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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넣은 가방 짓밟고 미동 없어도 놔둔 계모 "훈육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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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훈육 차원에서 가방에 들어가게 했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구호 조치 없이 방치한 점으로 미뤄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며 계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 1일 충남 천안에서 발생한 ‘9살 아이 여행가방 감금 사건’ 얘기다.

경찰이 9살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계모(원안)를 10일 오후 검찰에 송치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경찰이 9살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계모(원안)를 10일 오후 검찰에 송치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지난 29일 9살 의붓아들 여행가방에 7시간가량 감금해 숨지게 한 혐의(살인 등)로 A씨(41·여)를 구속기소 했다. 지난 10일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면서 가장 큰 관심은 ‘살인 혐의’ 적용 여부였다.

9살 아이, 7시간 가방에 갇혀 의식불명 #계모, 아이 감금하고 3시간동안 외출도 #검찰시민위원회, 만장 일치로 '살인죄' #검찰 "수사통해 고의입증할 증거 확보"

 A씨는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훈육 차원에서 여행가방에 들어가게 했다”고 주장했다. 10여 일간 A씨를 조사한 경찰은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아동학대치사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 살인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살인죄는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는 게 아동학대치사죄와 다른 점이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여성·강력범죄전담부 부장검사 등 3명의 검사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한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은 뒤 A씨와 숨진 B군(9)의 친부 등을 상대로 조사했다. 휴대전화 통화 내용 분석과 주거지 압수 수색, 범행도구 감정 등을 통해 A씨의 추가 확대 사실과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도 확보했다. 지난 26일 열린 검찰시민위원회에서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살인죄로 기소하는 게 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 1일 오후 충남 천안시 서북구의 아파트에서 계모에 의해 여행가방에 갇혔다가 의식을 잃은 9살 아이가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오후 충남 천안시 서북구의 아파트에서 계모에 의해 여행가방에 갇혔다가 의식을 잃은 9살 아이가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지난 1일 낮 12시쯤 충남 천안시 백석동의 아파트에서 B군을 여행가방(가로 50㎝·세로 71.5㎝·폭 29㎝)에 3시간가량 감금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오후 3시20분쯤에는 더 작은 여행가방(가로 44㎝·세로 60㎝·폭 24㎝)으로 B군을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는 3시간가량 외출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A씨는 B군을 여행가방에 감금한 뒤 아이가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데도 가방에 올라가 뛰는 등 학대행위를 이어갔다. 가방에서 풀어달라며 울고 빌던 아이의 울음소리나 움직임이 줄었는데도 그대로 방치했다. 검찰은 A씨가 가방에서 내려온 뒤 아무런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아이를 방치한 점을 근거로 ‘살인에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A씨는 B군이 가방에 갇힌 지 7시간쯤 지난 오후 6시45분쯤 별다른 반응이 없자 지퍼를 열었다. 가방 안에서 쭈그리고 있던 B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B씨는 7시25분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했다. 당시 아파트에는 A씨의 친자녀 두 명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9살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계모(원안)를 10일 오후 검찰에 송치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경찰이 9살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계모(원안)를 10일 오후 검찰에 송치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119구급대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당시 B군은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병원으로 옮겨진 B군은 이틀 뒤인 3일 오후 6시30분쯤 숨졌다. 이날은 초등학교 3학년인 A군이 새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B군을 치료한 의료진은 가방 안에서 산소가 부족해 의식을 잃은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은 피해 아동을 지속해서 학대해왔고 범행 당일 7시간 동안 가방에 가뒀다”며 “피해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고 예견할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해 살인죄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B군이 다니던 초등학교와 아파트에는 조그만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교사와 친구, 아파트 주민들은 메모지에 아이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한 주민은 ‘네가 하늘로 올라갔단 소식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썼다.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계모가 지난 3일 오후 영장실짐심사를 받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계모가 지난 3일 오후 영장실짐심사를 받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한편 충남지방경찰청은 지난 26일 B군의 친부 C씨(42)에게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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