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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19명 시골학교 성추행 반전…"극단선택 교사 순직" 왜

중앙일보

입력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성추행 의혹으로 조사를 받다 2017년 8월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송경진 교사의 빈소 모습.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성추행 의혹으로 조사를 받다 2017년 8월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송경진 교사의 빈소 모습.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남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살인입니다."

[이슈추적] #법원, 고 송경진 교사 순직 인정 #교육청 징계 밟자 극단적 선택 #경찰, 무혐의 내사 종결했는데도 #전북학생인권센터 '성희롱' 결론 #유족 "32년간 존경받던 선생님 #성추행범 몰아 죽게 했다" 분통 #교총 "무리한 조사 사과해야" #김승환 교육감, 입장 밝힐 예정

 고(故) 송경진(사망 당시 54세) 교사의 아내 강하정(56)씨의 말이다. 강씨는 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전북교육청 등이) 32년간 존경받던 선생님을 한순간에 성추행범으로 몰아 벼랑으로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전북 부안의 한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송 교사는 지난 2017년 8월 5일 김제시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제자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도 전북교육청에서 징계 절차를 밟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법원이 송 교사의 죽음을 '공무상 사망(순직)'으로 인정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약 3년 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유환우)는 지난달 19일 강씨가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순직유족급여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피고(인사혁신처장)가 2018년 12월 11일 원고(강씨)에게 한 유족급여 부지급 결정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고 송경진 교사의 죽음을 '공무상 사망'으로 인정한 서울행정법원 판결문 일부.[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고 송경진 교사의 죽음을 '공무상 사망'으로 인정한 서울행정법원 판결문 일부.[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재판부는 "망인(송 교사)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학생들과의 신체 접촉에 관해 일련의 조사를 받으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과 우울 증상이 유발됐다"며 "이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유족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망인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학생들의 탄원서에도 불구하고 전라북도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는 피해 여학생들을 면담해 진술 내용을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기존에 작성된 진술서만을 근거로 판단했다"며 "이에 망인으로서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사망은 죄책감이나 예상되는 징계의 과중함에 대한 두려움 등 비위 행위에서 직접 유래했다기보다는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조사 결과 수업 지도를 위해 한 행동들이 망인의 목적이나 의도와 무관하게 성희롱 등 인권 침해 행위로 평가됨에 따라 30년간 쌓아온 교육자로서의 자긍심이 부정되고, 더 이상 소명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고 송경진 교사 성추행 의혹 사건을 내사 종결한다는 내용이 담긴 전북경찰청 공문.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고 송경진 교사 성추행 의혹 사건을 내사 종결한다는 내용이 담긴 전북경찰청 공문.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전체 학생 19명에 여학생은 8명뿐인 작은 시골 학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사건은 2017년 4월 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부모 한두 명이 '송 교사가 여학생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게 발단이 됐다.

 학교 측은 여학생 7명과 면담한 결과를 바탕으로 같은 날 부안교육지원청과 부안경찰서에 "송 교사가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고 신고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 잇달아 보도됐다. 신고 이튿날부터 출근 정지를 당한 송 교사는 그해 4월 24일부터 7월 24일까지 석 달간 직위해제 상태로 지냈다.

 전북경찰청은 그해 4월 24일 '혐의 없음'으로 내사를 마무리했다. 당초 피해를 호소하던 여학생 모두가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수업 태도를 지적하며 머리·팔·어깨를 만져 기분이 나쁜 적은 있지만 추행의 의도로 성적 접촉을 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성적 수치심을 느낀 사실도 없다. 수사 진행과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을 바꾼 게 근거가 됐다.

고 송경진 교사가 2017년 5월 인권센터에서 작성한 문답서 일부.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고 송경진 교사가 2017년 5월 인권센터에서 작성한 문답서 일부.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하지만 같은 시기 성추행 신고를 접수한 전라북도 학생인권교육센터(이하 인권센터)는 직권으로 조사를 강행했다. 인권센터는 "송 교사가 성희롱을 했다"고 판단했다. 송 교사는 조사 내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인권센터 조사관이 '선생님 주장대로라면 학생들이 무고한 거냐'고 말하자 학생들이 다칠 수 있다고 판단해 "오해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라북도 학생인권심의위원회는 인권센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그해 7월 3일 "피해 여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고 결론 짓고 전북교육청에 송 교사에 대한 신분상 처분을 권고했다. 송 교사는 전북교육청이 그해 8월 3일 감사 일정을 통보한 다음 날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재학생과 졸업생 등 50여 명이 "선생님은 잘못이 없다"는 탄원서를 썼지만, 교육청에 보내지도 못하고 남편이 죽었다고 강씨는 전했다.

 송 교사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수박과 복숭아·불고기 등을 사들고 부안에 사는 80대 노모를 찾아 가 함께 식사를 하고 용돈도 드렸다고 한다. 유서에는 "모두 내 잘못이다. 아내와 (나를) 도와준 학생 아버지는 아무 잘못이 없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학생이 쓴 탄원서 사본.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학생이 쓴 탄원서 사본.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아내 강씨는 "교육청과 인권센터가 무리한 조사로 남편에게 누명을 씌우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남편의 사망은 공무상 사망에 해당한다"며 인사혁신처에 순직유족급여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강씨는 남편이 숨진 뒤 당시 부교육감과 해당 학교장, 학생인권교육센터장 등 10명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와 강요·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전주지검은 2018년 6월 "조사 과정에 강압은 없었고, 법령과 지침도 지켰다"며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강씨는 "사람들은 승소해서 '축하한다'고 하는데 하나도 안 기쁘다"며 "내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이 지금도 잘살고 있어 노여움은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승소한 이후) 교육청에서 연락이 온 적 없다. 사과할 줄도, 책임질 줄도 모른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김승환) 교육감을 여덟 번 만나려고 했는데 '점심 식사하러 갔다' '부재중'이라며 한 번도 안 만나줬다"며 "교육감이 교육청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만나자고 해도 '없다'고 거짓말했다"고 했다.

학생이 쓴 탄원서 사본.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학생이 쓴 탄원서 사본. [사진 고 송경진 교사 유족]

 근골격계 희소병을 앓고 있는 강씨는 "남편은 아픈 저는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10년간 살림을 도맡았다"며 "그나마 (외동)딸(대학생)때문에 산다. 입학 후 학과 수석을 놓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인사혁신처장이 항소를 안 하면 순직유족급여 지급이 확정된다"며 "변호사와 상의해 김 교육감 등 고의성이 짙고 악의적으로 (조사)했던 사람들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북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한국교총과 함께 지난달 30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판결로 송경진 교사의 죽음에는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의 무리한 조사와 징계 착수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전북교육청과 인권센터는 지금이라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영수 전북교육청 대변인은 "교육감님이 2일 오전 10시 30분 교육청 8층에서 예정된 기자회견 자리에서 관련된 말씀을 주실 예정"이라고 했다.

부안·김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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