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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도쿄지검, 서울지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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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영감’이 검찰에 연행됐습니다.”

1976년 7월 27일 오전 6시 30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비서가 ‘다나카 파벌’ 회장인 니시무라 에이이치 전 국토교통상에게 급보를 타전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기습적으로 다나카 전 총리의 신병을 확보한 직후였다. 전 일본이 충격에 빠졌다. 다나카 전 총리는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로부터 5억엔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 구속, 기소된 뒤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일본 검찰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순간이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후에도 성역 없는 수사를 계속하면서 절대적인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한국의 많은 검사도 그 조직을 전범(典範)으로 삼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처럼 보였다. 정권에 빌붙어 권세를 유지하던, 숱한 정치 검사들을 보면서 심중은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한국 검찰은 거짓말처럼 후퇴와 전진을 거듭하면서 이상향에 한발 한발 다가가기 시작했다. 권력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거나 정권의 심장부를 직격했던 법무·검찰 수뇌부와 검사들의 노력이 조금씩 쌓이면서다. 꽃은 ‘윤석열 검찰’에서 피어났다. 최소한 수사 독립성 측면에서는 일본 검찰을 앞지른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권력이 막아섰다. 베테랑 법조기자였던 야마모토 유지는 저서인 『동경지검 특수부』에서 “정·재계 의혹 사건 수사가 정권 중추에 접근하면 정치권이 검찰에 대한 ‘대역습’에 나선다는 걸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만국 공통의 진리인 듯하다. 올 초까지만 해도 ‘산 권력’에 큰 칼을 휘두르던 ‘서울중앙지검’이 한순간 세기 초의 옛 ‘서울지검’으로 되돌아간 듯 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대역습을 주도하는 법무부 장관에게 수십 년 피땀의 결과물인 ‘수사 독립성’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지만 그만두는 게 나을 성싶다. 대통령의 “법무·검찰 협력” 지시까지 ‘통째로 잘라먹으면서’ 연일 검찰총장을 맹폭하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본인 언행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만 보여주길 바라본다.

공교롭게도 한국 검찰이 주춤하는 사이 다소 존재감이 약해졌던 도쿄지검 특수부가 직전 법무상(법무부 장관)을 체포한 데 이어 아베 신조 총리에게까지 칼을 겨누고 나섰다. 검찰 영역에서 아직 ‘일본 추월’을 운운하기는 일러 보인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