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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로봇은 그리스 신화에 나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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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호 20면

신과 로봇

신과 로봇

신과 로봇
에이드리엔 메이어 지음
안인희 옮김
을유문화사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탈로스 #청동으로 만들어진 로봇 거인 #인도·중국도 로봇 기록 있어 #페르시아는 불 뿜는 로봇 제작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일어났던 일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전도서 1:9) 이 말에 즉각 반론을 던질 수 있다. 예컨대 로봇은 현대 이전에는 없었던 것 아닌가? 잠깐!

스탠퍼드대 고전학과에서 ‘연구학자(research scholar)’로서 고대 과학사를 연구하는 에이드리엔 메이어는 『신과 로봇』에서 고대 로봇의 존재를 실증한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다. 2500년 전부터 그리스를 필두로 페르시아·인도·중국 신화에 ‘시원적’ 로봇에 대한 기록에 나온다. 처음에는 상상 속 로봇이었다.

“하늘이 한계다”라는 말도 있지만, ‘상상력이 한계다’라고도 할 수 있다. 상상은 현실의 벽을 뚫고 진짜 로봇을 세상에 선보였다. 『천일야화』의 하늘을 나는 양탄자가 비행기가 됐다.

『신과 로봇』은 신기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페르시아에는 불을 내뿜는, 1000개의 로봇으로 구성된 기갑부대가 있었다. 인도 전승에 따르면 부처님 유해를 경비 로봇이 지켰다.

프랑스 화가 장바티스트르뇨(1754~1829)가 그린 ‘조각의 기원’(1786). 피그말리온과 그가 사랑한 여신 조각상을 형상화했다. [사진 코요]

프랑스 화가 장바티스트르뇨(1754~1829)가 그린 ‘조각의 기원’(1786). 피그말리온과 그가 사랑한 여신 조각상을 형상화했다. [사진 코요]

저자의 ‘서구적 편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가 ‘인조 생명’ 부문의 리더였다. 기원전 3세기에 헬레니즘을 구가하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신화가 현실화된 각종 오토마톤이 제작됐다. (알렉산드리아는 그 시대의 실리콘밸리였다.) 오토마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작동하는 기계나 메커니즘, 특히 로봇”이다.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 로봇도 자판기도 오토마톤이다. 저자의 오토마톤 정의는 “만들어진, 태어난 것이 아닌(made, not born)”이다.

『신과 로봇』에 나오는 최초의 오토마톤은 탈로스다. 탈로스는 청동으로 만든 거인이다. 그의 임무는 해적과 침략군으로부터 크레타 섬을 지키는 것이다. 탈로스는 크레타 해안을 하루 3회 순찰한다. 탈로스의 제작자는 헤파이스토스다. 헤파이스토스는 모든 기술과 공예를 관장하는 신이다. 제우스의 장남이다. 탈로스는 안드로이드다. 즉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인간과 닮은 행동을 하는 로봇”이다.

탈로스는 어쩌면 영생이 이미 보장된 존재다. 그런데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인 마법사 메데이아가 “나는 너에게 영생을 줄 수 있다”며 탈로스의 마음을 뒤흔든다. 메데이아는 탈로스의 빗장·볼트 하나를 풀어 탈로스를 죽인다.

『신과 로봇』은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을 둘러싼 21세기 담론을 고대 오토마톤의 세계로 투영한다.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1804~1872)는 “신은 곧 인간이다. 신은 인간의 내적 본성을 외부로 투사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인 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창조주 구실을 한 ‘인간형 로봇’에게도 자신의 내적 본성을 투사한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고 한다. ‘창조주’가 된 인간은 인조 생명체에 자유의지를 허용할 것인가.

인간의 내적 본성의 핵심은 무엇일까. 사람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부귀영화일까. 권력이나 돈일까. 영생? 창조의 욕구? 사랑? 어떤 교리문답은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신과 로봇』에서 탈로스 못지않게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흥미롭다.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의 왕이다. 자신이 상아로 조각한 여신상을 사랑하여 아프로디테가 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아내로 삼게 하였는데, 둘 사이에서 딸 파포스가 태어났다. 기술적으로 가능해진다면, 자신이 만든 로봇과 가정을 꾸리는 사람도 생겨날 것인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유명한 아서 찰스 클라크(1917~2008)는 “모든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볼 수 있다. 신화의 세계는 마법의 세계다. 기술은 마법에서 시작한다. 신화는 기술의 원천 소스다. 기술은 돈이다. 신화는 돈이 된다. 우리가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신화에 관심이 많은 마니아 독자는, 에디스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 조지프 캠벨의 『신화의 힘』, 필립 프리먼의 『지금 시작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을 읽었을 것이다. 독서 목록에 『신과 로봇』을 추가할만하다. 글의 밀도가 높아 읽기가 쉽지는 않다. 중급·고급 독자를 위한 책이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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