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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마스크 도운 약사회 등에 칼?...화상투약기 도입검토

중앙일보

입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뉴스1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뉴스1

보건복지부가 의약품 자동판매기(일명 원격 화상 투약기)를 일단 시범사업 형태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은 대한약사회가 반대해 온 사업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정부의 공적 마스크 판매제도를 지원해온 약사회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복지부, 화상 투약기 긍정검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9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화상 투약기 도입문제는 최근까지 논의한 사안”이라며 “시범사업이나 특례규정, 폐해 등에 대해 검증해보고 싶은 게 복지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다.

이후 남 의원은 화상 투약기는 지난 19~20대 국회에서 이미 반대한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현재 시행 중인 주말 당번약국이나 심야 약국 등이 대안으로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남 의원은 “(화상 투약기가) 오히려 노인이나 장애인, 어린이의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번 약국인 서울 신촌의 한 약국. 늦은 밤 당번 약국을 찾은 사람들이 약을 구입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번 약국인 서울 신촌의 한 약국. 늦은 밤 당번 약국을 찾은 사람들이 약을 구입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번약국 실효성 의문에서 등장 

하지만 박 장관은 지난 3년간 추진돼 온 당번·공공 심야 약국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고 한다. 박 장관은 “(화상 투약기의) 필요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상 투약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판기 형태다. 하지만 음료수처럼 소비자가 직접 상품(약)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상으로 약사에게 증상을 말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이미 2011년 화상 투약기 제품에 대한 특허까지 출원된 상태다. 하지만 약사회의 반대와 규제로 인해 실제 도입되지는 않았다.

화상투약기 내부 모습. [중앙포토]

화상투약기 내부 모습. [중앙포토]

규제 샌드박스 올라온 사안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화상 투약기는 ‘규제 샌드박스’에 올라와 있다. 이 제도는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따라서 조만간 이를 위한 실증 특례 관련 심의위원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화상 투약기는 ‘스마트 원격 화상 투약시스템 구축·운영 서비스’로 규제 실증 특례가 신청돼 있다고 한다. 이에 비대면 진료에 이어 화상 투약기까지 도입될지 관심이다.

대한약사회 과거 궐기대회 모습. [중앙포토]

대한약사회 과거 궐기대회 모습. [중앙포토]

만만치 않은 반대여론 

하지만 벌써 약사들의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4년 전 화상 투약기 도입이 수면 위로 올랐을 때 약사회는 긴급성명서 발표를 비롯해 국회 앞 1인 시위, 포스터(약은 껌도 과자도 콜라도 아닙니다) 제작, 동영상 콘텐트 등을 통해 강력히 반발했다. 현재 약사회 차원의 공식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배신”이라는 단어도 서슴없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약사(42)는 “공공재인 전문 의약품은 ‘대면 판매’가 원칙”이라며 “이게 무너지면 앞으로 ‘문턱을 낮춘다’는 이유로 온라인 약국이나 조제약 배송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약품 오남용이나 변질·오염에 따른 사고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약사도 “지난달 초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적 마스크 공급에 헌신해줬다며 감사 인사를 표하더니 다른 쪽에서는 등에 칼을 꽂으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사회 반대 속 정상운용 의문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규제를 뚫고도 막상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약사회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작 화상 투약기를 운용할 약사를 구하지 못할 수 있어서다. 약사회 회원은 8만명 규모다.

화상 투약기 제조사 관계자는 “화상 투약기는 약국이 심야나 공휴일에 문을 닫는 동안 관리 약사가 화상을 통해 약을 판매하게 하자는 취지”라며 “중국의 투약기는 인공지능(AI)이 약품 선택을 도와주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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