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진 은행들은 회사의 신용등급과 여신 한도를 결정할 때, ‘녹색’인지 ‘브라운’인지부터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게 글로벌 표준이고, 이걸 못 따라가면 또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그린뉴딜 촉진 녹색금융 도입방안 세미나’에서 참석한 임대웅 UNEP FI(금융 이니셔티브) 한국 대표의 발언이다. 임 대표가 언급한 ‘그린’은 탄소배출을 늘리지 않는 산업, ‘브라운’은 탄소배출을 늘리고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산업을 말한다. 석탄화력, 가스발전 등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발전산업은 대표적인 브라운 산업으로 꼽힌다.
전날인 30일 한국전력은 임시 이사회에서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 자바 9, 10호기 사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그러나 기후금융을 다루는 금융권 관계자들은 리스크가 큰 ‘브라운’ 산업인 석탄발전소 건설에 공기업이 대규모의 투자를 하는 건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이번 달 발표할 예정인 '그린뉴딜'과도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왔다.
임대웅 한국대표는 이날 세미나에서 “가장 보수적인 은행권도 ‘기후위기’를 투자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며 “(기온 상승 폭을) 2℃로 제한하는 국제사회 약속만 지키려고 해도 석탄발전 자산은 이미 다 부실자산이자 '좌초자산(자산가치가 0이 되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린뉴딜' 발표 일주일 전… '브라운'에 투자한 한국
한전이 참여하는 인도네시아 석탄발전 사업은 자카르타 인근 지역에 2000MW급 발전소를 짓는 사업으로 전체 사업비가 약 4조 2500억원 규모에 이른다. 한전은 지분투자로 약 613억원을 투자하고, 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산업은행 등 한국 공공금융기관이 약 1조 7000억원 대출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자산가치 부풀려 투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와 똑같다"
금융 전문가들은 투자 가치가 없는 석탄사업에 투자하는 건 유동성 위기, 결국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지난달 18일 일부 공개한 KDI의 예비타당성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KDI는 인도네시아 자바 9,10호기 사업은 530억원 적자, 한전이 입을 손실은 58억으로 평가했다.
한전은 ‘전력구매계약에서 평균 계획 송전비율 86%를 보장한다’는 전제로 사업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KDI는 78.8%의 송전비율로 보고 평가했으며 “실제로는 75%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손실폭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전은 "25년간 전력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은 2015년 파리협정에서 약속한 '2℃'를 맞추기 위해 석탄화력을 줄이는 세계적 추세로 볼 때 불확실한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JP모건도 석탄투자 중단, 돈이 안 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이종오 국장은 “석탄발전이 이른 시일 내에 좌초자산이 될 확률이 커 전 세계가 석탄 투자를 배제하고 있다. 남은 위험을 수출입은행‧산업은행‧무역보험공사가 떠안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손실이 뻔한 사업에 투자를 결정한 한전 이사회의 이사들은 배임으로 볼 수 있는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당시 금융기관들이 주택의 가치를 실제 자산의 150%로 상정하고 대출을 내주면서 버블이 생긴 건데, 지금 한전도 인도네시아 석탄투자의 가치를 과대평가해 투자하는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거의 10년 전부터 석탄투자를 중단했고, 한전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첨병인 JP모건도 석탄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그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돈이 안 되니까' 중단하는 것"이라며 "한전은 상장 공기업인데,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마지막 폭탄을 끌어안고 '투자 수익 난다'고 우기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린 뉴딜' 말하면서 석탄화력에 투자하나"
유진투자증권 한병화 연구위원도 "투자 계획 단계에서는 가장 비관적인 경우까지 전망해서 위험이 적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한전의 계획은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만 보여주고 그마저도 2050년까지 현실성이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한병화 연구위원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전 세계적인 탈석탄 흐름에 동참해서 '석탄발전소를 짓지 않겠다'라고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이런 리스크를 알고도 투자에 들어가는 금융기관과 정부기관의 결정은 무책임하고 무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연구위원은 정책 일관성의 부재도 지적했다. "국내에선 '그린뉴딜'을 외치지만 해외에선 '그린'도 아니고 '뉴딜'도 아닌 사업에 공기업 자금을 투입하는 건 기만적"이란 비판이다. 그는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저탄소 금융'으로 구조개편이 빨리 이뤄질 것"이라며 "한국은 이런 변화에 굉장히 늦은 데 거꾸로 가기까지 한다면 산업 전체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