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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악명 떨친 그놈의 습격···미국가재에 영산강이 떤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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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가재가 붉은 집게발을 치켜들고 있다. 공성룡 기자

미국가재가 붉은 집게발을 치켜들고 있다. 공성룡 기자

새빨간 집게발에 어른 손바닥(15㎝)만한 덩치, 험상궂은 생김새까지.

[애니띵]나주 지석천의 '유해성 1급' 미국가재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에서 온 미국가재입니다. 이 가재가 최근 영산강 일대에서 출몰하고 있습니다. 깜짝 놀란 환경당국은 대대적인 조사에 이어 소탕 작전에 나섰죠. 왜냐고요?

미국가재는 지난해 환경부가 유해성 평가에서 ‘1급’을 매긴 생태교란 외래종입니다. 하천에 곰팡이를 퍼뜨려 다른 생물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식성도 무시무시합니다. 동물 사체를 포함해 뭐든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대식가'죠.

악명 높은 미국가재를 잡으러 기자가 직접 전남 나주로 갔습니다.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끼 200마리씩 품고 다녀”…국내 정착한 미국가재

김수환 국립생태원 전임연구원이 미국가재의 배를 확인하고 있다. 공성룡 기자

김수환 국립생태원 전임연구원이 미국가재의 배를 확인하고 있다. 공성룡 기자

발단은 2018년 온라인 커뮤니티에 “나주 지석천(영산강 제1지류)에서 미국가재가 나타났다”는 내용의 제보입니다. 국립생태원이 조사해 보니 미국 가재가 영산강 등 국내 하천에 서식하고 있다는 게 밝혀졌죠.

지난달 26일 전남 나주 남평읍의 드들강솔밭유원지에서 만난 김수환 국립생태원 전임연구원의 장화에선 진한 물비린내가 났습니다. 미국가재 포획 통발을 걷으러 늪에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된 탓입니다. 허리까지 잠기는 늪에서 통발을 건질 때마다 미국가재는 빨간 집게발을 치켜듭니다.

이날 지석천 지류 두 군데에서 통발 10개를 건져 잡은 미국가재는 11마리였습니다. 한 통발에서만 5마리가 잡히기도 했죠. 김 연구원은 미국가재를 잡을 때마다 뒤집어서 배를 확인했는데요.

“배에 새끼를 200마리 넘게 붙이고 있는 암컷 가재가 발견된 적이 있어요. 번식력이 워낙 좋다 보니 한 통발에서만 10마리가 잡힐 때도 있죠.” (김수환 연구원)

관상용으로 들어왔다 버려져…새빨간 집게발로 구분

지난달 26일 지석천 일대에서 잡은 미국가재들. 공성룡 기자

지난달 26일 지석천 일대에서 잡은 미국가재들. 공성룡 기자

미국가재가 바다 건너 한국로 들어온 때는 1990년대로 추정됩니다. 주로 관상용으로 수족관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구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일부 사육자들이 강에 미국가재를 유기하면서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번식력과 생명력은 미국가재의 특징이에요. 한 번에 알을 최대 500개까지 낳는다고 합니다. 태어난 새끼는 넉 달이면 다 자랍니다. 물 밖으로 나와도 4개월까지 살아남을 수 있어요.

국내산 민물가재(참가재)와는 생김새부터 딴판이죠. 미국가재 집게발엔 새빨간 돌기가 여드름처럼 잔뜩 나있습니다. 참가재에게선 볼 수 없는 모습이죠. 크기도 다 자랐을 때 5cm 남짓인 참가재보다 2~3배가량 큽니다.

서식하는 곳도 다릅니다. 물 흐름이 빠르고 차가운 계곡에 주로 사는 참가재와 달리 미국가재는 미지근한 수온의 늪에 모여 삽니다.

하천에 전염병 퍼뜨리는 생태교란 주범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달 29일 미국가재 퇴치 행사를 열었다. 영산강유역환경청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달 29일 미국가재 퇴치 행사를 열었다. 영산강유역환경청

미국가재는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친 녀석입니다. 유럽에선 ‘가재 곰팡이병’이란 전염병을 퍼뜨려 토종 가재가 멸종 직전까지 간 전례가 있죠. 일본에서도 논에 정착해 농작물에 피해를 끼쳤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미국가재를 ‘세계 100대 악성 침입외래종’으로 분류했습니다. 환경부도 지난해 미국가재를 생태교란종으로 지정했죠. 갑각류가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된 건 국내 최초입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달 29일 지석천 일대에서 미국가재 퇴치 행사를 열었습니다. 환경청이 이날 잡은 미국가재만 240마리, 약 15㎏에 달했죠.

다행히 아직까지 국내에선 미국가재로 인한 피해 사례가 보고된 적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습니다. 김 연구원은 “미국가재가 특유의 번식력으로 서식범위를 점차 넓히고 있다. 곰팡이를 전염시키거나 기생충을 매개하는 등 유해성이 크기 때문에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먹어 없애자? 전문가 “나라면 절대…”

미국 남부에서 즐겨 먹는 크로피시 보일(Crawfish Boil). pixabay

미국 남부에서 즐겨 먹는 크로피시 보일(Crawfish Boil). pixabay

미국가재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면서 “잡아 먹어 없애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도 나옵니다. 2017년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첸(윤계상)이 먹었던 마라롱샤(중국의 매운 소스 마라에 민물가재를 넣고 볶은 음식)를 미국가재로 요리해먹은 유튜버도 있죠.

실제로 원산지인 미국 남부에선 미국가재를 즐겨 먹습니다. 팔팔 끓는 솥에 미국가재와 감자, 옥수수 등을 넣고 삶은 '크로피시 보일'(Crawfish Boil)이 유명하죠.

하지만 자칫 잘못 먹었다간 큰 코 다칠 수 있습니다. 민물가재를 잘 익히지 않고 먹으면 폐흡충(폐디스토마)에 감염될 수 있죠. 김 연구원은 “미국가재는 탁한 늪에서 곰팡이까지 퍼뜨리고 다니는 종이다. 누가 나한테 권하면 먹지 않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전남 나주 지석천에서 잡은 미국가재. 공성룡 기자

전남 나주 지석천에서 잡은 미국가재. 공성룡 기자

또한 생물다양성법에 따라 환경부의 허가 없이 미국가재를 잡아서 운반하거나 키우는 건 불법입니다. 강에서 미국가재를 잡았을 때 풀어주는 것 역시 불법이죠. 법을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고요? 미국가재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종량제 봉투에 담아 일반 생활폐기물처럼 처리하면 됩니다. 전 세계를 헤집어 놓고 우리 하천까지 침입한 미국가재, 더 이상 자리를 내주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이 그렇듯, 지구상 모든 생물도 그들의 스토리가 있죠. 동물을 사랑하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만든 ‘애니띵’은 동물과 자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공성룡·왕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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