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멋진 수영복, 몸매를 예뻐 보이게 만들어주는 수영복이 전부가 아니다. 요즘 수영복 앞에는 '친환경 재생 원사로 만든 수영복' '페트병 00개가 들어간 수영복'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 화두가 되면서 착한 수영복이 주목받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로 첫 선을 보인 수영복 브랜드 ‘도노블루’는 재활용 폴리에스터 원단만으로 수영복을 만든다. 수영복 원단은 대부분 석유에서 추출한 합성 섬유인 나일론, 폴리에스터가 쓰인다. 그 중 폴리에스터 섬유 원료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즉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기의 원료와 동일하다. 원료가 같다면, 석유에서 추출할 게 아니라 폐기해야 할 플라스틱 용기를 섬유로 만들면 어떨까. 이런 발상에서 만들어진 게 바로 재활용 폴리에스터 섬유다. 버려진 플라스틱 페트병을 작게 조각낸 뒤 열을 가해 실을 뽑고, 이 실을 엮으면 재활용 폴리에스터 섬유가 된다. 도노블루 김민승 대표에 따르면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원피스 타입 수영복 한 벌을 만들 때 약 30개의 플라스틱 페트병이, 비키니 한 벌은 18개의 페트병이 사용된다.
스페인 의류 회사 인디텍스 그룹의 언더웨어 브랜드 ‘오이쇼’는 지난달 5일 지속 가능한 수영복 컬렉션을 발표했다. 재생 폴리에스터 원단을 사용한 모노키니(원피스 타입)부터 비키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미국 속옷 브랜드 ‘에어리’도 지난 2월 재생 폴리에스터로 만든 수영복 컬렉션 ‘리얼 굿 수영복’을 선보였다.
必환경 라이프 ? 윤리적 수영복
폐 페트병만 수영복이 되는 건 아니다. 바닷속에 버려진 그물·낚싯줄 등 나일론 폐자원을 재생해 수영복을 만들기도 한다. 재생 나일론 중에서는 이탈리아 섬유 원사 기업 아쿠아필의 ‘에코닐(ECONYL®)’이 가장 유명하다. 아쿠아필은 전 세계 쓰레기 매립지와 해양에서 거둬들인 나일론 폐기물로 에코닐을 만든다. 아쿠아필에 따르면 일반 나일론 대신 에코닐 1만 톤을 생산할 경우, 7만 배럴(약 1112만 리터)의 원유를 절약할 수 있고, 5만71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석유에서 나일론을 만드는 것보다 지구 온난화 영향을 최대 80% 줄이는 효과가 있다.
글로벌 브랜드 아디다스와 H&M 등도 에코닐을 사용해 수영복을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기업 ‘아트임팩트’의 패션 브랜드 ‘블루오브’가 에코닐 소재의 친환경 패션 수영복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 여성복 브랜드 LF의 ‘앳코너’도 지난달 11일 재생 나일론 소재의 친환경 수영복 컬렉션을 냈다. ‘효성티앤씨’의 재생 나일론 원사 ‘마이판 리젠’을 사용했다. 다만 현재 마이판 리젠의 경우 폐자원이 아니라 소비자가 사용하기 전의 폐기물, 즉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나일론 자투리를 활용해 만든다. 쓸모없어 버려지는 나일론 자투리를 활용해 석유화학원료의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해마다 800만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2016년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 무게가 물고기의 무게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늘어나는 해양 쓰레기를 줄이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재생 플라스틱 섬유가 주목받고 있다. 바다 속 플라스틱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폐그물을 활용해 재생 나일론을 만들면 환경 친화적이면서 동시에 바다 친화적인 일이 된다.
재생 원단이지만 석유 제품에서 추출하는 기존 폴리에스터·나일론과의 차이는 전혀 없다. 디자인이나 컬러, 기능을 표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가격이다. 폐자원 분류‧세척 등의 공정 과정이 추가되다 보니 원단 자체의 가격이 높아진다. 완제품인 친환경 수영복 가격이 일반 수영복보다 비싸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에는 환경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다소 비싸더라도 친환경 수영복을 선택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내산 쓰레기를 활용한 재생 원단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 재생 폴리에스터의 경우 폐플라스틱을 해외에서 들여와 이를 가공해 재생 원단을 만든다. 국내에서 수거된 폐페트병은 유색 페트병이 섞여있고, 뚜껑을 분리하지 않는 등 품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는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을 줄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국내 폐자원을 활용하는 시범 사업도 조금씩 시행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제주삼다수와 제주도, 효성티앤씨, 가방 브랜드 플리츠마마가 협업해 제주도에서 버려진 페트병을 수거해 재생 폴리에스테르 원사 ‘리젠’을 만들고 가방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블랙야크, 코오롱FnC, 티케이케미칼도 생수 브랜드 스파클에서 방문 수거한 페트병을 이용해 기능성 의류를 생산하는 시범 사업에 참여했다.
‘블루오브’ 송윤일 대표는 “프라다, 구찌 등 많은 패션 브랜드들에서 선호하는 이탈리아의 에코닐은 코로나19로 앞으로 수급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돼 다른 수급처를 찾는 데 고심하고 있다”며 “이왕이면 우리나라의 버려진 쓰레기를 가공한 국내산 재생 원단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