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손해용의 시시각각

기회는 차별적, 과정은 불공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에디터

손해용 경제에디터

청와대·여당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의 핵심 포인트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공사에 취업준비를 하는 분들의 일자리와는 무관하다”며 불난 데 부채질을 하더니,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에 합격해 정규직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며 아예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사태의 책임을 가짜뉴스 탓, 야당 탓, 보수언론 탓으로 돌리며 전매특허인 ‘탓탓탓’ 탓까지 했다.

이들은 “사안의 본질은 온갖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왜곡된 현실에서 출발한다”(고민정 민주당 의원)고 본다. 정규직은 선(善)이고, 비정규직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한 판단이다. 잘못 짚었다. 인국공 사태의 본질은 ‘공정한 기회의 박탈에 따른 상실감’에 있다.

취업준비생들은 평균 128.8대 1(상반기 공공기관 정규직 행정직 채용 기준)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공개 선발 과정 없이 인기 공기업의 정규직이 되는 것을 수긍할 수 있을까. 비정규직 입사일이 문재인 대통령의 인국공 방문일(2017년 5월 12일) 전후냐에 따라 정규직 전환 방식을 달리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인국공 사태는 예견된 결과다.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라는 1호 지시를 내리면서다. 단순히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복지 같은 처우에서 차별받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문제 해결의 초점을 이들의 처우 개선에 맞추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에서 0이라는 숫자가 나오다 보니 공기업들은 ‘처우 개선’보다 직고용이나 자회사 정규직 같은 ‘고용 형태’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정규직”을 외치는 비정규직의 파업·시위까지 곁들여지며 무리하게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공공기관은 친인척 고용세습을 벌인 일이 드러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완료 인원.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완료 인원.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017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363개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규모는 9만1303명에 달한다. 올해 3월 말 현재 공공기관 임직원 정원(41만7346명)의 21.9%에 달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공개된 수치만 이 정도다. 알리오에 공개하지 않은 자회사 등까지 포함하면 정부는 올해까지 853개 공공기관 비정규직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지금 정규직의 울타리 안에 들어선 사람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열릴 새로운 취업의 문은 좁아진다. 예컨대 인국공의 현재 보안요원 평균연령은 30세다. 정규직화한 1900명의 보안요원이 60세 정년을 마치는 향후 30여 년 동안에는 보안요원 채용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공기업 정규직 대부분은 한번 고용하면 업무 성과와 관계없이 평생 고용하고 연차가 쌓일수록 더 많은 호봉제 임금을 줘야 한다. ‘철밥통’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결국 공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신규 채용의 여력은 줄어들게 된다.

청와대·여당에서 오해를 바로잡겠다며 애쓰는데도 청년들은 ‘일자리 사다리’를 박탈당했다며 더 분노하는 배경이다. 취업준비생 등을 포함한 확장실업률을 보면 청년층의 4분의 1 이상이 사실상 실업 상태다(5월 기준 26.3%).  2015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이 사회적 약자라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스스로도 ‘고용 절벽’에 절망하고 있는 약자로 본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 남북 단일팀 문제에서부터 조국 사태, 인국공 사태 등을 거치며 앞의 두 소절은 공염불이 되다시피 했다. 청년들은 묻는다. “그렇다면 과연 결과가 정의로울 수 있겠는가.”

손해용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