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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양성평등 첫걸음은 청소년 남자 성건강 교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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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김수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김수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출발한 양성평등기본법 시행이 올해로 24년이 됐다. 하지만 여러 양성평등 지표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바닥 수준이다. 1994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인구국제개발회의에선 179개 국가가 나서 ‘성과 생식 보건권’에 대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차원에서 성·임신과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성과 임신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기고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성에 대해 금기시하고 성적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문화가 상존한다. 온라인 매체의 범람은 청소년의 성 인식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 일부 유명인의 집단 성폭행과 영상 공유, ‘N번방’ 사태를 보면서 우리 청소년의 성건강·성인지 교육과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 온라인 실태조사에서 청소년의 첫 성관계 연령(평균 13.6세)이 점차 낮아지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의 성교육은 구태의연하다. 보건교사들이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싶어도 학부모의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결국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따라 ‘친구들끼리의 여행도 억제하라’는 등 일방적인 피해자 예방 중심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남학생들이 가장 열광하는 성교육 교사와 매체는 유튜브의 시미켄(일본 성인배우)TV이거나 야동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 48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1%가 스마트폰으로 야동을 접한다고 응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기의 성병 감염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성병으로 진료받은 10~19세는 5만6728명으로 최근

4년 새 33%나 증가했다. 성병 중 하나인 인유두종바이러스(HPV)는 성관계를 통해 전염돼 여성에선 자궁경부암, 남성에선 생식기 사마귀, 두경부암, 항문암 등을 유발한다. 그런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가 남자 중·고등학생 48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65.3%는 HPV를 몰랐고, 75%는 HPV 백신을 맞을 의향이 없었다. 매우 효과적인 백신이 있는데도 그 존재나 효용성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이 바이러스는 성관계를 통해 계속 퍼져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아에 대한 HPV 백신 접종만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이는 남아들을 HPV 감염 위험에 방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호주·미국 등 22개 국가에서는 국가 부담으로 남아에게도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자궁이 없는 자신이 맞을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이 있을 정도로 백신에 대한 남학생의 인식은 낮다. 그나마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성매개감염지침을 남학생에게도 백신 접종을 ‘권장’하는 것으로 개정한 것은 미흡하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중한 청소년들을 인터넷에 떠도는 야동에 맡길 수는 없다. 성과 사랑은 존중과 배려,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 범위에서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성세대가 따뜻한 마음으로 청소년 세대와 나눠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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