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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의 배틀그라운드] "고글에 땀 찰랑찰랑"···임관식직후 대구 간 간호장교의 미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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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70주년을 맞은 올해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올해 초 전 세계적 역병이 기습 공격했다. 꽃이 번져야 할 한반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뒤덮였다. 가장 심각했던 대구에 군대가 투입됐다.

국군의무사령부는 지난 2월 23일 군 의료지원단을 국군대구병원에 투입해 코로나19 대응 임무에 나섰다. 지난 3월 3일 국군간호사관학교(국간사) 졸업식과 임관식을 마친 신임 간호장교 75명도 그날 바로 대구로 출발해 합류했다.

간호장교 신나은 육군 소위는 지난 3월 국간사 졸업과 임관식을 마친 당일 국군대구병원으로 파견돼 코로나19 대응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영상캡처=강대석 기자]

간호장교 신나은 육군 소위는 지난 3월 국간사 졸업과 임관식을 마친 당일 국군대구병원으로 파견돼 코로나19 대응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영상캡처=강대석 기자]

의료지원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간호장교 신나은 육군 소위를 지난 15일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나봤다.

신 소위는 “국간사 60기 동기들과 예정됐던 졸업과 임관식을 며칠 앞당겨 치르고 실전에 바로 투입돼 임관 직후 예정됐던 신임 간호장교 지휘참모과정 교육은 대구를 다녀온 뒤 받았다”며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4년 동안 국간사에서 전문적인 간호장교 교육을 받았지만, 실전 투입은 남다른 긴장을 가져올 수 있다. 더구나 감염병 최전선에 뛰어든 의료진에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돼 있긴 마찬가지다.

두렵지 않다. 국가의 부름에 준비돼 있다. 

3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군대구병원 파견을 하루 앞둔 신임 간호장교들이 코로나19 선별진료소 교육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군대구병원 파견을 하루 앞둔 신임 간호장교들이 코로나19 선별진료소 교육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신 소위는 “두려운 마음보다 국가가 필요로 할 때 내가 투입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 감사했다”며 “학교장께서 ‘너희는 이미 준비돼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덕분에 용기를 얻고 비장한 각오로 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군대구병원에 도착한 신임 간호장교는 24시간 동안 밤낮없이 3교대로 돌아가며 ▶경증환자 면담 ▶투약ㆍ복약 안내 ▶개인위생수칙 교육 임무를 맡았고, 선배 간호장교들과 함께 산소치료 보조 임무 등 중증환자 치료지원에도 나섰다.

국군대구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 간호에 투입된 신나은 소위(오른쪽)와 박은지 소위가 방호복을 착용하며 임무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국군대구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 간호에 투입된 신나은 소위(오른쪽)와 박은지 소위가 방호복을 착용하며 임무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간호장교의 이런 역할은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초여름 더위에도 답답한 방호복과 보호장구를 겹겹으로 둘러 입고, 고글에 눌린 얼굴과 격무에 지친 의료진이 기억난다.

신 소위는 “방호복 착용은 국간사 생도 시절부터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방호복을 입으면 꽤 덥고, 빠르게 지친다”며 “얼굴이 고글에 눌려 아픈데 며칠 지나면서 스킨테이프를 붙이면 덜 아프다는 걸 알게 됐다. 고글을 오래 착용하면 고글 안에 땀이 ‘찰랑찰랑’ 물처럼 차오른다”며 웃었다.

'찰랑찰랑' 고글에 땀이 차올라 

지난 3월 국군춘천병원 소속 간호장교 김혜주 대위(육군 전문사관 16기)가 대구 동산의료원 격리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사진이 공개돼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김 대위는 마스크에 쓸린 콧등에 밴드를 붙였다. [국방부 SNS 캡처]

지난 3월 국군춘천병원 소속 간호장교 김혜주 대위(육군 전문사관 16기)가 대구 동산의료원 격리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사진이 공개돼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김 대위는 마스크에 쓸린 콧등에 밴드를 붙였다. [국방부 SNS 캡처]

의료진에게도 사실상 자가 격리와 비슷한 엄격한 외출 금지가 적용됐다. 신 소위는 “확진자 간호를 하면서 병원과 숙소만 이동할 수 있었고, 외출은 금지돼 체력과 정신적으로 모두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지쳐가는 의료진에 힘을 준 건 환자와 국민이었다. 신 소위는 “치료를 마친 환자가 편지를 남기고 갔는데, 그는 병실에만 머물러 있어 창밖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알지 못했을 텐데 오히려 의료진에 격려를 보내 감사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퇴원 수속 중이던 환자가 ‘당신이 영웅이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경험’이라고 말해 감동하기도 했다”며 “간호에 집중할 때는 내가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목소리와 표정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환자에게 도움이 됐다는 걸 실감했다”고 환하게 웃었다.

전국에서 보낸 응원, 난 혼자가 아니다 

코로나19 대응 임무를 위해 국군대구병원에 파견된 신나은 소위가 휴게실로 이동하던 중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응원 메시지 앞에 섰다. [신나은 소위 제공]

코로나19 대응 임무를 위해 국군대구병원에 파견된 신나은 소위가 휴게실로 이동하던 중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응원 메시지 앞에 섰다. [신나은 소위 제공]

국민의 응원이 대구에 몰렸다. 신 소위는 “초등학생이 쓴 편지, 직접 만든 마스크, 간식이 전국 각지에서 도착하면서 국민의 응원을 받고 있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었다”며 “그저 얼떨떨했다. 임무를 마치고 대구를 나오면서 동기들과 우리가 해냈다는 걸 깨달았다”고 돌아봤다.

군 의료진 300여 명이 8주 동안 국군대구병원을 다녀왔다. 국군수도병원에 근무하는 이인우 중위는 “확진자께서 감염됐다는 사실에 울면서 입원했는데 치료받고 퇴원할 때는 병원, 국가와 의료진에 감사를 전하며 울기도 했다”며 “다녀온 지금도 굉장히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며 기억에 남는다”고 설명했다.

이 중위는 “환자는 격리돼 사람을 만날 수 없어 힘들어했다. ‘내가 병균이 된 것 같다’고 말하며 슬퍼했다”며 “하지만 잠깐 지나가는 감기라고 생각하고 치료받고 퇴원하셨으면 좋겠다”며 응원의 목소리를 전했다고 한다.

군 최고 수준 종합병원, 코로나19 치료도 

국군수도병원 부원장 이상호 대령이 병원 내 국가격리지정병상 앞에서 코로나19 대응과 진료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영상캡처=강대석 기자]

국군수도병원 부원장 이상호 대령이 병원 내 국가격리지정병상 앞에서 코로나19 대응과 진료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영상캡처=강대석 기자]

현재 국군수도병원에는 군 유일의 코로나 전담 병동이 운용되고 있다. 부원장인 이상호 대령은 “8개의 국가격리지정병상을 운용하며 확진자 치료를 담당한다”며 “지금까지 코로나 환자 94명을 치료했고, 현재도 민간인 2명을 포함해 군인과 군무원 등 총 8명이 입원해 치료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부원장은 “국군수도병원은 30여개의 진료과를 개설한 군 최고 수준의 종합병원으로, 군에서 다친 용사가 수술과 치료를 받는다”며 “외래 환자는 하루에만 천여 명이 넘고 입원 환자는 600여 명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군수도병원 간호장교 이새봄 중위가 뼈이식 수술을 받고 병동에 돌아온 환자를 살피고 있다. [영상캡처=강대석 기자]

국군수도병원 간호장교 이새봄 중위가 뼈이식 수술을 받고 병동에 돌아온 환자를 살피고 있다. [영상캡처=강대석 기자]

군 병원이라 신원 확인도 군번으로 한다. 이새봄 중위는 뼈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가 병동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통증이 있는지 확인했다. 침대를 옮긴 뒤엔 “군번과 성함을 말씀해 주세요”라며 군번으로 누구인지 확인했다.

신원을 확인한 다음부터는 일반 병원과 다르지 않다. 이 중위는 “감각은 100% 느껴지나요? 저리거나 당기는 느낌은 있나요?”라고 질문하며 세심하게 환자를 살폈다.

군인 아버지 영향, 쌍둥이 함께 임관 

간호장교 신나은 소위가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와 대화하며 간호하고 있다. [박용한 기자]

간호장교 신나은 소위가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와 대화하며 간호하고 있다. [박용한 기자]

신 소위도 이런 선배 간호장교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는 “군에서 가장 중증인 환자가 치료받고 회복하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한다”며 “연평해전, 목함지뢰 폭발 사고 등 국가를 지키다 다친 용사를 치료할 수 있어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신 소위는 군인가족이다. 그는 간호사를 꿈꾸다 장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수석으로 졸업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던 쌍둥이 동생 신나미 소위도 국간사를 함께 졸업했고 대구 파견을 갔다 온 뒤 지금은 국군대전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신 소위는 “아버지께서 GOP 부대에서 근무하셨던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생도 3~4년 때 그 부대를 다녀왔다”며 “장병들이 얼마나 어렵게 복무하지를 잘 알게 됐고, 간호장교의 역할이 크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간호장교 신나은 소위(오른쪽)는 쌍둥이 동생 신나미 소위와 함께 국군대구병원에 파견돼 코로나19 의료지원 임무를 맡았다. 고등학교와 국간사를 함께 다녔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한 자매이지만 지금 신나은 소위는 국군수도병원, 신나미 소위는 국군대전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신나은 소위 제공]

간호장교 신나은 소위(오른쪽)는 쌍둥이 동생 신나미 소위와 함께 국군대구병원에 파견돼 코로나19 의료지원 임무를 맡았다. 고등학교와 국간사를 함께 다녔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한 자매이지만 지금 신나은 소위는 국군수도병원, 신나미 소위는 국군대전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신나은 소위 제공]

간호장교도 군인이다. 의료 지식뿐 아니라 군사훈련까지 받는 이유다. 신 소위는 “생도 교육 중 2학년 때 행군이 가장 힘들었다”며 “3~4학년 때 받았던 재난간호 훈련은 이번 코로나19 대처에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간호사에 앞서 군인, 환자가 있는 곳이 전투현장

간호병과장이자 국군수도병원 간호부장인 강정숙 대령은 “걸프전, 자이툰 파병을 떠나는 후배 간호장교가 인천공항에서 ‘저는 이제 죽으러 가는 건가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며 “간호사 이전에 군인이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은 곳에도 투입돼야 한다. 우리 간호장교의 기본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강 대령은 “군 의료의 중요성은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국가적 재난과 위기 상황에 그 역할이 잘 나타난다”며 “군인으로서 간호장교는 환자가 있는 곳이 전투 현장이다. 코로나 최일선에 나선 간호장교에 감사하고 군 의료진이 코로나19 퇴치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월 국군간호사관학교 제64기 예비생도 기초군사훈련 입소식이 열렸다. 예비생도들이 마스크를 쓰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지난 1월 국군간호사관학교 제64기 예비생도 기초군사훈련 입소식이 열렸다. 예비생도들이 마스크를 쓰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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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장교는 육ㆍ해ㆍ공군 소위로 임관한다. 신 소위는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육군을 지원했다”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할 수 있는 후배 간호장교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이날도 국군수도병원 곳곳엔 실습 나온 후배 생도들이 조금이라도 더 배우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신 소위는 “간호장교는 보호자라고 생각한다. 환자의 회복을 염원하고 함께 노력하는 따뜻한 간호장교가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환자들이 기다리는 병실로 돌아갔다.

박용한 기자
영상=강대석·공성룡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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