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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기업, 현금화 전에 화해 나서야···역사는 판결로 해결 안돼”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1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하자, 일본 지식인들은 ‘한국이 적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전직, 외교관, 변호사, 시민사회 활동가 등 78명이 주축이 됐던 이 성명은 한·일 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이 성명이 게재됐던 홈페이지(https://peace3appeal.jimdo.com)의 첫 화면은 ‘한국은 적인가’에서 ‘한국은 적이 아니다’로 바뀌었다.

[인터뷰] '한국은 적인가' 주도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

수출규제 조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냈던 성명 '한국은 적인가'가 발표된 뒤 현재는 '한국은 적이 아니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홈페이지 캡쳐]

수출규제 조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냈던 성명 '한국은 적인가'가 발표된 뒤 현재는 '한국은 적이 아니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홈페이지 캡쳐]

서명을 주도했던 우치다 마사토시(内田雅敏) 변호사를 지난 29일 약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우치다 변호사는 “역사문제는 판결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면서 “압류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기 전에 일본 기업이 피해자와 화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965년 한·일기본협정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인식을 한·일이 처음으로 공유했던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작년 7월 ‘한국은 적인가’라는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그 이후 상황을 알려달라.
1만명 정도가 서명에 참여했다. 이후 한·일 법률가 공동성명을 내는 등 정부와 별도로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앞으론 경제계와 정계, 전직 외교관들의 참여도 끌어낼 계획이다.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가 지난 29일 도쿄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JTBC 박상용 기자]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가 지난 29일 도쿄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JTBC 박상용 기자]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를 평가한다면. 
역사문제를 경제문제와 엮은 잘못된 정책이었다. 일본 기업에도 결코 좋은 결정이 아니었다. 
일본 수출기업들도 불만이 있을 텐데, 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걸까.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라는 일본 정부 논리의 영향이 크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징용공’이라는 단어가 꽤 알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의 논리가 널리 퍼져 있다.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건 일본 정부 스스로도 인정했던 문제다. 1991년 8월 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나이 순지(柳井俊二) 외무성 조약국장이 “개인의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아베 정권만 “다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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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쓰비시 머터리얼이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화해했을 때는 일본 정부는 반발하지 않았다.  
중·일 관계는 1972년 중·일 공동성명에 침략 전쟁에 대한 인식이 공유돼 있다. 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엔 식민지배에 대한 공통 인식이 반영돼있지 않다. 이 문제가 처음 언급된 것이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었다. 즉 1998년이 돼서야 중·일 공동성명 수준의 인식에 다다른 것이다. 이 선언이 출발점이 돼야 하는데 일본 정부는 지금 1965년 협정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인터뷰 때 “수출규제 조치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고 위기를 부풀려서 헌법 개정을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그 생각엔 변함이 없나. 
동시에 한국 여론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아베 정권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베 정권하에서는 (징용공 문제) 해결은 쉽지 않지만, 최소한 이 이상 한·일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가 지난 29일 도쿄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JTBC 박상용 기자]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가 지난 29일 도쿄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JTBC 박상용 기자]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면 관계 악화가 예상된다. 
역사문제 해결은 법률적인 해결이 아니다. 판결 집행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진짜 해결은 사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해야 한다. 현금화는 절반의 승리일 뿐 완전한 해결은 될 수 없다. 일본 기업이 먼저 압류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기 전에 피해자 측과 화해를 위한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금화 움직임을 중단시킬 수 없을 것이다.
화해에 의한 해결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우선 가해의 사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책임을 인정한다면 그 증표로 화해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문제를 역사의 거울로 삼아 역사 교육을 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역사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과거를 직시한다’는 공통의 인식을 대전제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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