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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죽은 소나무 뿌리 근처에 많아…미백에 좋은 이약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용환의 동의보감 건강스쿨(78)

소나무 뿌리 주변으로 들러 붙어 마치 크고 울퉁불퉁한 감자덩이를 보는 듯 하다. [사진 뉴시스]

소나무 뿌리 주변으로 들러 붙어 마치 크고 울퉁불퉁한 감자덩이를 보는 듯 하다. [사진 뉴시스]

늦가을. 세 명의 건장한 남자가 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몸에는 망태기를 두르고, 한 손에는 긴 꼬챙이를 들고선 날카로운 눈으로 두리번거린다. 꼬챙이로 땅을 푹푹 파더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른다. “여기에 있어”라는 소리에 우르르 모인다. 소나무 등걸 주변을 찔렀던 꼬챙이 끝에는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다. “파보자”

아래를 파 들어가니 소나무 뿌리 주변으로 큰 덩어리가 있다. 어떤 것은 뿌리를 감싸고 있고, 어떤 것은 뿌리 옆에 들러붙어 마치 크고 울퉁불퉁한 감자덩이를 보는 듯하다. 조심스레 망태기에 주워 담고 다시 주변을 돌아다닌다.

오래전 약초 캐는 분들과 산에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때 캔 약재는 복령이라고 부르는 약초다. 속이 하얀 것을 백복령, 약간 핑크빛이 도는 것을 적복령이라 하는데, 약리학적으로는 크게 구분을 두지 않는다. 소나무가 죽고 나면 뿌리에 균사체가 기생해 사는데 이것이 커지면서 복령이라는 약재를 만든다. 일종의 버섯인 셈이다. 경험자들의 말에 따르면 죽은 지 3~5년 된 소나무 뿌리 근처에 많다고 했으니 아마도 소나무가 마르자마자 이 균사체가 들러붙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러고 몇 년 지나면 크기가 제법 커져서 그만한 크기가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마른 소나무 근처 땅을 유심히 살펴보면 풀이 안 나면서 땅이 살짝 꺼지거나 갈라진 듯한 느낌이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복령이 있을 확률이 높다. 땅속에 있기 때문에 긴 꼬챙이로 푹푹 찔러보면 끝에 하얀 복령가루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보고서 알게 되는데, 이런 원리라면 이 간단한 도구는 아마 천 년 이상 활용되지 않았을까?

복령(茯苓)은 엎드릴 복(茯)자에 신령스러운 약초라는 뜻의 령(苓) 자를 쓴다. 또, 소나무 뿌리를 감싸는 것은 복신(伏神)이라고 부른다. 약리학적으로는 동일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약초의 산지, 위치, 주변 환경 등에 따라서 약의 성질도 다르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복신을 조금 더 우수한 작용을 나타낸다고 여기는 편이다.

복신의 신(神)자와 복령의 령(苓)자 두 가지를 합치면 말 그대로 신령(神靈)이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땅속에 엎드려 있는 것, 이것이 복령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대표적인 것이 신경정신과에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이름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적당한 이뇨작용과 혈액순환 작용으로 붓기를 빼고, 소화기를 안정시키는 것으로 상당히 많은 처방에서 활용하고 있으니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소나무가 죽고 나면 뿌리에 균사체가 기생해서 사는데 이것이 커지면서 복령이라는 약재를 만든다. 일종의 버섯인 셈이다. [사진 위키백과]

소나무가 죽고 나면 뿌리에 균사체가 기생해서 사는데 이것이 커지면서 복령이라는 약재를 만든다. 일종의 버섯인 셈이다. [사진 위키백과]

복령은 무엇보다 안전하다. 한의학에서는 신농본초경이라는 진한 시기에 저술된 것으로 전해지는 최초의 약초서적에서부터 한약재의 성질을 상·중·하로 나누고 있다. 상품은 남녀노소 누구나, 또 언제나 먹어도 안전한 약재다. 마치 음식인 양 먹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복용했을 때 몸에 크게 이로운 현상이 생기는 약초들이다. 예를 들면, 인삼, 두충, 영지, 오가피, 지황 같은 약재들이다. 중품은 보하는 능력도 있지만, 치료작용이 강해서 장기간 복용 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약재다. 마황, 갈근, 목단피 등이 해당한다. 하품은 치료능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조심해 써야 하며, 구급약이 이에 속한다.

이후로 한의학이 수천 년간 발전하면서 이런 뜻을 살려 보하는 약재와 치료하는 약재, 성질이 강한 것과 약한 것을 샅샅이 구분해서 처방 활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고 때로 치료작용이 강한 것은 조절해 가며 환자에게 미리 안내하고 있다. 이런 구분상 복령은 상품에 속하는 것으로 누구나 매일 언제든지 복용해도 무방하다 할 수 있을 정도의 약재다.

이런 복령의 가장 중요한 작용은 신경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한약 처방 중에서 안신 安神 작용을 위한 처방에 복령은 빼놓지 않고 들어가 있다. 불면증이나 불안감, 가슴 두근거림(경계, 정충), 초조, 불안, 우울, 공황장애 등 여러 가지 신경정신과 증상에 복령이 항상 들어간다. 불안 및 사려과다(깊은 생각, 잡생각 등) 등으로 인한 불면증에 활용하는 귀비탕이나, 경기와 발작을 치료하는 용뇌안신환, 여성 갱년기 때 불안 초조를 다스리는 가미소요산, 불안 초조의 명방 청심환 등 유명한 신경정신과 처방 대부분에 복령이 있다. 완만한 수면장애와 불안증에 차로 마시는 안신복령고는 복령, 산조인, 계지 등이 주요 레시피이다.

복령이 들어간 유명한 처방 중에 계지복령환이 있다. 처방 구성은 계지, 복령, 목단피, 도인, 작약이다. 원래 처방의 의도는 어혈, 즉 혈액순환 장애를 치료하는 것이다. 그래서 갱년기 장애나 여성 질환의 생리쪽 문제, 몸 속의 물혹 등에 많이 활용한다. 이 처방이 또 한 군데 신기하게 효과를 내는 부분이 있다. 바로 우울증이다. 한의학에서는 정신의 작용이 단전과 뇌, 여성으로 따지면 자궁 기능과 뇌 기능이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스트레스가 많은 여성이 자궁근종 같은 자궁질환이 많다. 최근 서양의학에서도 현대 생리학적으로 전인적인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장내 세균총과 호르몬, 그리고 뇌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계지복령환은 혈액순환을 돕는 계지, 목단피, 도인, 작약과 함께 신경안정에 쓰이는 복령을 배합하여 혈액순환 장애를 제거하면서 동시에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여 우울증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부분을 한의과대학에서 전격적으로 임상실험 중이며 임상2상시험 승인까지 받았다. 요즘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수천 년 동안 써 온 처방이지만 조금 더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고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다면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복령은 몸 안에서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순환작용으로 붓기를 빼며, 소화기를 건강하게 하고, 바깥에서는 피부를 맑게 만들어 주는 작용을 한다. [중앙포토]

복령은 몸 안에서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순환작용으로 붓기를 빼며, 소화기를 건강하게 하고, 바깥에서는 피부를 맑게 만들어 주는 작용을 한다. [중앙포토]

복령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완만한 이뇨작용과 소화기를 안정시켜서 생기는 붓기, 부종을 빼는 작용이다. 여러 동물실험을 통해 규명한 자료에 따르면 복령을 다양한 방법으로 투여한 결과 부종을 줄이고, 붓기를 빼는 것을 확인했다. 민간에서는 호박이나 팥, 대나무잎 같은 음식 재료로도 붓기를 빼기도 한다. 약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전성이 보장된 복령 같은 것을 활용하면 효과는 더 좋겠다. 더군다나 구황작물로도 인식되고, 비위를 든든하게 해주니 현대의 다이어트식으로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약초다. 다이어트 처방이나 여러 건강기능식품, 기능적인 식품 등이 자칫 무리한 다이어트를 부를 수 있다. 복령은 건강하게 순환과 붓기를 조절하니 완만하면서 안전한 다이어트를 원하면 꼭 기억해야겠다.

여러 버섯처럼 항암, 항종양 작용이나 그 외에 면역증진, 궤양 치료, 혈당 강하, 염증 치료 등의 효과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꼭 알려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미백작용이다. 복령은 예로부터 미백작용이 뛰어나 미용치료 효과를 위해 오랫동안 복용하기도 했고, 곱게 가루내어 바르는 용도로도 썼다. 최근 대부분의 화장품에 약초를 넣어 개발하는 추세로 복령은 각광받는 재료 중 하나다. 먹고 바르고 두 가지 좋은 작용을 하니 진정한 이너뷰티면서 동시에 안전한 화장품 재료라고 할 수 있겠다.

몸 안에서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순환작용으로 붓기를 빼며, 소화기를 건강하게 하고, 바깥에서는 피부를 맑게 만들어 주는 작용을 하는 복령.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성분이 두루 많으니 꼭 기억하시기를.

하랑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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