳐진다.

#아는 사람 없었나=연주될 때까지 아무도 걸러내지 못했다. 북한과 전쟁에서 희생된 유해의 봉환식이 있던 행사에서 북한 애국가 비슷한 부분을 쓸 이유는 없다. “비슷한지 몰랐다”는 보훈처의 해명이 맞다면, 비슷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국가 편곡을 의뢰한 사람은 있어도 전문가는 없었던 모양이다.

“차이콥스키도 썼던 기법”이라는 해명도 희한하다. 차이콥스키는 교향곡 4번을 쓸 때 처참한 상황이었다. 불행한 결혼이 끝났고,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첫 부분 호른·바순의 연주는 차이콥스키가 이름 붙이길 ‘운명’이었다. 인간에게 언제나 겨눠진 잔혹한 칼날과 같은 숙명에 대한 선언이다. 6·25 추념식에 이런 암시를 정말 끌어들이고 싶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이번 애국가와 차이콥스키의 공통점은 ‘금관 악기 도입부’라는 점뿐이다. 북한 애국가와 공통점이 음정·박자·리듬인 것과 달리.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