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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화장실 냄새? 황홀한 향? 오묘한 '피트'의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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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74)

고수를 처음 먹었을 때가 기억난다. 처음 먹어보는 맛에 바로 뱉어버렸다. 한동안 고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쌀국수에 잠긴 고수를 실수로 먹은 어느 날, 국물과 어우러진 고수 맛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젖은 고수가 입에 맞자 젖지 않은 고수도 맛있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음식점에 가면, “고수 듬뿍 주세요”라며 고수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위스키에서 ‘피트(Peat)’는 고수 같은 존재다. 처음엔 무슨 이런 맛이 있나 싶다가도 중독되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 피트는 한자어로 ‘토탄(土炭)’이다. 땅속에 묻힌 시간이 오래되지 않은 탄화 되지 못한 석탄을 말한다. 탄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화력이 약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섬 지역에선 석탄이 부족해 피트를 사용해 몰트를 건조했다. 이때, 피트를 태우면 나오는 스모키향이나 요오드 향이 몰트에 밴다. 이 향은 너무나 강렬해서 수십 년 위스키를 숙성시켜도 사라지지 않는다.

피트(Peat). 피트는 석탄이 되지 못한 식물퇴적층이다. [사진 Pixabay]

피트(Peat). 피트는 석탄이 되지 못한 식물퇴적층이다. [사진 Pixabay]

피트는 위스키를 통해 유명해졌지만, 요즘은 부업도 열심히 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더스타트업드링크랩(The Start-Up Drinks Lab)’사의 공동창업자인 한나 피셔(Hannah Fisher)는 피트 처리된 토마토주스 ‘Tongue in Peat(텅인피트)’를 6월 발매했다. 신선한 토마토를 12시간 동안 피트 처리 후, 블렌딩했다. 맥아 건조용 피트를 사용한 첫 토마토 주스다. 피셔는 “적합한 피트를 선별해 많은 실험을 진행했고, 매번 다른 제철 토마토를 사용하기 때문에 출시되는 토마토주스마다 미묘한 배합의 변화를 알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토마토주스에 피트 향이라니, 피트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끝내주는 소식이다.

Tongue in Peat. 세계 최초의 피트 향 입힌 토마토주스. [사진 The Start-Up Drinks Lab]

Tongue in Peat. 세계 최초의 피트 향 입힌 토마토주스. [사진 The Start-Up Drinks Lab]

스코틀랜드에서 피트 연구는 활발하다. 피트를 사용해 훈연한 연어나 치즈, 피트 향을 입힌 땅콩 등 다양한 먹거리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됐다. 땅콩 잼에 피트 향을 입힌 제품도 있는데, 아침의 시작을 피트 잼 바른 빵과 함께하면, 누군가는 굉장히 행복할 거다. 또 언제든지 피트 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피트 립밤도 있다. 누군가는 ‘화장실 암모니아 냄새’라고 깎아내리는 피트지만 분명히 그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피트 향을 입힌 스코틀랜드산 훈연 연어. [사진 김대영]

피트 향을 입힌 스코틀랜드산 훈연 연어. [사진 김대영]

피트 향을 입힌 땅콩. [사진 김대영]

피트 향을 입힌 땅콩. [사진 김대영]

1908년, 다섯 번째 맛 ‘우마미(감칠맛)’가 발견된 후 100년 넘게 새로운 맛의 발견은 없었다. 여섯 번째라고 주장하는 맛은 많았지만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피트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달라서 한 마디로 맛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우마미도 ‘달착지근한 맛’, ‘고기국물 맛’, ‘부드러운 맛’, ‘표고버섯 맛’ 등 표현이 다양하다. 위스키 팬으로서 피트가 여섯 번째 맛으로 인정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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