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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비건 내달초 한국 온다…美대선 전 마지막 대북접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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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가 지난해 1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할 일을 이제 마무리짓자.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며 북측에 대화를 공개 제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가 지난해 1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할 일을 이제 마무리짓자.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며 북측에 대화를 공개 제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7월 초순 방한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 이후 미국 고위급 인사가 한국을 직접 찾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7월 초 방한위해 코로나 격리 면제 협의중" #北 접촉 타진할 듯…美 대선전 마지막 기회 #교착상태 장기화 방위비 이슈도 언급할 듯

이날 한·미 관계에 정통한 서울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외교부는 최근 보건 당국과 비건 부장관과 그 일행에 대한 코로나 19의 자가 격리(14일) 면제 절차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2~3일 일정으로 논의 중이라고 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유럽ㆍ미국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은 14일 간 격리와 모바일 자가진단 앱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외교 사절(A1ㆍA2 비자)은 ‘격리 면제서’ 제출 시 모바일 앱으로 능동 감시만 받도록 하고 있다. 이에 더해 외교부는 최근 외국 정상급 또는 장·차관급 고위 인사에 한해 이 같은 규정을 모두 면제하는 내규를 마련했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대면 외교가 ‘올 스톱’되는 사태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 “고위 외교사절은 체류 기간이 통상 2~3일에 불과한 점을 고려했다”며 “비건 부장관은 이 규정을 적용받는 첫 번째 인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왼쪽)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왼쪽)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연합뉴스]

방한이 최종 성사되면, 비건 부장관은 지난해 12월 16~17일 이후 6개월 만에 한국을 찾는다. 최근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을 내세워 남북관계 파탄을 선언하고, 개성 남북공동 연락 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대남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다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 폭로까지 더해지면서 서울과 워싱턴에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한 강한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이 회고록에서 '유화적'이라고 비판했던 비건 부장관이 방한 기간에 이 같은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북한을 향해 모종의 메시지를 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 비건 부장관은 방한 때마다 북한과의 접촉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그는 지난해 12월 방한에서 “북한의 카운터파트(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에게 직접 말하겠다”며 “우리의 일을 하자. 우리는 여기에 있고 당신들은 나에게 어떻게 연락할지 알고 있다”고 공개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끝내 호응하지 않았다.

이번 방한 길에도 뉴욕 유엔 대표부 채널 등을 통해 북한에 접촉 제안을 던져 놓고 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국내적으로 빅 이벤트인 대선(오는 11월 3일)을 앞둔 만큼, 북·미 간 실무 접촉이 성사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비건 부장관 방한에 앞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달 17~19일 방미해 북핵 수석대표 간 협의를 하고 돌아왔다. 이때 비건 부장관의 방한 필요성이 논의됐을 수 있다. 불과 2~3주의 간격을 두고 비건 부장관이 방한하는 만큼 북핵 수석대표 간에 새롭게 협의할 내용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한·미 간 협의보다는 대북 메시지 발신에 방점을 둘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연유다.

이도훈(왼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해 5월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비핵화·남북관계 워킹그룹 회의'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도훈(왼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해 5월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비핵화·남북관계 워킹그룹 회의'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각) 워싱턴 DC에서 열린 6ㆍ25 기념식에 참석해 이수혁 주미대사에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비건 부장관이 방한 길에 좀 더 구체화한 메시지를 직접 구두로 밝힐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최근 평양의 먹거리 수급이 급속히 악화하는 등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관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수도(평양) 시민의 생활 보장을 위한 당면한 문제”가 언급된 데 이어, 27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재룡 내각 총리가 평양의 살림집(주택)ㆍ상수관 보수, 남새(채소) 생산을 늘리기 위한 방안들을 점검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비건 부장관이 부장관과 대북특별대표라는 ‘두 개의 모자’를 쓰고 있는 만큼 교착상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SMA) 협상 등 한·미 동맹 사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방위비 협상은 제임스 드하트 SMA 특별대표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 직보 체제로 돼 있긴 하지만, 비건 부장관이 방한 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를 정부에 직접 전달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비건 부장관은 그동안 한국을 방문할 때 일본 또는 중국도 함께 들렀다. 하지만 이번 방한 기간 중 일본 또는 중국 방문이 함께 이뤄질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비건 부장관의 7월 초 방한 일정에 대해 “현재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정은 없다”고만 밝혔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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