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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시시각각

고의 아닌 고의 같은 부동산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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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21번째에 이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한창이던 언젠가로 기억된다. 1가구 2주택자 중 양도소득세가 면제되는 동거봉양 합가 특례 요건이 바뀐다고 했을 때다. 부모와의 합가를 고민하던 지인의 귀가 쫑긋해졌다. 하지만 뉴스에 나온 세제 개편안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대책 21번, 난수표된 부동산 정책 #‘자가당착’ 규제 속 피해자만 속출 #사라져 가는 기회에 절망은 분노로

세무사들에게 문의해도 모른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청약 당첨만큼이나 어렵다는 국세청 상담센터와 통화에 성공했지만 아직 입법 전이라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해당 부처에 수차례 전화를 건 끝에 담당자와 통화하고서야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지만, 당시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 그 ‘은근과 끈기’가 대단해 보였다. 그렇지만 이제 우물 파기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21번의 부동산 대책이 얽힌 허들을 넘어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 정도는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온갖 규제를 동원한 탓에 관련 세제는 너덜너덜해졌다. 양도소득세 중과·배제·공제 조항의 허들을 뛰어넘어도 끝이 아니다. 난수표가 된 세제는 주택 보유 기간과 거주 기간, 취득 시점과 주택 수, 연령과 가격, 주택이 위치한 지역과 일시적 다주택자 여부까지 변수가 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도 답이 나올까 말까다.

양도소득세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양포 세무사’가 달리 나온 게 아니다. 누더기가 된 세법에 자칫 일을 잘못 처리했다가 세금 폭탄이라도 터지면 공사가 커지기 때문이다. 10만~5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벌겠다고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세무사의 ‘백기 투항’에 일반 국민은 좌충우돌 속 자율학습을 통해 나 홀로 난관을 뚫고 나가야 한다.

부동산과의 전쟁에 불을 뿜는 정부 대책이 연일 이어지면서 난수표와 고차방정식은 차라리 귀여울 정도다. 쏟아진 대책 속 규제들끼리 서로 엇박자를 내며, 정부의 방침을 따랐던 이들까지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있어서다. 2017년 ‘8·2 대책’ 이후 재건축 아파트를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다주택자가 대표적이다. ‘8·2 대책’ 당시 정부는 전체 임대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민간 임대시장의 안정을 위해 각종 세제 혜택이란 당근을 내걸고 다주택자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종용했다.

하지만 3년도 되지 않아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됐다. 최근 발표한 ‘6·17 대책’에 따르면 재건축 아파트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 이상 실거주해야만 한다. 재건축 아파트를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집주인은 난감하다. 분양권을 받으려고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거주하면 임대 의무(8년) 위반으로 3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반대로 분양 신청까지 거주 의무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현금 청산할 수밖에 없다. 정부 말을 따랐다가 그야말로 ‘망한’ 형국이다.

21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은 이처럼 곳곳에서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부수적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콜래트럴 데미지는 군사작전 과정에서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았지만 발생하는 민간인의 인적·물적 피해를 일컫는다. 테러리스트 소탕작전 때 민간인이 사망하는 경우가 해당한다.

부수적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의 예기치 않은 개입에 부작용만 속출한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과 규제·세제로 인해 법과 제도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사라졌다. 불안·불신·불만에 사로잡힌 국민은 정부가 추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더 좁아질 부동산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각자도생의 행렬에 합류할 태세다.

태생적으로 ‘부수적 피해’라는 말에는 ‘고의는 아니다’는 저의가 깔려 있다. 하지만 정부가 눈감은 ‘부수적 피해’가 쌓여 ‘전면적 피해’로 치닫는다면 그건 미필적 고의로 볼 수밖에 없다. 미필적 고의가 반복된 부동산 정책의 결과는 절망과 분노다.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