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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임대인 되려다 먼저 죽겠다” 임대료 원상복귀 '아우성'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1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 착한 임대료 운동에 감사함을 표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 3월1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 착한 임대료 운동에 감사함을 표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착한 임대인’ 사업이 아니었더라도 평소 좋은 임대인이었어요. 근데 지금 그분도 어려운 상황이니까….”

서울 종로구에서 작은 한복집을 운영하는 김모(64)씨는 최근 건물 주인으로부터 “임대료를 다시 원래대로 받아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고령의 건물 주인은 “김씨 사정을 아는데, 나도 참 미안하다…”며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김씨가 세 들었던 건물의 임대인은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 지난 4개월간 임대료를 20~30% 정도 깎아줬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돌잔치·칠순잔치 등 각종 행사가 사라지며 한복을 사기는커녕 임대하는 사람도 크게 줄어 아예 하루 매출이 ‘0’인 날들이 이어졌다. 김씨는 “임대인 입장을 이해하지만 매출이 없어 임대료 나며 장사를 계속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더 깎아주다 빚쟁이 될 형편"  

정부의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점차 수그러드는 추세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되던 지난 2월 말~3월 초 시작된 임대료 인하는 다시 ‘원상복귀’ 하는 분위기다. 임대료에 의지해 생활하는 ‘생계형 임대인’들은 “더 이상 임대료를 인하하면 내가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생계형 임대인보다는 상황이 나은 임대인들도 “코로나19가 이렇게까지 오래 갈 줄 몰랐는데, 언제까지고 임대료를 깎아줄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착한 임대인 운동에 앞장섰던 주요 시장에서도 ‘운동 종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임대료 20%를 인하했던 서울 광장시장은 더 이상 임대료 인하를 하지 않기로 했다. 3개월간 600여개 점포 임대료 인하하는데 들어간 비용만 3억6000만원이다. 광장시장 관계자는 “금액도 많고 점포 수도 워낙 많다 보니 더 이상 임대료 인하 정책을 연장하기 어려워졌다”며 “아예 장사를 접으며 공실이 많아지다 보니 임대인들도 힘들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6월30일 오후 1시 서울 광장시장 내부가 텅 비어 있다. 이후연 기자

6월30일 오후 1시 서울 광장시장 내부가 텅 비어 있다. 이후연 기자

시장 전체가 일괄적으로 참여하진 않았지만 건물주가 개별적으로 임대료를 인하해줬던 서울 남대문시장에서도 일부에서 임대료를 다시 예전 수준으로 올리는 분위기다. 남대문시장에서 티셔츠 등을 판매하는 상인은 “3개월간 임대료를 깎아줬던 건물주가 ‘더 이상 어렵다’고 하는데, 이미 짐 싸서 나가는 가게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료 인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가게는 ‘건물주=상인’인 경우일 것”이라며 “임차인도, 임대인도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3월부터 20%가량 임대료를 깎아줬던 서울 동대문시장도 7월부터 임대료를 원래 수준으로 회복할지 좀 더 임대료 인하 정책을 유지할지 고민 중이다.

세액감면, 6월30일까지 인하한 임대료만 대상

6월12일 오후 1시쯤 서울 남대문시장 거리의 모습.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매우 한산한 수준'이라고 상인들은 말했다. 이후연 기자

6월12일 오후 1시쯤 서울 남대문시장 거리의 모습.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매우 한산한 수준'이라고 상인들은 말했다. 이후연 기자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정부의 ‘착한 임대인 운동’ 혜택인 세액감면은 지난 6월 30일까지 인하한 임대료만이 대상이다. ‘상반기 한시적 운영’이라고 밝힌 만큼, 아직 7월 이후 인하한 임대료의 세액 감면 등 ‘추가 임대료 인하 유인책’은 나오지 않았다. 임차인들은 소상공인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있지만, 자격 요건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신청 후 지원금 수령까지 기간이 오래 걸려 ‘긴급’이라는 취지가 무색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별개로 서울시에서 운영 중인 ‘착한 임대인 운동’ 혜택도 부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시에서는 6월1일부터 9월29일까지 임대료 인하에 동참한 임대인에게 15만원 상당의 마스크와 손세정제, 비접촉식 체온계 등을 제공하고 건물 보수 비용이나 정기 점검 비용을 보조해주기로 했다. 남대문시장의 한 상인은 “건물주 입장에서 건물 보수나 정기 점검은 귀찮은 일이고, 보조받은 비용보다 본인이 써야 할 비용이 더 클 테니 대단한 유인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광장시장의 한 상인은 “임대료 깎아준 임대인을 ‘착하다’고 칭찬할 게 아니라 손실을 감수한 임대인을 위한 적절한 세액 감면, 지원이 필요한 임차인을 위한 빠른 지원금 같은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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