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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대북 밀사’로 정상회담 성사시킨 박지원 화려한 부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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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호 03면

2018년 9월 18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 첫날 목란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와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왼쪽에서 첫째와 둘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 후보자는 이날 만찬에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연합뉴스]

2018년 9월 18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 첫날 목란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와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왼쪽에서 첫째와 둘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 후보자는 이날 만찬에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연합뉴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지난달 17일 외교안보 분야 원로급 인사 자격으로 청와대 오찬에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 왼쪽 두 번째 자리에 앉았는데, 참석자 중 가장 연장자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다음으로 대통령과 가까웠다.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직후였던 이날 문 대통령의 뜻을 외부에 가장 적극적으로 알린 사람도 박 후보자였다.

외교안보 라인 교체 #박 후보자, 당시 김정일 앞에서 노래 #실무 라인 서훈도 막후서 함께 활약 #현 정부 들어서도 정책 의견 교류 #박 후보자 “국정원 개혁에 매진할 것” #일각선 대북 유화 드라이브에 의문

당시 박 후보자는 “대통령이 ‘인내하면서 상황을 관리하고 대응은 적절히 하되 어떻게든 대화로 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2주가량이 지난 뒤 문 대통령은 그를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정했다. 서훈 국정원장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기용하고 박 후보자를 발탁하는 연쇄 인사를 단행하면서다.

박지원·서훈 두 사람은 20년 전 6·15 남북 정상회담의 막전막후에서 함께 움직였다.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박 후보자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밀사 자격으로 협상 과정을 총괄했다. 서 원장은 김보현 3차장-서영교 대북전략국장-서훈 대북전략조정단장으로 이어지는 국정원 대북 라인 실무자였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서도 두 사람은 수시로 대북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이번 인사를 두고 여권 내에서 “국정원장과 안보실장의 긴밀한 의사소통에 기반을 두고 남북 현안에 대해 안정적인 대응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박 후보자는 지난 2일 남·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전화 한 번 해서 만나면 된다. 가능성이 크지 않더라도 추진은 해야 하고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싱가포르와 중국 상하이·베이징을 넘나들며 북측 인사들과 수시로 핫라인을 가동했던 경험에서 나온 주장이다. 문 대통령이 박 후보자를 전격 기용한 배경에는 이 같은 그의 경험과 중량감, 인적 네트워크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박 후보자는 2000년 6·15 정상회담 환송 오찬 때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을 만큼 독보적인 대북 친화력을 가졌다. 그는 2008년 서울대 특강에서 “‘내곁에 있어주’(이수미)를 끝내자 김 위원장이 앵콜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두 번째 곡으로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최진희)를 부르자 김 위원장이 날더러 ‘장관 선생은 인민 예술가’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6·15 남북 공동선언을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국회의원 시절 의원회관도 615호를 사용했다.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엔 방송 출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개진해 왔다. 지난달 1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외교안보 라인 교체설을 두고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 번 흔드니까 다 인사 조치되고 하는 것도 나쁜 교육이 될 수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비췄는데, 2주 뒤 본인이 국정원장에 지명됐다.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선 “문 대통령이 선대 관계를 중시하는 북한의 경향을 고려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박 후보자를 국정원장에 앉힌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대북 채널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있어서 박 후보자의 정보력과 정치력 등이 적극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원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대북 관계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정의용-서훈’ 투톱 체제의 일부분을 유지한 것”이라며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정치인으로서 특히 국회 협의 과정에서 역량을 보여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후보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 입에서는 정치라는 政(정)자도 올리지도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인사를 통한 대북 유화책이 어떤 효과를 낼지에 대한 의구심도 나온다. 지난달 북한 당국은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을 통해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자칫 ‘대북 유화 드라이브’가 미국과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 후보자는 지난달 라디오 인터뷰에서 “(남북문제 돌파를 위해) 미국의 설득이 필요한데, 미국이 너무 지나치게 제재할 때는 가서 한바탕 해야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미국연구센터장은 “이번 인사가 미국에는 한국 정부가 대북 정책에 힘을 싣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유화 기조를 강조한 탓에 외교안보 전략이 지나치게 남북관계 현안에 쏠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대북 정책 전문가들이 전면에 포진하면 한·미 동맹은 물론 일본·중국 등과의 외교안보 문제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미·중 전략 경쟁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우리에게 다가올 외교안보적 도전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며 “새로운 외교 안보팀이 남북문제뿐 아니라 전략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에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심새롬·박용한·이유정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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