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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로펌 동원해 벼랑끝 싸움 벌이는 인천공항과 스카이7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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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스카이72 골프장에 무슨 일이

인천국제공항에 인접한 골프장 스카이72 바다코스의 공사 당시 모습. [사진 스카이72]

인천국제공항에 인접한 골프장 스카이72 바다코스의 공사 당시 모습. [사진 스카이72]

스카이72 김영재 사장은 “약자의 입장에선 법에 보장된 권리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스카이72는 인천국제공항 부지 364만여㎡(110만여평)를 임대받아 15년째 골프장 영업을 하고 있다. 접근성이 좋은데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대회가 매년 열리면서 골퍼들의 인기가 높은 곳이다. 스카이72는 수도권 신공항 건설촉진법에 근거해 2002년 사업 시행자로 지정됐고, 3년간의 공사를 통해 2006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지상물과 코스 관리 등 골프장의 질 향상을 위해 지금까지 2000억원이 투입됐다는 것이 업체 측의 주장이다.

제5활주로 공사 지연되면서 사달 나 #‘특별법 우선 원칙’ 보상책 제시 안해 #업체측 “민법상 지상권 보장해줘야” #입찰되면 정상적 영업 어려울 전망

하지만 올해말로 임대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공항공사와 스카이72의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15년의 계약기간이 명시된 이유는 2020년 이후, 즉 2021년부터는 제5활주로가 건설될 것이란 계획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당분간은 제5활주로 공사가 이뤄질 것 같지 않다”고 밝히면서 사달이 났다.

김 사장은 “우리 골프장의 바다코스(54홀)에 해당하는 지역에 당초 예정대로 제5활주로가 들어서지도 않는 상황에서 ‘모든 재산권을 포기하고 떠나라’는 것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을뿐더러 상도의에도 어긋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민법에 보장된 지상권(地上權)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공사측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상권은 건물이나 수목 등을 소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땅을 사용하는 권리를 말한다. 민법(283조)은 지상권자의 갱신청구권 및 매수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지상권이 없어질 경우 건물이나 수목이 있으면 지상권자는 계약의 갱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상권 설정자가 계약 갱신을 원하지 않으면 지상권자는 상당한 금액으로 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카이72측은 “정부 계획대로 제5활주로 공사가 시작되면 군말없이 사업장을 폐쇄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공항공사의 주장은 정반대이다.

인천국제공항에 인접한 골프장 스카이72 바다코스의 지금의 전경. 올해말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양측이 지상권 인정 여부를 놓고 법리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 스카이72]

인천국제공항에 인접한 골프장 스카이72 바다코스의 지금의 전경. 올해말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양측이 지상권 인정 여부를 놓고 법리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 스카이72]

첫째, 스카이72와의 계약은 특별법에 따른 계약이므로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일반적인 민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둘째, 계약을 연장해달라는 것은 특혜를 달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공사측은 공식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스카이72측이 그동안 많은 수익을 올리고도 딴소리를 하고 있다는 비판했다. 공사측은 가능한 이른 시일내에 골프장을 새롭게 운영할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공개입찰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공사측이 공개입찰을 강행할 경우 양측의 법정 공방은 본격화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입씨름과는 달리 국내 대형 로펌인 김앤장·태평양·광장·세종 등의 법률 대결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공항공사를 향한 스카이72의 반격이 주로 이뤄질 전망이다.

스카이72는 우선 당시 특별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항공법과 합쳐서 공항시설법으로 바뀐 수도권 신공항 건설 촉진법엔 건설된 시설물을 어떻게 운영할 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다. 권영준 변호사는 “특별법이라 할려면 일반법에 비해 특별한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토지 사용관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논란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토지의 경우 20~30년, 건물은 50년인 일반적 임대기간과 달리 15년이란 단기간 계약을 한 이유가 활주로 공사 때문이었는데, 이를 어긴 상태에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도 했다. 또 양측은 협약서에 ‘사정 변경시 협의키로 한다’고 계약을 맺었다. 이를 근거로 어떤 협의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다른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은 또 다른 특혜라는 것이 업체측의 주장이다.

그럼, 양측은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할까.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제2터미널로 향하는 도로 공사를 놓고 스카이72와 공항공사가 법정다툼까지 벌이면서 앙금이 남아있다는 분석이 있다. 공항공사측은 도로 공사를 위해 스카이72의 일부 부지를 강제로 수용했지만 법원측은 89억원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공사로서는 일방 통행식 행정집행으로 인해 혈세를 낭비하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당시 감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앞서 공항 인근의 석산 개발을 놓고 스카이72가 분진 발생 등을 이유로 반대를 하면서 공사측에서 못마땅해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골프장 영업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자 공항공사측이 아예 ‘셧다운’을 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법률적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공사측은 골프장으로부터 연 임대료로 160억원을 받고 있다. 임의로 골프장 영업을 중단할 경우 매년 160억원의 수익 구조를 차버리는 결과를 초래해 배임과 직권을 남용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임기가 정해진 공사 사장이 마음대로 사업구조와 내용을 바꾸는 것은 감사원은 물론 검찰 조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공개입찰을 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업자 선정은 스카이72에게 “건물을 비우거나 부수고 나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업자측이 이에 응할 가능성이 작아 명도소송을 별도로 벌여야 한다. 스카이72측은 공사에 반발해 소송을 내고 영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공사측은 “민간투자방식에 따라 시설사업의 업무를 관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사는 정부가 투자한 공기업이지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는 것도 걸림돌이다. 입찰 강행으로 인해 두 개의 민간업자가 소송전을 벌일 경우 국민의 세금이 보상금 등으로 지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도 골칫거리다.

때문에 스카이72측은 감사원을 통해 컨설팅을 받아보자는 제의를 했지만 공사측은 신통치 않은 반응이다. 국토부측은 “만약 우리가 사전컨설팅을 받아보라고 권유할 경우 업자측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양측의 벼랑끝 대치는 누군가의 중재가 필요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단순히 공기업과 사기업의 대결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게임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법 내세울 땐 측은지심으로 국민 대해야

법은 살인검(殺人劍)이자 활인도(活人刀)이다. 누군가를 죽이는데도 사용되지만 또 다른 사람을 살리는데도 필요한게 법이다. 어떠한 목적이든 칼의 사용은 우리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물이 흐르는 것 처럼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은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행정권력이 법과 원칙에 근거해 투명하게 행사돼야하지만 남용되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이 논란이 되는 것은 일방 통행식 행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스카이72의 사례에서도 공사측은 밀어붙이기식으로 업체측을 압박하는 경향이 있다. 18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코스를 관리하고 건물을 가꿨는데 맨손으로 나가라고 하는건 설득력이 약한 우격다짐이나 다름없다.

1000억원 이상의 돈을 들인 건물과 수목 등을 입찰을 통해 다른 업체에게 주겠다는 발상은 법을 내세운 갑질이자 폭력으로 오해받기 쉽다. 이 사업장에도 연 인원 5만여명의 비정규직들이 일을 하고, 캐디 등 1000여명이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

법을 내세울 때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고 국민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이다. 측은지심의 근본은 어질 인(仁)이다. 스카이72도 지역경제와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황금알을 낳은 거위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