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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진한 기름?…"트럼프, 코로나에도 사우디 대사관 철수 늦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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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미국 대사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뒤늦게 대사관 직원과 가족의 출국이 허용돼 미국 내 논란이 일고 있다. 미 국무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 왕실의 긴밀한 관계를 고려해 철수를 미루다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마지못해 허용한 것 아니냐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모스크 앞에서 보안요원이 기도를 하러온 성도의 마스크를 확인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모스크 앞에서 보안요원이 기도를 하러온 성도의 마스크를 확인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국무부와 사우디 정부는 현지 대사관 직원 20여 명이 격리되고 운전기사 1명이 사망하자 뒤늦게 직원과 가족의 출국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집단감염은 대사관 직원의 생일 기념 바비큐 파티에서 일어났는데 확진자만 수십 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늑장대처에 현지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대사관 관계자는 "사우디 상황은 코로나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지난 3월 뉴욕과 흡사하다. 병상은 이미 포화 상태고 의료진들도 지쳐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기만 하다"고 상황을 전했다. 사우디 보건부에 따르면 사우디의 누적 코로나 확진자는 19만여 명이며 일일 신규 확진자는 4000명 수준이다.

문제는 미 국무부의 늑장대응이 다른 주재국에서 한 조치와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 초기 주중국, 주러시아 대사관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철수를 결정했다.

2017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을 만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AFP=연합뉴스]

2017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을 만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AFP=연합뉴스]

미 언론들은 이런 차이가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 왕실과 미묘한 관계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018년 11월 20일 사우디 반정부 성향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에 대해 직접 사우디 왕실을 두둔하는 성명을 내 눈길을 끌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가 미국산 무기를 대규모로 사들일 계획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상 사우디 왕실이 미 대사관 직원들이 떠나는 걸 원하지 않자 국무부도 철수를 미룬 것 아니냔 관측이다. 더글러스 런던 전직 CIA 비밀요원은 "사우디 왕실은 어려운 시기에 미 대사관 직원들이 사우디를 떠나는 모습은 왕실을 약하고, 무능하게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jung.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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