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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볼턴 없었어도 하노이는 실패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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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미국 각료 중에 자리가 가장 불안한 사람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지 싶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연방군을 투입하겠다는 뜻을 밝힌 직후 TV 브리핑에 나와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격노한 트럼프가 당장 해임하겠다고 했으나 참모진이 가까스로 말렸다고 한다. 결국 연방군 동원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각료가 소신에 따라 대통령에게 반대하고 대통령이 뜻을 굽히는 일이 드물지 않은 게 미국 시스템이다. 대통령 말씀 한마디에 176석 집권당 의원과 팬덤으로 똘똘 뭉친 지지자들이 줄을 서는 우리네 현실에선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김정은은 문재인 과신했고 #문재인은 미국을 잘 몰랐다 #트럼프만 믿은 게 실패 원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도 이런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볼턴이 사심을 갖고 쓴 글을 어떻게 믿느냐”는 반응도 있지만 볼턴의 주관적 기술을 걸러내면 팩트의 얼개가 그려진다. 우리가 이 책을 주의 깊게 읽는 건 문재인 정부의 중재외교가 왜 파탄 일보 직전에 왔는지, 하노이 회담은 왜 실패했는지를 곱씹기 위해서다. 실은 우리 정부도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트럼프와도 동의했지만 미국이 톱다운 방식이 아니더라. 밑에서 반대하기 때문에 이뤄지지 못해 안타깝다.” 북한이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던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원로들에게 한 발언을 박지원 전 의원이 옮긴 것이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4월 30일 더 구체적인 증언을 했다. “우리가 트럼프에게 공을 들였던 것은 그의 스타일이 미국 내의 많은 유보 내지 반대들을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의 엄청난 반대를 뚫고 뭔가를 만들어보려고 한 점을 평가해야 한다. 트럼프의 태도에서 충분히 기대를 품어볼 만했다.”

임종석은 이런 에피소드까지 전한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018년 3월 방북 뒤 백악관으로 날아가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와 북·미 정상회담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하자 트럼프는 좌중에 있던 20여 명의 참모에게 반복해서 “거봐 내가 뭐랬어 (내 말이) 맞지?”라고 반복했다는 것이다. 북의 말을 믿고 싶어 하는 트럼프와 그에 부정적인 참모들 간에 의견이 쪼개져 있었다는 얘기다.

종합하면 청와대는 트럼프만 설득하면 북·미 회담 성과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관이 뚜렷하고 셈법이 독특한 트럼프라도 논리로 무장한 참모들의 반대를 이겨내진 못했다. “미국은 톱다운이 아니더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그때는 미처 몰랐어요”란 뒤늦은 고백으로 들린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톱다운이 가장 효율적인 길이겠지만 미국은 톱다운만으로 작동하는 체제가 아니란 점을 간파하지 못했거나 간과했다는 얘기다. 볼턴뿐 아니라 펜스 부통령이나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섣부른 북·미 합의에 부정적인 입장에 섰다는 사실이 회고록 곳곳에 나온다. 그 많은 미국 유학 출신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뭘 자문했는지 의문이다.

문제는 볼턴의 회고록에 나오지 않는 부분, 즉 남과 북 사이에 오고 간 얘기들의 진상이다. 아직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지만, 북한은 하노이에서 영변과 제재 해제의 교환에 실패한 뒤 “남한 말을 믿었던 게 패착”이라고 분개했다는 게 북한 소식통과 전문가들 사이의 정설이다. 반면에 트럼프는 정상회담에 응하면서도 끊임없이 북한의 의도를 반신반의하며 자신이 얻을 정치적 과실과 저울질했다. 그 결과 하노이에 가기 전부터 ‘배드딜’보다는 ‘노딜’에 기울어져 있었다. 임종석도 이를 인정한다. 그런 트럼프에게 김정은은 끝까지 ‘+α’는 없다고 버텼으니 결과는 뻔했다.

하노이 실패의 원인은 그리 복잡한 게 아니다. 김정은은 문재인을 너무 믿었고, 문재인은 미국을 몰랐다. 문재인이 김정은을 구슬리는 데 성공했는진 몰라도 트럼프는 올 듯 말 듯 하면서도 끝내 선을 넘어오지 않았다. 그것을 ‘전쟁광’ 볼턴 한 사람의 훼방 탓으로만 몰아가는 건 전체 판을 못 본 것이다.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