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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병' 일주일만에 대책회의 연 정부...감염경로도 파악 못해

중앙일보

입력

경기 안산시 소재 A 유치원에서 지난 16일 식중독인 장 출혈성 대장균이 집단 발생했다. 일부 원아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증상까지 보여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안산시 소재 A 유치원에서 지난 16일 식중독인 장 출혈성 대장균이 집단 발생했다. 일부 원아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증상까지 보여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정부가 경기도 안산 사립유치원의 집단 식중독 사고와 관련해 처음으로 관계부처 대책 회의를 열었다. 제2급 법정감염병인 ‘장 출혈성 대장균’이 확인된 지 일주일이 넘어서다.

이 사이 장 출혈성 대장균의 합병증인 ‘용혈성 요독증후군’(일명 햄버거병)으로 4명의 원아가 신장투석 치료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아직까지 감염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집단급식 시설 위생점검 자료사진. 뉴스1

집단급식 시설 위생점검 자료사진. 뉴스1

19일 중앙 역학조사반 투입됐지만 

28일 질병관리본부·안산시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지역 보건소로 식중독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안산 A사립유치원 원아 중 식중독 의심증상자가 나온 것은 지난 12일였지만 유치원은 나흘 뒤 신고했다. 유증상자가 10여명으로 늘어났을 때다. 늑장신고 의혹을 받는 대목이다.

보건소에서 환자의 검체를 채취해 진단검사를 벌인 결과, 18일 장 출혈성 대장균 감염 양성판정을 받았다. 질본은 이튿날 오전 중앙 역학조사반을 투입했다. 집단발병이 확인되서다. 관련 지침상 시·도의 역학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거나 긴급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중앙 역학조사반을 운용할 수 있다.  12일 첫 발생 후 엿새 지나 질본 역학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역학조사 과정서 합병증인 햄버거병으로까지 악화한 사례도 파악됐다.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 예방 관리 강화'를 위한 관계부처 및 시도교육청 담당과장 회의. 연합뉴스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 예방 관리 강화'를 위한 관계부처 및 시도교육청 담당과장 회의. 연합뉴스

26일에서야 열린 첫 관계부처 회의 

상황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지난 26일에서야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었다. 교육부와 질본, 식품의약품안전처, 시·도교육청 핵심 관계자가 참석했다. 교육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각 부처는 국장급 대책반을 구성해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역학조사 및 현장 안전 점검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A사립유치원 관련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환자는 이날 현재 최소 57명(원아·종사자·가족 접촉자 포함)에 달하는 등 이미 심각한 상황에 놓였다. 최근 3년간 국내 발생 평균 환자수 127.3명의 44.8%를 차지하는 규모다.

더욱이 현재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22명(원아 20명·가족 2명)으로 이중 15명이 햄버거병을 앓고 있다. 상태가 악화된 4명은 신장투석 치료까지 받고 있다.

햄버거병 합병증으로 알려졌는데 

햄버거병은 이미 장 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의 합병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질본의 ‘2020년도 수인성 및 식품매개감염병 관리지침’을 보면, 용혈성 요독증후군은 장 출혈성 대장균 환자의 약 10%에서 합병증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해놨다. 10세 미만의 소아나 노인에게 흔하다고도 했다.

장 출혈성 대장균은 보통 5~7일간 증상이 지속된 뒤 저절로 상태가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햄버거병으로 진행시 치명률은 3~5%에 이른다. 국내 코로나19 치명률(2.2%)보다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감염병이 아닌 ‘합병증’이다 보니 현재 정부 입장에서는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치료를 통해 합병증 발생을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장 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손씻기와 음식 익혀먹기 등을 당부하고 있다.

질본 관계자는 “감염병인 장 출혈성 대장균의 확산 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용혈성 요독증후군은 (질본으로의) 신고 의무도 없다. 합병증을 막고 치료하는 것은 치료를 통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급식 자료사진. 뉴스1

급식 자료사진. 뉴스1

해당 유치원, 보존식 8종류 버려 

와중에 A사립유치원 집단 식중독 사고의 원인이 미궁에 빠졌다. 지금까지 진행한 남은 보존식과 유치원 조리기구 등에서 장 출혈성 대장균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아서다.

보건당국은 해당 유치원이 보관의무 기간을 지키지 않고 버린 음식 8종류가 식중독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유치원의 교육 과정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안산시는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이 유치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보존식은 물론 유치원 내 조리기구·문고리·교실·화장실·식재료 납품업체 조리기구 등 모두 104건의 환경 검체를 채취했다. 하지만 전부 대장균이 검출되지 않았다.

집단 식중독 발생한 안산의 유치원. 연합뉴스

집단 식중독 발생한 안산의 유치원. 연합뉴스

A유치원 측, "고의로 폐기한 것 아냐" 

이 과정에서 이 유치원이 궁중떡볶이(10일 간식), 우엉채 조림(11일 점심), 찐 감자와 수박(11일 간식), 프렌치토스트(12일 간식), 아욱 된장국(15일 점심), 군만두와 바나나(15일 간식) 등 8종류의 음식을 보관하지 않은 점을 확인했다.

집단급식이 이뤄지는 시설은 혹시 모를 식중독 발생에 대비해 의무적으로 음식 재료를 남겨 144시간 동안 보관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50만원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다.

A유치원 원장은 “보존식을 고의로 폐기한 것이 아니다. 모르고 그랬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식중독 예방위해 손씻는 아이들. 자료사진. 뉴스1

식중독 예방위해 손씻는 아이들. 자료사진. 뉴스1

교육과정에 감염원인 있나 

보건당국은 식중독 원인을 확인하려 이 유치원의 학습 프로그램 등도 살펴보기로 했다. 유치원이 보관하지 않은 보존식 8종류가 식중독의 원인일 수도 있지만, 흙이나 물 등을 만지는 과정에서도 대장균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수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장 출혈성 대장균이 음식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도 조리 과정 등에서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됐다면 감염 위험성도 있다”고 말했다.

안산 상록수보건소 관계자는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유치원 수사 본격화·등원일 미정 

A유치원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된다. 학부모 6명은 식품위생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상 등 혐의로 A유치원 원장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A유치원이 보존식 일부를 보관하지 않은 것을 증거 인멸로 의심한 것이다. 이들은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을 요구했다. 학부모 한 명은 이날 대표자 자격으로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감염원이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개원 시기도 미정이다. 일단 안산시는 이날 A유치원에 내린 일시적 폐쇄 명령을 다음 달 8일까지 연장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식중독 사고 원인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개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세종·안산=김민욱·최모란 기자, 이태윤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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