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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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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찰스 C. 보이콧(Charles C. Boycott, 1832~97)은 아일랜드 주둔 영국군 대위였다. 제대 후 복무지 아일랜드에서 영국인 대지주의 재산관리인으로 일하게 됐다. 19세기 아일랜드 농민의 삶은 피폐했다. 1840년대 감자 역병에 따른 대기근으로 굶어 죽는 이가 속출했다. 그 와중에도 대지주의 농지 임차료는 비쌌다. 보이콧도 횡포를 심하게 부렸다. 1880년 아일랜드토지연맹은 임차인 권리 운동을 벌였다. 공정한 임차료(Fair rent), 임차권 보장(Fixity of tenure), 농작물 자유 거래(Free sale) 등을 주장했다. 보이콧은 소작인 중 운동에 동참한 이들을 쫓아냈다.

일은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개됐다. 지역 주민이 일제히 보이콧에 등을 돌렸다. 농민은 소작을 거부했다. 상점은 생필품을 팔지 않았다. 심지어 하인, 하녀도 일을 그만뒀다. 보이콧은 같은 해 9월 영국 ‘더 타임스’에 일련의 상황을 알리는 글을 기고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반(反) 아일랜드 단체가 인부를 파견했다. 주둔군의 호위 속에 수확은 마쳤다. 하지만 ‘악덕 지주’라는 오명을 얻은 대지주는 그해 12월 보이콧을 해고했다. 보이콧을 배척한 주민의 행동은 훗날 그의 이름을 따 ‘보이콧’(boycotting)으로 명명됐다. 불매, 배척, 제재 등이 그 수단이다.

페이스북이 광고주의 보이콧에 백기를 들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고 썼다. 비판이 빗발친 이 글을 페이스북은 방치했다. 코카콜라, 유니레버 등 대형 광고주 100여 곳이 비판에 동참하며 페이스북 광고를 보이콧했다. 페이스북 주가가 급락했다. 26일에만 시가 총액 67조원이 사라졌다. 광고주를 움직인 건 시민이다. 광고주는 자신도 보이콧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140년 전 보이콧도, 요즘 페이스북도 달라진 ‘시대 정신’에 둔감했다. 그 결과는 보이콧이었다.

여담이지만 ‘걸콧’(Girlcott)도 있다. 1980년대 미국 여성 평화 운동단체가 벌인 뉴질랜드 상품 구매 촉진 운동의 명칭이다. 미국 핵 함선 기항을 반대한 뉴질랜드에 대해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무역보복 조치를 검토했다. 이에 반발해 나온 움직임이다. 정치적 올바름 차원에서 남성(boy)을 여성(girl)으로 대체한 조어다. 멋지긴 한데 보이콧만큼 널리 쓰이려면 계기가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