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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희옥의 한반도평화워치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 채널 가동해 한반도 긴장 낮춰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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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남북 갈등 속 중국 활용하기

지난 16일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로 파편이 튀고 연기가 일고 있다. 남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한·중 고위급 대화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16일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로 파편이 튀고 연기가 일고 있다. 남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한·중 고위급 대화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 추가 군사 행동을 유보한 채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이러한 도발 행위는 사건과 국면 그리고 구조의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사건 그 자체이다. 북한 지도부를 향해 선정적이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전단을 살포하자 감정 외교(sensibility in diplomacy) 차원에서 대응했다. 여기에는 집권 여당이 4·15 총선에서 승리했음에도 이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중 갈등 속 북한의 도발 행위 수용 어려운 중국 통해 #도발 시 한국의 군사 대응 불가피하다는 점 전달하게 해야 #남북 대치 국면에선 작더라도 결실 있어야 다음 진행 가능 #이미 구축한 한·중 전략대화 채널을 물밑 가동하는 게 절실

둘째, 심각한 경제 상황이다. 북한은 그동안 고강도 국제 제재 속에서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도 중국에 기대 숨 쉴 공간을 확보하면서 버텨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코로나19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올해 4월 말까지 북·중 교역은 수출·수입 모두 전년 대비 90% 이상 급감하는 등 ‘부족의 경제’가 심화했다. 4월과 6월 각각 열린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국가 계획의 하향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고, 평양 시민의 생활 보장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의 발로이다.

셋째, 구조의 차원이다. 북한은 자신의 선제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한·미 공조의 틀에 갇혀 자율적 공간을 만들지 못하는 데 대한 불신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계기로 ‘닭을 쳐 원숭이를 놀라게 하는’ 살계경후(殺鷄儆猴)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밑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 모색할 만

문재인(左), 시진핑(右)

문재인(左), 시진핑(右)

이렇게 보면 북한의 목표는 경제 위기를 돌파하고, 오는 10월 노동당 창당 75주년을 맞아 최소한의 업적 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의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문재인 정부를 지렛대 삼아 제재 환경을 바꾸려는 총공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상황 변화가 북한 뜻대로 관철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등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긴장을 높이면서 국제적 관심을 환기해 유리한 협상 고지를 차지하려고 할 것이다. 지금은 상대 응수를 타진하는 일종의 숨 고르기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대북 전단 문제에 대한 실효적 방안을 마련한다고 해도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기 어렵고, 올해 10월 완공 예정인 평양종합병원에 현대식 의료 장비를 지원하려 해도 대부분 제재리스트에 묶여있다는 데 있다. 북한이 한국 정부의 의지 문제로 간주하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도 한미워킹그룹의 의사결정 구조와 미국 대선 국면에서 뾰족한 방안을 찾기 어렵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제재를 다시 연장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무엇보다 북한이 남북 대화 채널을 모두 끊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떠밀리듯 대화로 나갈 수 없는 국내 정치 환경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물밑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모색할 만하다. 6월 20일 노동신문은 이례적으로 시진핑 방북 1주년을 맞아 “사회주의 한 길에서 더욱 굳게 다져지는 조·중 친선관계”라는 기명 칼럼을 실었고,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을 지지하기도 했다. 북한이 북·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정책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제재, 미·중 무역 마찰, 코로나19 속에서 중국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의존이 더욱 높아졌다. 중국도 러시아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해 미국 책임론과 북한의 행동에 상응하는 부분적 제재 완화를 지속해서 제기하면서 호응해 왔다. 시진핑 주석도 ‘힘이 닿는 한’ 북한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상당한 규모의 식량과 의료 물자를 지원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중, 북한과의 대화 방안 함께 논의해야

그러나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정책이 분명한 상황에서 북한의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수용하기 어렵다. 더구나 미·중 무역 마찰, 인도 국경에서의 무력 충돌 후폭풍, 코로나19의 2차 유행 가능성 속에서 북한 문제로 인해 미·중 관계를 악화시키거나 전선을 확대하기는 전략적 부담이 큰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직후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고 이웃이다. 중국은 한반도가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를 일관되게 희망한다”라고 밝히면서도 그동안 사용해오던 ‘양측은 냉정과 자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양비론을 취하지 않는 등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을 통해 북한이 한반도 평화를 깨는 행동, 특히 충돌형 도발을 실행할 경우 한국의 비례적 군사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이 긴장을 조성하는 행동을 자제시키고 대화 테이블에 불러낼 수 있는 창의적 해법을 한·중이 공동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면에서는 작은 선도(先導·pilot) 프로그램에서 손에 잡히는 결실을 얻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미 구축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의 전략대화 채널을 조기 가동할 필요가 있다. 다만 중국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공개적 방식을 선호해 왔다는 점에서 중국의 대북 특사, 한국의 대중 특사 등도 물밑에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한·중 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테스트이다.

중국식 한반도 문제 해법 "일어나 행동하는 게 중요" 협상 강조

중국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정책은 다양한 용어로 제시됐다. 대표적으로 1차 북핵 위기 이후 1993년부터 사용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의 3원칙이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때는 “핵이 없고 전쟁이 없으며 혼란도 없는” 3불(三不)을 강조하기도 한다. 즉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핵심은 전쟁이 없고 북한 체제의 현상 변경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의 방법으로는 중국 외교부가 2016년 공식적으로 제기한 쌍중단(雙中斷)과 쌍궤병행(雙軌竝行)이 있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군사 훈련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는 것으로,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는 북한의 요구를 중국이 수용한 것이다. 쌍궤병행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같은 궤도에 올려놓고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 북한의 ‘선 평화체제 후 비핵화’를 절충한 것이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2005년 9·19 공동성명 정신에 입각한 단계적·동시적 해법이 있다. 이것은 북·미의 상호 불신 구조와 북한 핵 문제의 특수성에 비춰 일괄 타결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7년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만든 공동 행동 계획에도 이러한 로드맵이 포함돼 있다. 2019년에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 북·미 대화 촉구와 6자회담 복귀,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 상황에 따라 일부 대북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또 6자회담 등 실제적 협상 과정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실질적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이 서로 성의를 다하고, 특히 미국에 문턱을 낮출 것을 주문했다.

최근 북한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자 중국은 미국 책임론과 함께 정치적 해결의 중요성과 실제적 행동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5월 말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3기 3차 회의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앉아서 도를 논하는 것보다 일어나 행동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정치적 협상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