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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구상나무 떼죽음…‘기후악당’ 한국에 보내는 경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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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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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등 한반도 고산지대 침엽수가 사라진다는 소식은 어제오늘 나온 것은 아니지만 최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아(亞)고산대 침엽수 실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녹색연합은 지난해 한라산 구상나무의 90%가 고사한 상태이고, 태백산·오대산·설악산 분비나무도 집단 고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은 “경북 울진의 금강송 서식지에서도 2018년부터 군데군데 20~30그루씩 집단으로 죽는 사례가 관찰되고 있다”고 말한다.

고온·가뭄에 한반도 침엽수 위기 #뿌리 공생 곰팡이 도움 못 받은 탓 #광합성 못해 탄수화물 부족 시달려 #스트레스와 병충해 겹쳐 ‘치명적’

국립산림과학원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지난 20년간 구상나무 등 아고산 침엽수림이 25%나 줄었다는 것이다. 2009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소나무가 100만 그루 이상 말라죽었고, 2014년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에서도 소나무가 집단 고사했다.

지리산 노루목 주변 구상나무가 상층부를 제외하곤 잎이 대부분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 전봇대처럼 됐다. [중앙포토]

지리산 노루목 주변 구상나무가 상층부를 제외하곤 잎이 대부분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 전봇대처럼 됐다. [중앙포토]

침엽수가 죽는 원인은 무엇일까. 서 전문위원은 “기후변화 탓”이라고 주장한다. 겨울에 눈이 적게 내리고, 여름에 폭염이 심해지는 등 이상 기상현상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인 탓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활엽수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상록침엽수만 피해를 보는 이유에 대해 산림과학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과 가뭄에다 침엽수의 고유한 특성이 더해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산림과학원이나 기상청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연간 강수량은 늘지만, 여름을 제외한 가을·겨울·봄 강수량은 그대로 이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증발량은 더 늘어 봄철 가뭄은 더 심해진다.

낙엽송이나 활엽수와 달리 겨울에도 잎을 가진 상록침엽수는 기온이 상승하면 호흡이 늘어나 탄수화물을 소비하게 된다. 반면 수분 공급 부족으로 광합성을 제대로 못 해 탄수화물 기근이 나타나고, 나무가 말라죽는다. 산림과학원 임종환 기후변화생태연구과장은 “침엽수가 척박한 능선부에서도 잘 사는 것은 나무뿌리와 곰팡이의 공생 관계인 균근(菌根, mycorrhiza) 때문인데, 이른 봄 고온·가뭄이 나타나면 균근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경북 울진 금강송 군락에서도 고사한 나무가 눈에 띈다. [사진 녹색연합]

경북 울진 금강송 군락에서도 고사한 나무가 눈에 띈다. [사진 녹색연합]

균근의 곰팡이는 아주 가는 뿌리처럼 역할해 나무뿌리에 수분을 제공하고, 토양의 미네랄도 녹여내 식물에 공급한다. 대신 나무는 균근 곰팡이에게 유기물을 제공한다. 균근의 곰팡이가 성장하면서 제 역할을 하려면 영상 8도 이상이 돼야 한다. 임 과장은 “토양 온도는 기온과 10일 정도 시차를 두고 서서히 변화하기 때문에 2~5월에 고온과 가뭄이 발생하면 균근의 도움을 받지 못해 상록침엽수엔 치명적이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기후변화로 봄철 고온·가뭄이 늘면서 상록침엽수에 스트레스가 집중되고, 여기에 병충해 피해까지 겹치면서 집단 고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이나 남서향의 급경사지, 능선부,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는 침엽수일수록 피해가 더 커지고, 호흡량이 많은 큰 나무가 더 위험하다. 또, 나이가 비슷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도 피해가 크다.

해외 논문에서도 가뭄 때 나무의 생존율을 높이는 등 균근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유명한 산림학자인 수전 시마드 교수는 균근은 기후변화에 맞서 산림 토양의 안정성을 유지해준다고 밝힌 바 있다. 호주의 연구팀은 2018년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으로 죽은 나무의 경우 균근을 구성하는 곰팡이 종류가 달라진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뿌리 외부로 뻗어 자라는 종류(외생 균근균) 대신에 식물 내부로 파고들어 나뭇가지 모양으로 자라는 종류(수지상 균근균), 뿌리 등 식물체를 분해하는 종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고산지대 상록침엽수 어떻게 고사했나

아고산지대 상록침엽수 어떻게 고사했나

기후변화보다는 나무의 수명이 원인이라는 견해도 있다. 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이창석 교수는 “기후변화가 원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자연계에서는 나무가 200년 이상 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래될수록 가지·잎으로 덮인 수관부(canopy)가 커져 가분수처럼 돼 바람에 취약해지면서, 뿌리가 뽑히고, 줄기가 터지고 부러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가 원인인지를 확인하려면 산림 생태계를 장기간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림청에서는 고사 위험시기에 물을 뿌리거나 나무 사이의 지나친 경쟁을 방지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면적이 넓은 데다 고산지역이어서 실제 적용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임 과장은 “일단 현장조사와 인공위성을 통해 소나무 숲과 아고산 침엽수림의 고사와 쇠퇴 상황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환경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쌍둥이 팬데믹(Pandemic, 대유행)’을 이뤄 환경을 파괴한 인류에게 경고를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내 공격하는 코로나19처럼 기후변화는 균근이나 산호초처럼 지구 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를 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인 소나무와 한반도 고유종인 구상나무의 죽음은 온실가스 감축에 소홀해 ‘기후 악당’으로까지 불리는 한국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