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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이봉근 “잔인한 전통 판소리, 이제야 그 깊이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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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는 극중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시력을 잃은 딸 청이(김하연)에게 일종의 ‘힐링 창작담’으로서 심청가를 만들어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는 극중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시력을 잃은 딸 청이(김하연)에게 일종의 ‘힐링 창작담’으로서 심청가를 만들어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7월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은 주인공 학규 역의 실제 소리꾼 이봉근 없이는 가늠이 안 된다. 임권택 감독의 기념비적 작품 ‘서편제’(1993)와 ‘춘향뎐’(2000)을 비롯해 판소리 영화는 여럿 나왔지만 이들 작품은 출연 배우가 아닌 당대 명창의 녹음을 일부 활용했다.

18세기 조선 배경 민초들의 한과 가족애 #눈먼 딸 위한 '심청가'의 탄생 과정 그려 #'귀향' 조정래 감독 판소리 영화 '소리꾼'

반면 ‘소리꾼’은 오롯이 이봉근이 촬영현장에서 낸 소리가 뼈대이고 중심이다. 극중 학규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동안 시력을 잃은 딸 청이에게 일종의 ‘힐링 노래’로 심청가를 들려준다는 게 골격이라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전통의 판소리가 어떻게 탄생했나, 그 시원(始原)을 들려주는 우화 같은 영화다.

7월 1일 개봉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 주인공 학규 역으로 스크린 데뷔한 배우 이봉근. 전북 남원 출신으로 국악을 전공, 관련 공연만 1500회 넘게 한 실제 소리꾼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7월 1일 개봉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 주인공 학규 역으로 스크린 데뷔한 배우 이봉근. 전북 남원 출신으로 국악을 전공, 관련 공연만 1500회 넘게 한 실제 소리꾼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사실 심청가나 춘향가나 액면 그대로는 잔인하고 어이없는 얘기잖아요. 젊은 소리꾼들끼리 비판적으로 토론하면서 어르신들께 여쭤본 적도 있어요. 그분들도 젊었을 땐 그랬다가 점점 깊이를 이해하게 됐대요.(웃음) 저도 이번 영화를 통해 한층 뿌리를 느낀 듯해요.”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에서 그를 만난 날, 마침 무형문화재 판소리(심청가) 보유자 2인(정회석‧김영자씨)을 인정 예고한다는 발표가 났다. 소식을 전하자 깜짝 놀라며 반겼다.

“제가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배운 분이 정회석 선생님이세요. 그 전에 사사한 김일구 선생님 부인이 김영자님이고요. 축하 전화 드려야겠어요!” 흥보가 보유자가 된 2인에 대해선 “모두 동편제 계열”이라고 했다. 26년간 국악 관련 공연을 1500회 이상 해온 소리꾼답게 척척 해설이다.

26년간 국악 공연 1500회 만능소리꾼 

358만명을 동원한 영화 ‘귀향’(2016)의 조정래 감독이 대학시절 시놉시스를 쓰고 28년을 벼르다가 완성한 이 영화는 ‘판소리에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보인다. 초가집‧은하수‧이불빨래 같은 전형적인 ‘전래동화’ 풍의 화면에다 18세기 조선 민초들의 엄혹한 현실을 누비고 심청가‧춘향가를 합친 듯한 해피엔딩을 담았다.

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는 극중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시력을 잃은 딸 청이(김하연)에게 일종의 ‘힐링 창작담’으로서 심청가를 만들어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는 극중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시력을 잃은 딸 청이(김하연)에게 일종의 ‘힐링 창작담’으로서 심청가를 만들어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는 극중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시력을 잃은 딸 청이(김하연)에게 일종의 ‘힐링 창작담’으로서 심청가를 만들어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는 극중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시력을 잃은 딸 청이(김하연)에게 일종의 ‘힐링 창작담’으로서 심청가를 만들어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학규 부녀를 따라 ‘로드 무비’를 함께 하는 대봉 역의 박철민도 실제 북을 배워 직접 치는 등 일부 장면을 제외하곤 모두 현장 녹음됐다고 한다. 특히 “(구경하는) 이들 모두를 울리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벼슬아치의 포악한 명을 받들어 학규가 ‘심 봉사 눈 뜨는 대목’을 부르는 장면에선 이봉근의 절창이 스크린을 뚫고나온다. ‘한국형 뮤지컬 영화’라는 수식어로 부족한, 진한 전통의 울림이다.

“그 장면만 4개월 준비했다. 무력하게 아내를 잃고 눈먼 딸과 함께 1년 간 전국을 떠돌며 쌓인 죄의식이 소리로 흘러나와야 했다. 그러면서도 모두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득음하듯 뿜어져나오는…. 리허설 한번 하고 바로 촬영한 게 그대로 영화에 담겼다.”

“생계를 아내에게 의존해온 못난 애비이지만 소리할 때만큼은 에너지가 폭발하는” 학규가 딸을 위해 만든 ‘심청가’는 이렇게 탄생한다. 웅장한 앙상블의 합창으로 표현된 ‘인당수 장면’을 포함해 청이가 공주로 신분상승하는 전개까지 “연꽃 같은 딸이 그렇게 거듭 나길 바라는 마음 아니겠느냐”는 게 그의 해석이다.

4개월 준비한 ‘심청가의 탄생’과 득음

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는 극중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시력을 잃은 딸 청이(김하연)에게 일종의 ‘힐링 창작담’으로서 심청가를 만들어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는 극중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시력을 잃은 딸 청이(김하연)에게 일종의 ‘힐링 창작담’으로서 심청가를 만들어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평소 닳도록 불러온 곡인데도 영화에선 오히려 쉽지 않았다. “판소리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정립 단계라 보다 원초적인 소리를 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다람쥐한테 처음 나무 타듯이 하라는 주문이었는데, 그걸 해낸 이봉근은 진정성 있는 천재”라고 조정래 감독이 추켜세웠다. ‘연기파 배우를 캐스팅해 소리를 (하는 것처럼) 가르치라’는 주변 권유를 뿌리치고 소리꾼 안에서 주연배우를 찾아낸 조 감독의 안목이 옳았다.

앞서 연극 무대에 선 적은 있지만 스크린 연기는 처음. “판소리가 여러 사람에 그때그때 감정이입하는 데 비해 한 인물에 푹 빠져서 그 사람이 된 듯 연기하는 데 새로운 매력을 느꼈다”면서 “단역‧조연 가리지 않고 차근차근 밟아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소리는 평생 가져갈 내 무기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임권택 ‘춘향뎐’에 보조출연 인연도

7월 1일 개봉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 주인공 학규 역으로 스크린 데뷔한 배우 이봉근. 전북 남원 출신으로 국악을 전공, 관련 공연만 1500회 넘게 한 실제 소리꾼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7월 1일 개봉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 주인공 학규 역으로 스크린 데뷔한 배우 이봉근. 전북 남원 출신으로 국악을 전공, 관련 공연만 1500회 넘게 한 실제 소리꾼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전북 남원 출신인 그는 서예가인 아버지가 취미로 즐기는 판소리를 통해 처음 국악에 입문했다. 공교롭게도 임권택 감독의 두 판소리 영화와 각각 인연이 있단다.
“‘서편제’ 땐 송화(오정해) 동생인 동호의 아역 제안을 받았어요. 그땐 어렸고 부모님이 내켜하지 않으셔서 오디션에 가진 않았죠. 그러다 남원 국악예고 다닐 때 인근에서 ‘춘향뎐’을 찍는다기에 보조출연자로 지원했는데, 화면에도 잠시 등장했어요(웃음).”

이번 영화를 찍으며 같은 국악인이자 ‘서편제’가 낳은 스타 오정해로부터 조언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서편제’는 영화 장인의 완성도에 힘입어 국내 극장가 첫 100만 돌파 기록을 남긴 수작이다. 이봉근에 따르면 “‘서편제’가 소리꾼의 예술적 고뇌와 갈등에 초점을 뒀다면 우리 영화는 소리가 도구가 되고 위로가 돼 가족을 복원하는 이야기”다. 조 감독은 “‘서편제는 내 인생을 바꾼 영화이고 감히 비교조차 두렵다”면서도 “판소리의 뿌리를 통해 요즘 세계적 인기를 끄는 K팝의 원류, 우리 DNA에 녹아있는 흥과 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전통 이야기의 재발견을 알기 쉽게 풀어가고 싶었다”는 감독의 소망이 넷플릭스와 각종 장르영화로 인해 눈높이가 한껏 올라간 2020년 한국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영상 인터뷰 속 이봉근의 소리에서 가능성을 맛보시길.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리더 박승원이 영화 음악감독을 맡았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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