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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 몰렸던 은마, 2년 거주 의무에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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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1979년 지어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는 ‘재건축 대장주’로 꼽힌다. 그만큼 정부의 재건축 규제에서도 타깃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1979년 지어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는 ‘재건축 대장주’로 꼽힌다. 그만큼 정부의 재건축 규제에서도 타깃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50대 A씨는 3년 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를 샀다. 그는 “졸지에 투기꾼이 돼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새로 지은 은마에 살고 싶었다”며 “몇 년 안에 철거해 재건축 공사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어떻게 거주할 생각이 들었겠냐”고 말했다.

정부 규제 타깃 ‘재건축 대장주’ #단지 전체 시가총액 8조8000억 #재건축 분양권 제한 1호 될 수도 #거래허가제까지 묶여 ‘이중고’

은마아파트가 6·17 부동산 대책이 일으킨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놓였다. 정부는 재건축 단지에서 2년 이상 살지 않은 집주인에겐 새 아파트의 분양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이후 재건축조합의 설립 인가를 신청하는 단지부터 적용한다. 아직 조합을 설립하지 못한 은마아파트는 이런 규제가 적용되는 1호 단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은마아파트가 속한 대치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도 지정됐다. 주거용은 대지 지분이 18㎡를 넘으면 허가 대상인데 은마아파트에선 대지 지분이 가장 적은 곳도 48.3㎡다. 2년 이상 실거주 목적이어야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집을 사고팔 수 있다.

은마아파트의 4424가구는 1979년 지어졌다. 재건축 단지의 선두에서 집값 흐름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정부 규제의 타깃이 됐다.

현재 시세가 가구당 20억원 정도라고 보면 단지 전체의 시가총액은 8조8000억원 수준이다.

은마아파트 매매 거래건수

은마아파트 매매 거래건수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은마아파트는 2017년부터 3년간 668건이 거래됐다. 연평균 거래회전율은 약 5%다. 대치동 청실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대치팰리스의 거래회전율은 같은 기간 5.4%로 은마보다 약간 높았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의 평균 거래회전율은 5.2%였다. 다른 아파트 단지와 비교하면 은마아파트의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은 편이다.

중앙일보가 은마아파트에서 표본으로 224가구(전체의 약 5%)를 골라 등기부 등본을 살펴봤다. 집주인이 20년 넘게 바뀌지 않은 집은 21.4%(43가구)였다. 15년 이상 바뀌지 않은 집은 40%였다. 2000년 이후 재건축 기대감으로 장기 보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집주인의 평균 연령은 58세다. 30대 집주인은 4%였다.

집을 산 사람의 주소를 보면 절반 이상(57%)이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였다. 지방에서 ‘원정 투자’한 비율은 8% 정도다. 둘 이상이 지분을 나눈 공동 소유 주택은 전체의 절반 정도였다. 2017년 이후 거래된 44가구 중에는 70%가 공동 소유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이 강화되면서 절세에 유리한 공동 소유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과 2019년에 거래된 26가구 중에는 23%가 증여였다.

2017년 이후 거래 가운데 아파트 주소와 집주인 주소가 일치하는 경우는 11.4%였다. 나머지 88.6% 중 상당 부분은 임대 보증금을 끼고 집을 산 ‘갭투자’일 가능성이 크다. 집주인 중에는 거주지가 해외로 돼 있거나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례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재건축 분양권을 얻기 위해 2년 이상 거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17년 이후 거래 가운데 무주택자가 은마아파트를 산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는 72%였다. 등기부 등본에 올라온 집주인의 주소를 보고 주택 구매 시점에서 해당 주소의 집주인과 같은 사람인지 확인했다. 이때 서로 다른 사람이라면 은마아파트를 산 사람이 무주택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은마아파트에서 갭투자를 한다면 자금 부담이 큰 편이다.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시세 15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해선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짜리의 시세는 19억원 수준인데 전셋값은 5억원대다.

지난 3월에는 부산에 사는 50대가 76㎡짜리를 19억3300만원에 샀다. 이 사람이 전세를 끼고 집을 샀더라도 최소한 14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내야 했을 것이다. 단지가 오래된 만큼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25~3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강남구 아파트의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은 평균 50% 수준이다.

은마아파트 집주인들이 올해 안에 재건축조합 설립 인가를 신청하려면 7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최소한 3318가구가 동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은마아파트가 사업 재건축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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