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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현장서 맨발 탈출 그녀, 왜 '악마의 지하방' 찾아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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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 현장에서 맨발로 뛰쳐나와 구출된 여성이 가해자인 전 남자친구를 만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3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 이면에는 ‘불법촬영 범죄’가 있었다. 피해 여성은 “절박한 심정으로 불법촬영물을 지워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고 밝혔다.

[사건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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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에 데이트폭력까지

서울 강서경찰서는 23일 특수협박 및 강간 혐의로 주모(23)씨를 체포했다. 주씨는 과거 연인이었던 A씨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부엌칼 등으로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그러나 주씨의 범행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달 중순부터 A씨에게 하루하루는 지옥과도 같았다. 당시 연인이었던 주씨의 ‘데이트 폭력’이 시작되면서다. 그러나 A씨는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다. 과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촬영된 영상을 주씨가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술에 취해 의식이 분명하지 않을 때 불법촬영을 당했다”며 “영상을 수차례 지워달라고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불법촬영물을 빌미로 주씨의 폭행과 협박, 성폭행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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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할까 하루하루 피 말라”

데이트 폭력이 점점 심해지자 A씨는 이달 초 헤어질 결심을 하고 주씨를 상대로 고소까지 준비했다. 그러나 주씨의 범죄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다. A씨는 “경찰을 찾아갔지만 ‘폭행에 대한 증거는 있으나 불법촬영과 강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A씨는 “전 남자친구가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거나 숨겨둘까봐 하루하루 피 마르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고 밝혔다.

주씨가 불법촬영물을 소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A씨에게 ‘안전이별’은 불가능했다. A씨는 “부족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도 전 남자친구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22일 주씨는 A씨에게 “만나주면 영상을 지워주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A씨는 “유포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큰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영상 삭제를 부탁하기 위해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날 사건이 발생했다.

“죽기 살기로 달려 나와”

A씨는 22일 저녁부터 23일 새벽까지 두 차례에 걸쳐 주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뺨과 머리를 심하게 폭행당하기도 했다. 주택 지하에서 벌어진 범행 현장에서 A씨는 기회를 엿보다가 탈출할 수 있었다. 당시 A씨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죽기 살기로 달려 나왔다”고 했다. 지상으로 나온 A씨는 주차된 차량에 불빛이 비추는 것을 보고 다가가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차량 안에 탑승한 사람에게 “남자친구가 죽이려 한다”며 “제발 차에 탈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당시에 대해 A씨는 “두 손 모아 빌어 겨우 차에 탈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화곡지구대원들은 오전 1시40분쯤 현장에서 폭행과 특수협박 혐의로 주씨를 체포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주씨의 성폭력 혐의도 밝혀졌다.

데이트폭력 집중 신고 기간 운영

데이트폭력 신고 및 유형별 현황. [자료 경찰청]

데이트폭력 신고 및 유형별 현황. [자료 경찰청]

불법촬영과 데이트 폭력에 여성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법무부가 지난 2월 26일 발간한 ‘2020 성범죄 백서’에 따르면 불법촬영 범죄는 2013년에서 2018년 사이 5.8배 늘었다. 412건에 불과하던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가 5년 동안 2388건으로 늘었다.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도 증가 추세다. 2017년 1만4136건에서 2018년 1만8671건, 2019년 1만9940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경찰청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데이트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2개월 간 ‘데이트 폭력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청은 “일부 데이트 폭력 피해자는 가해자와 연인 관계라는 특성상 심각한 위협을 느끼기 전에는 신고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데이트 폭력은 강력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적극적으로 신고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주씨가 그 동안 수차례 협박을 해왔기 때문에 만약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면 또 다시 감옥에서 나와 보복범죄를 일으킬까봐 매우 두렵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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