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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 빼고 암벽 오르는 프리솔로, 100만분의 1 실수 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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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호 25면

“무서움이 없는 게 아니라 무서움을 통제하는 거다. 안 그러면 끝장.”

호놀드 910m 등반, 아카데미 다큐상 #한국서도 인수·수리봉 등서 프리솔로 #"루트 수십번은 올라야 자신감 생겨 #무서움 느끼지만 통제 못하면 끝장"

미국의 알렉스 호놀드(35)가 한 말이다. 최지호(45)씨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지난달 20일 북한산 수리봉 중상급자 암벽 등반 루트(코스)인 아빠길(5.11b)을 올랐다.

알렉스 호놀드가 2010년 10월 미국 오리건주의 스미스 록 주립공원의 제브라 지온에서 로프와 등반 파트너 가 없는 프리솔로 등반을 하고 있다. [사진 하루재클럽]

알렉스 호놀드가 2010년 10월 미국 오리건주의 스미스 록 주립공원의 제브라 지온에서 로프와 등반 파트너 가 없는 프리솔로 등반을 하고 있다. [사진 하루재클럽]

뭔가 허전했다. 최소 2인으로 이뤄져야 할 등반팀의 나머지 한 명이 없었다. 장비도 단출했다. 헬멧이 없었다. 추락에 대비할 최후의 보루인 로프도 그의 몸에 묶여있지 않았다. 그는 성큼성큼, 수십 년간 몸에 밴 집구석처럼, 거침없이 루트의 주요 포인트를 딛고, 껴안고, 꼬집고, 움켜쥐었다. 로프와 파트너의 도움 없이 맨몸으로 하는 프리솔로(free-solo) 등반이다. 암벽화와 초크(손의 땀을 제거해 주는 탄산마그네슘 가루)만 갖출 뿐이다.

북한산 수리봉 아빠길을 프리솔로로 오로는 최지호씨 . [최지호 유튜브 캡처]

북한산 수리봉 아빠길을 프리솔로로 오로는 최지호씨 . [최지호 유튜브 캡처]

최씨는 “이 루트를 최소 30번 오른 뒤 몸과 마음에 인(印)이 박여야 한다”며 “그래야 무서움을 느끼지 않고 무서움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일에는 북한산 코끼리 크랙(5.11b)에 신성훈(52)씨가 프리솔로로 올라갔다. 멀리서 그 장면을 우연히 지켜본 홍재우(17)군은 “내 심장이 오그라들었다”고 말했다.

암벽등반의 한 장르로 제재 안 해
프리솔로는 극한의 클라이밍이다. 때문에 “궁극의 등반”이라는 찬사와 “제정신이냐”라는 비난이 펼쳐진다. 프리솔로는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100여 년 전부터 행해졌다. 파울 프로이스(1886~1913)는 1910년대 돌로미테와 서부알프스를 중심으로 300여 회의 프리솔로 등반을 했다. 그는 프리솔로로 오른 암벽을 그대로 내려오기도 했다. 프로이스는 1913년 만틀코겔 북벽에서 추락사할 때까지 이런 방식의 등반을 선호했다.

북한산 코끼리 크랙을 프리솔로로 오르는 신성훈씨. [ 신성훈 유튜브 캡처]

북한산 코끼리 크랙을 프리솔로로 오르는 신성훈씨. [ 신성훈 유튜브 캡처]

호놀드는 2017년 6월 요세미티 엘 캐피탄의 ‘프리라이더(5.12d·표고 차 약 900m)’를 프리솔로로 올랐다. 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리솔로’가 2019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상을 받았다. 고된 준비 과정과 오를지 말지를 망설이는 인간적 고뇌를 담았다. 

하지만 그의 프리솔로 행위를 비판하는 일각에서는 ‘호놀드가 소시오패스 경향이 있다’고 했다. 공포를 모르는 독특한 성향은 뇌 과학자들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실제 검사를 받아본 결과,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는 정상이었다.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자 뇌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공포에 익숙하다는 얘기다. 호놀드는 데이비드 로버츠와 함께 펴낸 『프리솔로』(하루재클럽)에 '(내게는) 심리적으로 압박 받는 상태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능력이 있다'고 적었다.

호놀드는 “프리라이더의 경우 50여 차례 등반한 뒤 머릿속에서 등반 전 과정을 그려보면서 맞닥뜨릴 수 있는 정신적 위기상황을 검토했다”고 말했다. ‘노출 치료(exposure therapy)’라는 심리 훈련 방법이다. 최지호씨도 “몸과 마음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안 한다”고 밝혔다.

프리솔로는 왜 하는가.
성향의 문제다. 프리솔로는 호수처럼 잔잔한 내면을 가져야 한다.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성격 검사를 하면 항상 구도자·성직자·종교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 성향이 프리솔로의 원동력이다. 암벽등반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 위험성은 중독이란  부정적 의미로, 극복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전이될 수 있다. 난 솔로등반(혼자 로프를 사용하는 등반)을 10년 넘게 해왔다. 내적 수련이다. 솔로등반이란 그림 속에 프리솔로가 포함된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등반 스타일이다.”  
보여주기 식의 등반 아니냐.
(웃음) 보여주기 식이라면 바위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은 엄중하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순간 솔로와 프리솔로는 망가진다. 집중력이 중요한데, 그게 흐트러지고 만다. 동작도 꼬인다. 그러면 끝장이다.

호놀드는 『프리솔로』에 ‘나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아울러 그는 '비록 쉬운 피치일지라도, 프리솔로로 등반할 때 나는 오직 내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한다. 그러면 온 우주가 나와 바위로 줄어든다. 단 하나의 홀드도 결코 소홀히 잡을 수 없다'고 썼다. 최씨는 그래서 프리솔로를 다른 등반가들이 하산한 뒤에 한다고 밝혔다.

알렉스 호놀드가 2012년 요세미티 하프돔의 레귤러 노스웨스트 페이스를 프리솔로로 오르면서 '생크 갓 렛지(Thank God Ledge)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대부분의 등반가들은 이곳에서 기어 다닌다. [사진 하루재클럽]

알렉스 호놀드가 2012년 요세미티 하프돔의 레귤러 노스웨스트 페이스를 프리솔로로 오르면서 '생크 갓 렛지(Thank God Ledge)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대부분의 등반가들은 이곳에서 기어 다닌다. [사진 하루재클럽]

프리솔로는 그 위험성 때문에 한국 등반계에서 이단시 돼온 장르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호놀드가 2008년 유타의 문라이트 버트레스(5.12d)를 프리솔로로 올랐다. 프리솔로라는 장르는 봉인해제 된 듯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호놀드에게 스폰서가 붙었고 강연 요청이 잇따랐다. 호놀드는 수입이 얼마 되느냐는 질문에 “성공한 치과의사 수준으로 벌었다”고 답했다. 프리솔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본격 보급되면서 SNS 등에 ‘노출’도 잦아졌다. 최씨도 호놀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프리솔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프리솔로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
호놀드 때문에 프리솔로가 긍정적으로 인식된 듯하다. 이전부터 할 수 있었지만 호놀드의 프리솔로 활동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책임감 없다고 보지 않겠나.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인지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 등반의 가치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혹시 결혼했나.
미혼이다. 결혼 여부는 등반과 관계없다.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가 프리솔로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위험하다고 말하겠다. 그래도 하겠다면 20년간 암벽 등반 경험을 쌓고 보자고 할 것이다.

남의 눈 의식하는 순간 망가져
호놀드처럼 표고 차 1000m 안팎의 거벽에서 프리솔로를 하는 국내 등반가는 없다. 하지만 5m만 바닥으로 추락해도 치명적이다. 단속과 제재를 가하지 않을까. 이동윤(51) 북한산국립공원 특수산악구조대 부대장은 “솔로, 프리솔로는 등반의 한 장르로 본인들의 선택 사항”이라며 “인수봉과 노적봉 등의 암벽에서는 별도로 제재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암릉 구간에서는 2인 이상이 로프 등 장비를 소지해야 등반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2010년 미국 요세미티의 세러페이트 리얼리티(5.11d)에서 프리솔로 중인 알렉스 호놀드. 20m의 짧은 구간이지만, 경사 90도가 넘는 오버행과 200m에 이르는 고도감 때문에 까다로운 루트로 알려져 있다. [사진 하루재클럽]

2010년 미국 요세미티의 세러페이트 리얼리티(5.11d)에서 프리솔로 중인 알렉스 호놀드. 20m의 짧은 구간이지만, 경사 90도가 넘는 오버행과 200m에 이르는 고도감 때문에 까다로운 루트로 알려져 있다. [사진 하루재클럽]

등반가들은 프리솔로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이용대(83) 코오롱등산학교 명예 교장은 “프리솔로는 알버트 머메리(1855~1895·최초의 8000m급 도전자)가 말한 정당한 수단으로(by fair means), 순수하게 자기 기량으로 오르는 것”이라면서도 “100만분의 1 오차로 생사가 갈릴 수 있는데,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최석문(47·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씨는 “프리솔로는 자신의 통제 선상에 철저히 계획적으로 이뤄지지만,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도윤(54·악우회)씨는 “프리솔로는 극단의 개인적 선택”이라며 “해 보지도 않고 누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속공 등반을 즐겨 ‘머신’이라 불린 율리 스텍은 황금피켈상 심사위원들에게 “프리솔로가 적절한지는 당신들이 평가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순간의 실수로 생사가 갈리는만큼 한창일 때 목숨을 잃은 프리솔로 등반가들도 있다. 율리 스텍은 2017년 히말라야 눕체에서 40세의 나이로 추락사했다. 호놀드에 버금가는 브래드 고브라이트(31)는 지난해 멕시코에서 프리솔로 뒤 하강 중 사망했다. 존 바카(52), 댄 오스먼(36), 딘 포터(43) 등도 유명을 달리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프리솔로는 선택이라는 개인의 자유 영역일 수 있다”면서 “하지만 노출을 통해 모방과 위험 인지도 저하로 이어진다면 사회적 안전의 측면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호씨는 “프리솔로가 궁극의 등반이라 해도 등반의 궁극은 집에 돌아가는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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