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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셧다운 해놓고 1000억 갚으라니" 이스타 노조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마포구 애경본사 앞에서 열린 제주항공 규탄 기자회견. 이스타항공 노동조합 회원의 선글라스에 기자회견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뉴스1

서울 마포구 애경본사 앞에서 열린 제주항공 규탄 기자회견. 이스타항공 노동조합 회원의 선글라스에 기자회견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뉴스1

이스타 노조, 애경그룹 규탄대회

이스타항공과 인수합병(M&A)을 추진하던 제주항공이 대규모 미지급채무 해소를 요구하자, 이스타항공 임직원이 반발하고 있다. 거래를 깨기 위해 사실상 이행 불가능한 요구를 했다는 것이 이스타항공 측 주장이다.

이스타·제주항공 대표 간 통화 파일 내용 공개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조종사 노조)은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 제주항공 모기업인 애경그룹 본사 앞에서 ‘애경·제주항공 규탄대회’를 열었다. 규탄대회에서 조종사 노조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파산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조종사 노조는 이 자리에서 이석주 AK홀딩스 대표(전 제주항공 대표)와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의 지난 3월 통화 녹취 파일 내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석주 당시 제주항공 대표는 ‘이스타항공 노선 운항을 전면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최 대표가 ‘(최소한) 국내선은 운항하자’고 말하자, 이 대표는 ‘셧다운(shutdown·전면운항중단)하고 희망퇴직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타 조종사 노조, 애경 본사 앞에서 제주항공 규탄. 연합뉴스

이스타 조종사 노조, 애경 본사 앞에서 제주항공 규탄. 연합뉴스

이스타항공 체불임금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최 대표가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직원에게 체불임금을 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하자, 이 대표는 ‘딜 클로징(deal closing·인수계약종료)을 빨리 끝내자. 그럼 그 돈으로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조종사 노조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운항을 전면 중단하면서 손실이 커졌다”며 “이로 인해 이스타항공이 자력 회생할 기회를 박탈했다”고 제주항공 책임론을 제시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애경그룹 본사 앞에서 제주항공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애경그룹 본사 앞에서 제주항공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자력 회생 기회를 제주항공이 박탈”

앞서 지난 1일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에 ‘10일 이내에 선결 조건을 자체적으로 해소한 뒤, M&A 거래 종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자’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서 제주항공이 내건 선결 조건의 핵심은 이스타항공의 미지급채무다. 이를 모두 해결하려면 이스타항공은 오는 15일까지 830억~1100억원을 조달해야 한다.

이스타항공이 운항을 중단한 보잉737-맥스 8 항공기. 사진 이스타항공

이스타항공이 운항을 중단한 보잉737-맥스 8 항공기. 사진 이스타항공

이스타항공 측은 제주항공의 이런 요구는 애경그룹이 M&A에서 발을 빼기 위한 명분 마련용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830억원이면 최소 2개월 이상 항공기를 띄울 수 있는 금액”이라며 “당장 830억원을 조달해 빚을 청산할 수 있다면 굳이 M&A를 진행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조종사 노조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요구하고 있는 채무 해소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항공은 지난달까지는 임직원에게 체불한 임금을 해소하라고 요구했다. 이스타항공의 체불임금 규모는 지난달 말까지 약 24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일가는 지난달 29일 이를 위해 이스타항공 지분 전액을 매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제주항공이 이번엔 갚을 수 없는 금액을 해소라는 조건을 걸어 사실상 M&A 계약 파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게 조종사 노조의 주장이다.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 대기중인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 대기중인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830억이 있으면 M&A할 이유도 없어”

앞으로 열흘간 이스타항공이 최소 830억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사실상 파산 수순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스타항공은 이미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이다.

이스타항공이 자금 조달에 실패하고 제주항공이 이를 근거로 M&A 계약을 파기할 경우 양사간 맞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제주항공은 이행보증금(115억원) 반환 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이스타항공의 귀책사유로 계약이 파기됐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항공은 지난 5월 이후 ‘인수 의지는 있지만, 이스타항공 내부 사정으로 인수를 못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애경 본사 앞에서 제주항공 규탄 구호를 외치는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원. 연합뉴스

애경 본사 앞에서 제주항공 규탄 구호를 외치는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원. 연합뉴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 책임론을 제기할 전망이다. 항공기 운항 전면 금지, 휴업, 구조조정, 지상조업 자회사(이스타포트) 계약 해지 등 경영상의 주요 의사결정을 제주항공이 하면서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는 논리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는 오는 4일에도 민주당사 앞에서 애경그룹과 제주항공을 규탄하는 결의 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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